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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전

우리는 홈리스입니다

by vie 2022. 9. 21.

우리는 홈리스입니다

여수진

 

가진 것이 없어서
가난한 이들이라서
세상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는 홈리스입니다. 

마음이 여려서
별 뜻 아닌 말에 상처 입고
힘들어하며
스스로 상처받는 것을 두려워하기에
자신을 보이지 않는 끈으로 꽁꽁 싸매지만
따스한 손길, 따스한 말 한 마디를
그 누구보다 그리워하는
우리는 홈리스입니다.

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과거에 어떻게 살았는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현재에 처해 있는 형편으로 우린 평가받고 있지만
남들보다 가진 것이 많이 없을 뿐
그 누구보다 살고 싶어 하는
우리는 홈리스입니다.

현재의 삶이 힘겨워서
생각하기를 멈추었을 뿐
무수한 감정을 느끼는
우리는 홈리스입니다.

드러내놓고 싶지 않은
아픔들이 불쑥불쑥 심장을 뚫고 나올 때면
술의 힘을 빌려 밖으로 튀어나온 아픔들 장단에 휘둘리지만
숨을 쉬고 있다는 것이 원망스러워
숨이 멈추기를 기도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살자고, 살아보자고 질긴 생명 붙들고 있는

우리는 홈리스입니다.

하루 종일 계단 중턱에
무릎 꿇고 머리 조아리며 더 많이 가진 자들에게
손을 내밀 때면 머리 위로 손 위로 따가운 눈총이 쏟아지지만
살아야 하기에
살아야 한다고
살아보자고
힘겹게 손을 내밀고 있는
우리는 홈리스입니다.

남들보다 가진 것이 없기에
가지고 싶은 것이 너무도 많아서
더 많은 것을 가질 수 있다는 꿈을 가진
우리는 홈리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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