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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전

나의 슬픈 치아 이야기

by vie 2022. 9. 21.

나의 슬픈 치아 이야기

고형곤

 

요즘 치아를 만들려고 치과에 다니고 있습니다. 어제도 치과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처음에 하신 말씀이 쓸 만한 이가 별로 없다고 하시더니 갈 때마다 한두 개씩 이를 뽑습니다. 물론 불가피한 상황이지요. 저는 그때마다 생각하기를 일곱 살 어린애였으면 그 이를 지붕에 던지면서, 까치야 그 이빨 가져가고 새 이빨 가져다 줘 하고 새 이가 나기를 기다리겠지만 지금의 내 나이는 새로 나는 것은 흰머리밖에 없으니, 채우려면 비워야 하고 비우려면 버려야 한다고 했지만 가짜를 넣기 위해 진짜를 버려야 하니! (이렇게 된 것은 전적으로 내 잘못이지만)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행세하고 진짜 같은 가짜가 득세하고 저마다 자기가 진짜라고 떠벌리는 가짜들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진짜를 버리고 가짜가 대신 할 수 있는 곳이 사람 몸 어느 부분이 있을까. 나의 잘못으로 나의 몸을 떠난 치아들에게 미안함의 글을 올립니다.


나의 육신은 썩어 없어져도 너는 오랫동안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겠지만 나의 무지와 무관심과 가난함이 너를 먼저 떠나보냈구나. 그동안 너의 수고함을 고맙게 생각한다. 누군가의 주먹을 먼저 맞으며 다른 동료들을 지켜주었지. 너는 힘들게 음식물을 씹으면서 정작 맛은 혀가 보고 말은 목과 혀가 하는데 듣기 싫은 말 나오면 이빨 까지 마!’라고 하니 힘든 노동을 하며 천대와 멸시를 받았구나. 그러고 보니 이런 대접받으며 사느니 차라리 먼저 떠나는 것도 나쁘진 않겠다.

현생에서는 못난 주인 만나 천수를 누리지 못하고 떠났으니 다음에는 백 년을 살고도 치약 광고 모델 할 좋은 주인 만나서 좋은 대접 받으며 살고 주인의 육신이 썩어가는 것을 지켜보기 바란다. 그동안 수고했고 그리고 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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