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양창선
잠. 잠은 중요하다. 우리 인생의 삼분의 일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밤이 되면 잠을 자야 되고 그래서 잠자리가 필요하다. 잠. 잠은 중요하다. 잠을 자지 못하면 빨리 늙는다. 면역력이 약해진다.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나는 이러한 생각을 서울역에서 무수히 많은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몸으로 체득했다. 실제로 안 먹고 안 자고 돌아다니다 병에 걸려 2004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약 삼 개월 간을 병원에 입원해야만 했다. 퇴원해서도 6개월 동안 약을 복용한 다음에야 완치될 수 있었다. 입원할 당시, 영등포에 있는 보현의 집에서 건강검진을 받았는데, 담당 선생님은 나의 상태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다. “영양 섭취가 부족하고 면역력도 약해져서 이 병이 온 겁니다. 병원에서 잘 먹고 치료를 받으면 나을 수 있습니다.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나의 가슴은 덜컹 내려앉았다. 내 인생에서도 마침내 올 것이 온 것인가!
진료 소견서를 가지고 영등포에서 은평구에 있는 서북병원까지 향하는 동안 온갖 상념이 밀려왔다. 어떻게 병원까지 찾아갔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때의 충격으로 담배도 끊게 되었다.
이후 생각도 많이 바뀌었다. 이젠 무조건 식사를 챙기고 무슨 일이 있어도 잠을 자려고 한다. 잠자리라고 하면 일반적으로 가정집, 원룸, 고시원을 떠올리겠지만 우리 숙자(노숙자)들의 세계에서는 그보다 다양한 형태의 잠자리가 존재한다. 주로 기차역 안이나 그 주변에서 생활하지만 어쩌다 주머니에 돈이 조금 생길 때면 다방(약 3,000원), 만화방(약 4,000원), 사우나(약 6,000원) 등지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도 한다.
2006년, 나에게는 나만의 잠자리가 생겼다. 성공회 다시서기센터에서 자활을 해서 작은 고시원 방을 얻게 된 것이다.
그간 여러 차례 방을 옮겼지만 올해로 8년째 고시원 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번 겨울은 고시원 생활 중 가장 따뜻하게 보냈다. 고시원은 일반적으로 원장실에서 전체 난방을 조절하게 되어 있는데, 그리 따뜻하지 못하다. 그러나 지금 지내는 고시원에는 방마다 온도조절기가 설치돼 있어 본인이 스스로 방 온도를 조절할 수 있다. 조절기는 1단계부터 10단계로 작동하는데 3 정도만 설정해두어도 바닥이 뜨거워진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
외로울 때
생각할 사람이 있다는 것
혼자 있을 때
부를 노래가 있다는 것
(나태주, 「행복」)
저녁에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에 행복하다.
요즘 나는 눈물이 많아졌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에도 계속 눈물이 난다. 글쓰기를 하자니 과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고, 그것을 글로 표현하는 순간 감정이 격해져서 울컥해진다. 나의 아버지는 내가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셔서 얼굴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이후 어머니는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가셨고 우리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나의 유년시절은 잦은 이사와 전학의 기억뿐이다. 초등학생 때에만 다섯 번이나 전학을 가야 했으니 그 시절의 친구가 한 명도 떠오르지 않는 것이다. 라디오와 카세트테이프를 자주 듣는 나에게는 대신 기억나는 노래들이 많다.
못 잊어 못 잊어 못 잊을 사랑이라면
언제까지 당신 곁에 나를 버리고 살 것을
못 잊어 못 잊어 못 잊을 슬픔이라면
사랑하는 당신 품에 돌아가서 안길 것을
낙엽 진 가을의 눈물 눈에 덮인 긴 겨울밤
못 잊어 못 잊어 당신을 못 잊어
(패티 김, <못 잊어>)
『탈무드』에 이러한 말이 있다. “비누는 몸을 닦고, 눈물은 마음을 닦는다.”
나의 성격에 여성적인 면이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관념에서는 남자는 아무 데서나 울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여긴다.
그러나 나는 계속 울보이고 싶다.
날마다 마음에 광이 나도록 깨끗이 닦고 싶다.
나의 잠자리는 나의 걸음으로 가로 세 걸음, 세로로 여섯 걸음밖에 되지 않는 작은 공간이지만 바로 이곳에서 오늘도 하루의 피로를 풀며, 마음을 닦으며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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