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와 웃음
박성진
누군가 내 곁을 떠날 때면 비가 내렸다. 그리고 웃었다.
열 살 때 처음 어머니가 내 곁을 떠나던 날은 추석 전날이었다. 어머니는 작은형과 나에게 말씀하셨다. “추석 지나고 오면 아마 엄마는 없을 거다. 솔직히 힘들어서 못 키우겠다. 갔다 와서 엄마 없으면 아버지한테 전화해서 데리러 오라고 해라 난 모르겠다.” 부모님은 이미 이혼한 상황이라 어머니는 할머니 댁에 같이 가지 않으셔도 상관없어서 우리 형제가 그곳에 가고 없는 시간에 홀가분하게 떠나는 기회를 잡으시려는 것 같았다. 그러곤 기차표를 끊어주시고 플랫폼으로 들어가는 우리를 보고 계셨지만 어린 내 눈엔 어머니의 표정이 하나도 슬퍼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억지스런 슬픈 표정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였고, 때마침 흐리던 하늘이 한 방울씩 쏟아내기 시작했다. 기차를 타고 비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순간 창문에 비친 내 얼굴이 어머니의 마지막 슬픈 듯 웃는 얼굴로 바뀌면서 나도 모르게 웃었다.
첫사랑이 떠날 때도 그랬다. 스물한 살 그때까지의 인생에 나를 진심으로 대하는 유일한 사람이라 믿었던 그녀는 절대 변하지 않을 거라 맹세했지만 다른 남자를 만났다. 그것도 내가 자주 다니는 길 조그만 공원, 그네에 앉아 있는 그녀를 보고 기쁜 마음에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향해 걸어갔다. 손을 들며 그녀를 부르려는 순간 어디선가 나타난 차에서 내리는 그 남자를 보고 달려가 안기는 그녀를 보았다. 그날 밤 그녀의 집 앞에서 벽에 머리를 ‘쿵쿵’ 박으며 기다리고 있는 날 본 그녀는 내 주변 공간을 겨울왕국으로 만들어버리는 말을 했다. “아. 저런 미친…… 적당히 하고 가 짜증나니까. 너 아까 공원 앞에 있는 거 나도 봤어 너도 봤으면 알아서 좀 해!” 난 정말 한마디 하지 않고 돌아서서 너털너털 집으로 향했다. 오는 길에 또 비가 내린다……. 이놈의 비는 정말이지 시원하다. 집 마당에 그냥 대자로 누워서 비를 한참 동안 맞았다. 누워서 내리는 비를 계속 보고 있으니 그 빗방울들은 점차 깨진 유리조각이 되어 내 온몸에 박혔다. 그 박힌 조각들이 내 몸 깊숙이 파고들 때쯤 내 의식은 희미해져갔고, 그 순간 난 웃었다. 분명 기절하기 직전까지 웃었던 것 같다.
2013년 가족들을 떠나 수진이와 힘든 걸음을 시작할 때도 비가 내렸다. 그때 수진이가 말했다. “우린 항상 어디 가려고 하면 비가 오네.” 그랬다. 항상 누군가 내 곁을 떠날 때도 비가 내렸지만. 내가 누군가의 곁을 떠날 때도 비가 내렸다. 그때도 나는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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