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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화전

1982년 가오리 별곡

by vie 2022. 9. 21.

1982년 가오리 별곡

한명희

 

 

수유리.. 빨래골과 장미원사이에 낀 가오리라 불린 곳

북한산 밑자락에 150평 남짓한 사각진 땅에 15가구가

옹기종기 세들어 살았다. 한쪽에서부터 1, 2~15호 이렇게 불리었고 대각선으로 화장실이 두 곳, 한쪽 귀퉁이에는 식수로 사용하는 수동펌프, 빨래터와 세면장,

짚세기로 대충 가린 동굴 같은 공용샤워장이 있었다.

뒤로는 세 발 큰 뜀 넓이의 가오리천이 악취를 풍기며

쌍문동으로 흐르고 중간에는 텃밭과 공터도 있었다.

 

3호에는 담배를 입에 달고 살고 울긋불긋한 화장을

미친년처럼 떡칠한, 밤술집 다니는 늙은 누나가 사는데

낮엔 이웃꼬맹이 손발톱도 깎아주고, 굶은애들 라면도 끓여먹이고, 내가 머리에 껌을 덕지덕지 붙여오면

석유를 발라 떼주고 머리까지 감겨주던 착한 누나였다.

 

6호 삼춘은 권투 배우는 노총각 백수인데, 하루는

도끼질하다가 지 발등을 찍어, ~ 벌어진 상처가

거뭇거뭇 썩어가는데도 헤헤웃으며 애들에게 풀잎

으로 쪽배를 만들어 주고 땅강아지도 잡아주었다.

얼마 후.. 술집누나와 권투삼춘은 눈이 맞아서 한살림

차렸는데..... 매일 웬수마냥?! 머리끄댕이 잡고 싸우고,

담날이면 권투삼춘 눈탱이가 퍼런 채, 헤헤웃는다.

 

7호에는 같은 반 친구 준호가 사는데, 사흘이 멀다 하고

아저씨가 고주망태가 되어 아줌마 모가지를 빨래줄로

돌돌감아 너 죽고 나 죽자~’ ‘아이고! 사람 살려~’ 소리를 꽥꽥 지르고, 옆에선 준호가 겁에 질려 바들바들 떨며 울곤 했다. 그런데도 한두 명 나와서 말리는 시늉만 할 뿐,

개코나 신경도 안 쓴다. 하루 이틀이어야 말이지~

 

9호에는 나보다 1살 어린, 체구가 작은 재호, 재신이란 쌍둥이가 사는데 가끔 나랑 21로 드잡이질을 할 때도,

솜씨 좋은 그 집 엄마가 만드는 떡볶이, 튀김을 맛보려면 싸움에 져주는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은 5호에 내내 살다가 웬일인지 펌프 옆 15호로 50미터 이사했는데 다락방이 딸려있어서 좋아한것도

며칠뿐, 아침이면 일주일이 멀다 하고 연탄가스에 중독

되어 축 늘어진 채... 엄마 등에 업혀 나와 찬바람을 쐬고 김치국물을 들이켰다.

엄마도 연탄가스를 마셔 괴로우실 텐데도, 밤새도록 삭힌 감주를 들통에 담아 머리에 이고, 다른 한손에는

쥐포와 껌을 들고 동대문 평화시장으로 향하신다.

두어 달에 한 번씩 집주인 아주머니가 월세를 걷으러 오시는데 마흔 살이던 엄마를 아가씨또는 한실네라 불렀고.. 엄마가 죄송하다고 하면 괜찮다고 하시며

엄마와 나를 자장면 집으로 데리고 가셨다.

 

이듬해인 국민학교 5학년 때, 한참 떨어진 큰길 옆

2층 양옥 부잣집 마당 한켠의 셋방으로 이사가던 날~

덩치가 코뿔소만 한 주인아저씨가 나오시는데 서울고등학교 야구부 감독님이라신다. ...그리고 등 뒤에 숨은

한 여자아이가 하얗고 뽀얀 얼굴을 삐쭉~ 내미는데,

눈앞이 캄캄해지고........ 세상이 멈춘다............

 

내가 짝사랑하던, 새초롬한~ 옆반 부반장이다.

 

이런 젠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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