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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박경장 - 성프란시스대학 작문교수

 

성프란시스대학은 2005년 9월에 개교해 올해로 8년째가 된 노숙인을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문학 과정이다. 이 과정은 오랫동안 빈곤계층을 대상으로 사목을 해오던 임영인 성공회 신부에 의해 탄생됐다. 임 신부는 자신의 오랜 경험을 통해 노숙인들에게 의식주를 비롯해 당장에 필요한 물질 조건을 제공한다고 해서 그들이 빈곤이나 노숙 상황에서 완전히 벗어난 경우는 거의 못 봤다고 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노숙인 자활의 궁극적 목표는 ‘자존(自尊)감 회복’이었다. 자존감 회복은 당연히 자존(自存), 즉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물음과 성찰에서부터 찾아져야 하는데, ‘자존에 대한 물음과 성찰’, 그건 바로 인문학의 내용이고 방법이다. 때마침 얼 쇼리스의 ‘희망의 인문학’이라는 책을 통해 미국에서 ‘클레멘트 코스’라는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과정의 성공적인 사례가 국내에 소개됐다. 이에 힘입어 노숙인 종합복지센터인 다시서 기센터 내에 부설로 한국판 클레멘트 코스인 성프란시스 인문학 과정이 탄생하게 됐고, 초대 학장으로는 센터장인 임영인 신부가 맡았다.

 

노숙인을 위한 우리나라 최초의 인문학 과정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에서는 일 년 동안 문학, 역사, 철학, 예술사, 글쓰기 등 다섯 과목을 가르친다. 강의는 과목별로 일주일에 한 번 2시간씩 총 15회 에 걸쳐 진행된다. 2학기제로 운영되며 학기마다 세 과목씩 가르치는데, 글쓰기만 두 학기 모두 가르친다. 그리고 10회에 걸쳐 일주일에 한 번씩 2시간 동안 심화학습 강좌를 여는데, 이 강좌는 특별히 졸업생을 위한 특강 형식으로 진행된다. 2010년부터 진행돼 오고 있는 심화학습은 서울대 HK문명연구단 교수들이 돌아가며 세계 문명사에 대한 강의를 해오고 있다.

 

문학수업은 세 가지 실존 영역의 물음에 적합한 문학작품을 읽는다; ‘개인적 실존 - 나는 누구인가?’, ‘사회적 실존 - 무엇이 나를 우리로 만드는가?’, ‘대화적 실존 - 나 자신 그리고 타인과 올바른 관계를 맺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텍스트로는 플라톤의 <동굴의 우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 황석영의 『아우를 위하여』, 조영래의 『전태일 평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 자』, 셰익스피어의 『햄릿』, 괴테의 『파우스트』,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 실러와 보르헤스의 시, 루쉰의 『아 Q정전』,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이다.

 

역사수업은 노숙인 또는 가난한 이들이 역사(학) 또는 역사 사건 속에서 어떻게 자신과 관련된 의미를 이끌어낼 수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수업은 교재수업 과 야외현장수업을 서로 연계해 진행한다. 소풍 형식의 야외현장수업에서는 경복궁, 암사동 선사 유적지와 석촌동 일대의 초기 백제 유적지, 사찰과 서대문형무 소역사관 등등의 답사를 통해 역사를 배우고 문화를 체험한다. 아울러 역사문화유적지를 걸으며 사색에 빠지기도 하고 역사를 포함한 다양한 주제들에 대해 서 로 진지하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갈 것인가

 

철학수업은 현실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성찰하는 ‘사유의 운동’, 죽어 있는 이론을 탐구하는 지식학이 아니라 살아가는 구체적인 행위를 요하는 ‘실천학’, 지금 여기에서 어떻게 자신을 새롭게 만들어갈 것인가 하는 ‘살림의 미학’으로서 철학 수업에 초점을 맞춘다. 몇 해에 걸쳐 시행했던 텍스트 중심 수업은 원래 세웠던 철학수업의 목표에 도달하는 데 일정한 한계를 보였다. 그래서 6년차부터는 수강자들에게 가장 문제가 되는 주제(술, 게임, 도박, 성, 가족, 일, 여자, 돈 ……)를 토론 주제로 삼고 이에 도움이 되는 텍스트를 소개하는 방식으로 교안을 짰다. 텍스트도 철학서만이 아니라 영화, 동영상, 시, 그림 등 수업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이면 모두 택해서 읽고, 보며, 토론에 활용하도록 했다.

 

예술사수업은 이 땅에 깃들며 살아가는 행위와 예술이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를 예술에 대한 고찰과 예술작품 감상을 통해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첫 번째는 예술가들의 자화상과 그와 관련된 주제로 쓴 시들 과 비교 감상하며 실존의 문제를 다룬다. 두 번째는 독일화가 한스 홀바인의 <죽음의 춤> 연작을 월명사의 제망매가, 정태춘의 사망부가와 비교해가며 삶과 죽음 의 문제를 다룬다. 세 번째는 외젠느 들크루아의 작품 <혁명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2차 대전 당시 소련의 전쟁 포스터를 감상하며 예술과 사회의 문제를 다룬다. 네 번째는 에두아르드 뭉크의 <절규>를 감상하며 표현 의 문제를 다룬다. 마지막으로는 고흐의 유명한 구두 그림을 통해 작가와 수용자 사이의 소통을 다룬다. 이 를 통해 예술은 인간이 이 땅에 깃들며 살아가는 근본적인 행위 중의 하나이며, 이 땅에 깃들며 살아간다는 거주의 본래 의미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글쓰기수업은 문학, 역사, 철학, 예술사 과목들과 연계해 타 교과목에서 읽고, 보고, 느끼고, 생각한 내용과 주제들을 다양하고 알맞은 형식의 글로 써낼 수 있도록 훈련한다. 더불어 참 나를 발견하기 위한 성찰 글쓰기와 일상 체험 글쓰기를 통해 세상을 향한 소통의 창을 내도록 돕는다. 자원 활동가들은 정규수업시간에는 수강자들의 맞춤법, 띄어쓰기와 같은 기본 문법을 익히도록 돕고, 여름과 겨울방학 때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수강자 서너 명을 한 조로 묶어 독서 토론과 주제 토론을 열고 이를 글쓰기와 연계시키는 특별모임을 갖는다. 매 기수마다 인터넷 카페를 만들어 자발적인 글씨기를 통한 소통의 장을 마련한다. 개인 문집 형식의 졸업 문집을 발간해 일 년 동안의 인문학 과정을 글로 정리한다.

 

인문학을 삶의 지혜로 받아들여

 

이상에서 보다시피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수업이라고 해서 가르치는 내용이 학교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하지만 배우는 수강자가 받아들이는 인문학 내용은 일반 대학교 학생들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인문학을 학점 따기 위한 지식쯤으로 받아들이는 대학생과는 달리, 노숙인 수강생들은 거의 모든 인문학 지식을 몸속으로 가져와 자신의 체험과 대조·비교해 반성과 성찰이라는 삶의 지혜로 받아들인다. 어려운 텍스트의 추상적이고 개념적인 내용도 자신의 삶 속으로 가져와 구체적으로 이해해 버린다. 학교와 텍스트에 갇힌 인문학이 길거리 삶의 현장으로 내려와 인간학이 되는 현장이 바로 성프란시스 인문학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진정한 수혜자는 죽은 인문학을 가르치며, 산 인간학을 배우는 교수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