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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전19

비와 웃음 비와 웃음 박성진 누군가 내 곁을 떠날 때면 비가 내렸다. 그리고 웃었다. 열 살 때 처음 어머니가 내 곁을 떠나던 날은 추석 전날이었다. 어머니는 작은형과 나에게 말씀하셨다. “추석 지나고 오면 아마 엄마는 없을 거다. 솔직히 힘들어서 못 키우겠다. 갔다 와서 엄마 없으면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라 난 모르겠다.” 부모님은 이미 이혼한 상황이라 어머니는 할머니 댁에 같이 가지 않으셔도 상관없어서 우리 형제가 그곳에 가고 없는 시간에 홀가분하게 떠나는 기회를 잡으시려는 것 같았다. 그러곤 기차표를 끊어주시고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우리를 보고 계셨지만 어린 내 눈엔 어머니의 표정이 하나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억지스런 슬픈 표정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때마침 흐리던 하늘이 한 방울씩.. 2022. 9. 21.
남도 시한에는 남도 시한1)에는 故 신득수 울 초가집 처마 끝에 고드름 열렸네 줄줄 매달아 놓은 실가리2) 울 어매 한 다발 뜯어불고 정재3)로 가시고 까만 솥단지에 솔잎 불 펴고 아부지는 논두렁에 나가서 개울물 다 퍼질러 누런 미꾸라지 양푼 한가득 잡어 갖고 오고 굴뚝에선 째깜씩 냉갈4)이 피어분다요 어매, 아따 요로콤 맛나게 먹어부렀어라요 잉, 동동, 동치미도 맛깔나게 먹었구만이라요, 아부지 졸려 죽겠응께 아랫목에서 한참 잘라요 가실5)이 풍년으로 끝나면 시한은 참말로 재밌지라요 ‘성님 집에 계시오?’ ‘아고, 동상 들어오랑께’ 시한의 남도에서는 겁나게 웃어불어요잉 [각주] 1) 시한: 전라도 방언으로 ‘겨울’을 의미함 2) 실가리 '시래기'의 방언 3) 정재: '부엌'의 방언 4) 냉갈: '연기'의 방언 5) 가.. 2022. 9. 21.
작디작은 방 작디작은 방 홍0길 ‘찰칵’ 문을 연다. 나 왔어. 갔다 왔어. 용산구에서 관리 운영하는 곳이었어. 공기도 맑고 깨끗하고 좋더라. 신부님 그리고 형제분들과 1박 2일로 다녀온 거야. 미사 참례도 드리고. 벌써 널 만난 지도 1년이 지났구나. 2011년 2월 4일. 그때는 무척이나 추운 겨울이었지. 세월 참 빠르다! 암 수술 후 퇴원하면서 너를 만났지. 널 만난 후 의사선생님 지시로 하루 40분씩, 걷는 운동을 했었지. 용산도서관, 남산도서관, 다람쥐도서관에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독서도 했지. 마음먹은 김에 금주, 금연도 시작했고 몸은 빠르게 회복되면서 너한테 신세를 무척이나 졌지. 추울 때나 비올 때 돌아와서 쉴 수도 있고 식사도 하고 꿈나라 여행도 할 수 있었으니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대사건이 터진 .. 2022. 9. 21.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양창선 잠. 잠은 중요하다. 우리 인생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밤이 되면 잠을 자야 되고 그래서 잠자리가 필요하다. 잠. 잠은 중요하다. 잠을 자지 못하면 빨리 늙는다. 면역력이 약해진다.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서울역에서 무수히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몸으로 체득했다. 실제로 안 먹고 안 자고 돌아다니다 병에 걸려 2004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약 삼 개월 간을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퇴원해서도 6개월 동안 약을 복용한 다음에야 완치될 수 있었다. 입원할 당시, 영등포에 있는 보현의 집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담당 선생님은 나의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영양 섭취가 부족하고 면역력도 약해져서 이 병이 온 겁니다. 병원.. 2022. 9.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