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질 때와 일어설 때
최승식
나는 문득 성프란시스대학 강의 시간에 이 제목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 한 번 이상은 넘어진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이 자기의 실수에 의해서였든 다른 무엇인가의 힘에 의해서였든 간에 말이다.
나는 만 42년 3개월을 사는 동안에 얼마만큼 많이 넘어지고 일어섰을까? 나의 무릎과 가슴에는 어린 시절 넘어지면서 생긴 상처부터, 군에서 훈련 중 넘어지며 다친 상처까지 많은 흔적이 남아 있다. 어린 시절 나는 무수히 넘어지고 부모님이나 주위의 도움을 받으며 조심하고 어떻게 하면 넘어져도 다치지 않는지를 자연스레 익혔을 것이다. 성장하면서 육체적인 중심의 쓰러짐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넘어지지 않는 방법을 유치원에서부터 학교 교육이나 가정에서의 생활 등에 자연스레 아니면 반강제적으로 나에게 주입되었으리라 생각한다.
사람이 넘어질 때 무작정 넘어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머리나 중요 부위를 보호하기 위해 순간적으로 손을 사용하거나 무릎을 이용해 큰 부상이 없도록 몸을 보호한다. 그리고 일어설 때의 모습은 자신이 얼마만큼 어느 부위를 다쳤는지 확인하고 최대한 부상 부위에 충격이 가지 않도록 하며 각각의 순서를 무의식중에 생각하며 일어섰을 것이다.
지금 나는 5년 전 나의 쓰러지는 모습을 생각해 본다. 내가 걸어가는 길에 각(날)이 서 있는 돌이 있는 것을 알았고, 그 뒤에 물구덩이가 진흙에 첨벙거리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당시 그것을 알면서도 돌에 걸리고 싶어 그 돌에 걸리었고 물구덩이에 빠지고 싶어 그 구덩이에 빠졌으며 진흙탕이 온몸에 튀게 하려고 구덩이 안에서 몸부림쳤다. 그러면서 나는 나의 무너지는 모습에 흥분하고 어떤 때는 쾌감도 느끼고 나 자신에 대하여 욕도 하고 일어서기 싫은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지금의 나는 어디에 있는가? 지금도 역시 그 구덩이에 있다. 처박힌 얼굴을 조금 들어서 구덩이 밖을 작은 실눈을 뜬 채 밖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그런데 그전에 그렇게 넘어지고 하면서 익혔던 일어나는 방법을 잊어버린 것이다. 얼굴은 조금 들었으나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모른다. 언젠가 다리를 구부리고 팔을 움직여 일어서겠지. 하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 얼굴을 쳐들어 밖을 보기 위해 눈을 떴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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