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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전

작디작은 방

by vie 2022. 9. 21.

작디작은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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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칵문을 연다.

나 왔어. 갔다 왔어. 용산구에서 관리 운영하는 곳이었어. 공기도 맑고 깨끗하고 좋더라. 신부님 그리고 형제분들과 12일로 다녀온 거야. 미사 참례도 드리고.

벌써 널 만난 지도 1년이 지났구나. 201124.

그때는 무척이나 추운 겨울이었지. 세월 참 빠르다! 암 수술 후 퇴원하면서 너를 만났지. 널 만난 후 의사선생님 지시로 하루 40분씩, 걷는 운동을 했었지. 용산도서관, 남산도서관, 다람쥐도서관에서 맑은 공기도 마시고 독서도 했지. 마음먹은 김에 금주, 금연도 시작했고 몸은 빠르게 회복되면서 너한테 신세를 무척이나 졌지. 추울 때나 비올 때 돌아와서 쉴 수도 있고 식사도 하고 꿈나라 여행도 할 수 있었으니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대사건이 터진 거야. 이 몸이 대학생이 되는 행운도 얻었잖니. 성공회 다시서기에서 운영하는 성프란시스 인문학과정 8기에 합격이 된 거야. 합격자 발표 날 초코파이에 촛불 켜고 너랑 나랑 파티도 했잖아. 조용하고 잔잔한 파티 말이야. 성공회 대성당에서 여러 분들의 축하 박수 속에 들뜬 마음으로 입학식을 마치고 선물로 받은 장미 두 송이. 너 주려고 가지고 왔지. 지금도 보관 중이야.

문학·철학·글쓰기·한국사·예술사 교수님, 자원활동가 선생님들과 함께 오후 7시에 수업을 시작해 9시 강의 종료. 귀를 쫑긋 세우고 열심히 수업을 듣지. 중요한 내용을 적고 공부하는 재미가 무지 기쁘고 행복했다. 오랜만에 하는 공부.

, 그러고 보니 반세기란 세월이 흘렀네. 새삼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주는 시간. 즐겁고 기쁜 마음으로 나는 너를 보기 위해 뚜벅뚜벅 걸어서 문을 연다. ‘찰칵나 왔어.

너 혼자 두고 놀러도 다니고 여행도 다녀왔잖아. 미안해. 그렇다고 너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잖니? 그치? 5월엔 장흥을 다녀왔지. 인문학 1기부터 8기까지의 모임. 체육대회를 연 거야. 선후배 상견례도 하고 모두 모여 게임도 하고 족구도 하며 재미있게 놀다 왔었지. 그리고 8월에 MT를 다녀온 거야. 수련회 말이야. 23. 너하고 제일 많이 떨어진 시간이었을 거야. 전라북도 무안 변산반도 해수욕장 바다 구경. 짜디짠 바다 내음도 마음껏 마시고 너무나 좋은 피서 겸 수련회였어.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거야.

나 줄자 꺼낸다. 너 몸 좀 재볼까 하고. , 창피하다구? 뭐가 창피하니? 160, 길이 210, 높이 240. 높이 달린 봉 창문 높이 28, 넓이 67, 그게 너한테는 눈이요 나한테는 공기구멍, 유리 두 장을 한쪽으로 몰아서 너는 눈이 하나밖에 없어. 전기 스위치를 켜야 환하게 밝아오는 방. 나 아니면 너는 항상 어둠의 세상이야. 나한테 고마운 줄 알어. 알지?

, 참 그러고 보니 너 이름이 없구나. 이름 지어줄게. 이참에 멋진 이름 지어주마. 거창하게 작명소는 못 가더라도 내가 손수 지어볼까 한다. 고시원이란 이름은 있지만 나는 싫다. 작디작은 방. 꼬맹이 방, 어떤 게 마음에 드니? 앞의 것, 뒤의 것, 앞의 것으로 하자꾸나.

작디작은 방으로. 생각할수록 너 참 답답하게 생겼다. 멀대같이 높이만 커가지고 말이야. 그래도 나한테는 작디작은 네가 최고야. 몸매는 볼품없는 너지만 말이야. 너 만나고 생활의 변화가 많이 왔었지. 건강 좋아지고 공부 열심히 하고 긍정적인 생각으로 모든 욕심을 버리고 나니 이렇게 편할 수가 없어. 작디작은 너 덕분이야. 고맙다.

인마, 우리 웬만해선 헤어지지 말고 지금처럼 살자. 캄캄하면 어떻고 좁으면 어떻니? 나에게는 넓디넓은 대궐 같은 보금자리인데 그치? 작디작은 방아, 우울하게 생각하지 말어. 호탕하게 웃어보자. 내 마음이 왜 이러니. 두근두근한 것이 내가 너를 좋아하나 봐. 아니 사랑하고 있나 봐. 그래, 이것은 분명 사랑이야. 작디작은 방아, 사랑한다. 무척 많이 고마워. 인마, 나 잔다. 주여, 굽어주소서. 보살펴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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