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앞에서
서0미
두 눈을 꼭 감고 거울 앞에 섰다. 실눈을 뜨고 살짝 보려다가 곧 다시 감고 만다. 그러기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내 모습을 똑바로 봐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덜컥 겁부터 난다.
거울에 비춰진 모습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더럽고 추하지는 않을까, 온통 일그러진 모습이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내 스스로를 볼 수 없게 만든다.
‘그래, 까짓것 내 모습 좀 안 보고 살면 어때?’라는 생각이 들었다가도 잠시 뒤엔 ‘그래도 봐야지, 그래야 남은 내 삶을 당당하게 살지!’라는 생각에 다시 실눈이라도 뜨고 거울을 바라보려고 애쓴다.
그렇게 실눈이라도 뜨려 애쓸 때, 예술사 수업에서 만난 여러 사람의 자화상들. 그 우연한 만남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고흐의 자화상 몇 점이 연이어 보인다. 한 사람을 그린 자화상이 각기 다른 사람을 그린 것 같았다.
이름 꽤나 알려진 대단한 예술가인 그들도 거울을 보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그들도 처음부터 유명하진 않았겠지. 다들 과거가 있었고 현재를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남았겠지. 그들 또한 나처럼 거울을 보며 일그러진 자신의 모습을 연민에 차서 속상해하던 적이 있었겠지.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그들을 보며 예상치 못한 위안을 받는다.
그리고 눈을 다시 떴을 때 나는 거울 앞이 아니라 마더하우스에 서 있다. 그곳엔 마더하우스에서 잠시 만났던 여럿의 여성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우두커니 앉아서 벽만 바라보는 사람, TV 앞에 멍한 눈으로 앉아 있는 사람, 옆에 사람을 붙들고 앉아서 사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쏟아내는 사람, 아무도 없는 방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싸우는 사람, 빈 봉지를 끌고 하염없이 돌아다니는 사람, 아무것도 없는 싱크대를 한 시간 가까이 씻고 또 씻는 사람, 당당한 걸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와 이것저것 찾으며 한바탕 휘젓고 나가는 사람, 자신을 포장하려 거짓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
그렇게 그들을 보고 있노라니 다시금 눈을 감고 싶었다. 이 모든 모습이 내 모습이라는 걸 인정할 수 없었다. 아니 싫었다. 나는…… 나는 이렇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건 거짓말이니까 다시 나 자신을 속이며 살아가긴 싫으니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두 눈을 크게 똑바로 바라보는 것밖에 없음을 안다. 바로 볼 수 있어야 바로잡을 수 있으니까.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죽을 듯이 아팠다. 내가 원해서 이런 모습으로 살았던 것이 아니라고 주변 환경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하려 했지만 변명하고 있는 나를, 다른 이를 탓하고 있는 나를 발견할 뿐이었다.
나를 본다는 것이 이렇듯 아플 것이라고는 생각 못 했다. 얼마나 많은 거짓말들로 나를 감싸고 있었는지 얼마나 많은 변명들로 나를 정당화시키고 있었는지 아픈 것만큼 부끄러웠다. 하지만 고개를 떨어뜨리거나 다시 눈을 감지는 않았다. 나를 감싸고 있던 거짓말들을 한 꺼풀 한 꺼풀을 벗겨야 하고 변명들 대신 난 나의 모습을 인정하기로 했기에 당당히 고개를 들고 두 눈을 뜨고 있기로 했다. 그래야 앞으로 살아갈 많은 날들을 부끄럽지 않게 살 수 있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거울 앞에 섰을 때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아파하거나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환하게 웃을 수 있도록 지난 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리라 다짐해본다. 거울 앞에서.
*마더하우스: 2009년~2011년, 서울역 앞에 있던 여성 일시보호쉼터. 마더하우스가 사라지고 나서 아직까지도 서울역 앞에는 여성을 위한 일시보호쉼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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