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놈의 세상
노기행
달빛 아래 꽃들도 이미 잠들어버린 이 시간에 난 지금 무얼 하고 있는가. 오늘도 어김없이 구루마를 끌고 어느 한적한 도로가에 앉아 담배 한 개비를 꺼내어 문다. 이 아늑하고 조용한 밤에 신호등만이 나를 반기는 듯하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쓰레기 더미에 길고양이들이 음식물 쓰레기를 뒤적거리고 난 그 옆에 박스와 신문지를 챙긴다. 그리고 가던 길을 재촉한다.
요즘은 나이가 많건 적건 고물을 수집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모든 것이 경쟁이다. 잡생각이 많이 들어 내 스스로 몸을 혹사시킨다. 일부러 힘든 언덕으로 구루마를 끌고 다닌다. 언덕을 오를 때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땀은 비 오듯 하지만 언덕에 올라 평지에 내려서면 어김없이 찬바람이 나를 반겨준다. 힘든 곳일수록 고물이 나올 확률이 높다. 평지라든가 도로가엔 유독 고물장수들이 많다. 특히 노인분들이.
늦은 새벽 시간 유흥가 주변엔 왜 이리 불빛이 아름답고 화려한지. 숨소리와 구루마 소리만이 들려오는 한적한 이 골목에 발길을 멈춰 잠시 숨을 돌려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지금 나의 현 위치가 왜 이 모양인지. 언젠가는 내 인생도 슬그머니 스며드는 담배 연기처럼 사라지겠지.
빌딩 사이로 가려진 서울역이 보인다. 이놈의 서울역에서 25년이란 세월을 보냈으니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겠지.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이젠 여기를 벗어나고 싶다. 너무도 지루하고 너무도 병들어 가는 듯한 이곳 서울역.
세상은 아직도 우리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맘도 여리고 정말 착하고 정이 넘치는 분들이 많다. 나쁜 사람들보단 그래도 착한 사람들이 많기에 아직까진 버틸 만하지 않은가.
몇 번의 강의를 듣고 느낀 점이라면 우리나라는 부자와 가난한 자 둘로 나눠지는 듯하다. 한쪽에선 상처를 주고 힘을 과시하는데 나머지 한쪽은 힘없이 쓰러지고 말없이 굶주려가며 상처를 술로 달래는 그런 세상. 불공평한 세상 같다.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 권력과 힘 있는 자들은 가난한 곳을 찾는다. 고아원이며 양로원이며 불우한 이웃들을.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난한 자를 이용하는 부자들이라고밖에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분들이 더 많을 수도 있겠지.
정말 사랑을 간절히 원하는 그런 곳이 아주 많을 것이다. 몸과 마음은 지치지만 마음을 비우니 오히려 홀가분하다. 예전엔 고물을 모으는 사람을 넝마주이라고 불렀다는데 이젠 나도 넝마주이다.
예전 같으면 창피하고 눈치를 살펴가며 이 짓을 했겠지만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 그리고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못할 짓은 아니다. 얼마나 부지런히 움직이느냐에 따라 어느 식당의 잡다한 알바보다 낫다. 이 일을 한다는 자체가 내가 바뀌어가는 게 아닐까 싶다. 아직까진 난 젊으니까.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하지만 그리 할 만한 일이 많지는 않다. 생각을 바꾸면 모든 게 달라지는 것 같다. 모든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 것이 현명한가 곰곰이 생각해보았으면 한다. 자기만 떳떳하면 부끄러울 게 없을 것이다. 아직까지 내 가슴속 한자리에 자리 잡고 있는 글귀가 있다.
“내 일이 없으면 내일이 없다.”
추신: 헌옷이나 잡다한 물건은 나를 주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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