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
유0기
마장동, 낯설고 어설픈 세상이면서 또한 신기하고 환상적인 세계였다. 사회에서 첫 출발은 그곳에서 시작되었다.
어느 날 작은아버지는 말씀하셨다. “남자는 자고로 공장생활을 하면서 기름밥을 먹어야 인생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거야.” 그래서 이웃에 살고 있는 아저씨를 따라 마장동에 있는 동신전기라는 회사에 들어갔다. 기계 소리가 웅장하게 들리는 공장 안에는 일하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아저씨 따라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더니 나이 지긋한 사장님, 여사무원, 공장 간부로 보이는 사람 몇이 있었다. 아저씨는 여사무원에게 기술을 배우며 일하기 위해 왔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식당으로 데려가서는 기숙사에서 먹고 자면서 일할 거니까 잘 좀 챙겨달라고 부탁을 했다. 처음으로 공장식당에서 밥을 먹으니 기분이 이상하고 어딘가 모르게 온몸이 짓눌리는 것 같고 마음이 착잡했다.
공장 사람들의 식사하는 표정은 가지각색이었다. 표정이 어두운 사람도 있고, 떠들거나 화를 내는 사람, 언성을 높이면서 싸우는 사람, 오순도순 다정하게 대화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주머니는 나를 보더니 웃으시며 “넌 어디서 왔니? 몇 살이니? 기술 배우러 왔니?” 등등 물으셨다. 아무 말도 못 하고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객지에 나오면 고생이다. 아무쪼록 밥 잘 먹고 몸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지내라.”
“감사합니다.”
인사하고 숙소로 와보니 방은 돼지우리 같아 여기서 지낼 생각을 하니 끔찍하고 앞이 캄캄했다. 브로크 벽돌로 지은 가건물 천장과 벽은 신문지와 시멘트 종이로 덕지덕지 붙이고 발라져 있었다. 부엌은 연탄아궁이로 되어 있었다.
저녁이 되니 작업을 마치고 열 명 정도 되는 공원이 숙소로 돌아왔다.
“어, 사람이 또 왔네!” 기숙사 방장이 나를 보면서 말을 꺼냈다.
“너 일하러 왔니? 어디서 왔어? 그래, 저녁은 먹었니? 이왕 왔으니 잘 지내보자.”
공장 사람들과 통성명을 했다. 새 사람이 왔으니 파티를 하자고 방장이 말했다. 돈을 조금씩 모아 포도주와 막걸리, 땅콩과 오징어, 과자를 사왔다. 한 잔씩 마시며 술잔을 돌리고 라디오를 켜니 만담과 음악이 나와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궁따라 쿵더쿵 짱다 짝짝쿵…….”
여기저기서 노랫소리가 나오고 손뼉 치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반주 좋고, 노래 좋고, 술맛 나고 기분 좋다. 이 밤이 지새도록 춤을 추며 흥겹게 놀아보자꾸나.”
다음 날, 볼트 만드는 생산부에 배치되어 작업을 하게 되었다. 나는 나사 모양을 내는 ‘캇타’라는 기계 앞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이것 말고도 보오릴 기계, 핫타라 기계, 육각형 모양을 만들어 내는 기계도 있었다. 윙윙 쿵쿵 하며 소리를 내면서 기계는 돌아갔다. 귀가 먹먹할 정도로 크게 울리지만 작업장 사람들은 맡은바 자기 일을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일 뿐이었다. 처음이라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아팠다. 모빌유와 경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계는 모빌유를 칠하고 볼트에 모빌유 기름이 묻어 있는 것을 경유로 씻어냈다. 그래야만 깔끔하게 깨끗이 씻기기 때문이었다.
작업장이 워낙 시끄럽고 기계 소리가 크기 때문에 옆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무엇을 가져오라고 하는지 못 알아듣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경우 기술자가 화가 나서 몽키 스패너나 망치를 던져 몸이나 머리에 맞아 피가 흐를 때도 있고 시퍼렇게 멍이 들 때도 있었다. 병원에 입원할 경우도 더러 있었다. 나도 작업하면서 연장으로 쓰는 공구에 맞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잠자기 전에 연탄불을 갈아 넣고 잠이 들었는데 갑자기 고함소리가 들리고 웅성웅성하며 난리법석이 났다. 누운 상태로 눈을 떠보니 옆에 자고 있던 사람이 연탄가스 중독으로 질식하여 입에 거품을 물고 있는 위중한 상태였다. 한 사람이 들쳐 업고 병원으로 가는 것을 보고 나는 또 잠이 들었다. 누가 내 몸을 흔들어 깨우며 뺨을 때리고 김칫국물을 먹이는 것 같았다. 갑자기 한기가 들어 춥기 시작하며 몸이 떨려 왔다. 눈을 떠보니 밖이었고 주위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병원 구급차에 실려 입원을 했다. 이틀 후 퇴원해 기숙사로 돌아와 보니 야단법석이었다. 연탄가스를 마신 사람이 위급해서 병원에 입원시키고 왔는데 나도 연탄가스 중독으로 의식이 없었다는 것이다. 다급한 사람들이 식당으로 김칫국물을 가지러 갔는데 문이 잠겨 있어 망치로 부수고 김칫국물을 가지고 나오다가 넘어져 식탁과 걸상이 부서지고 난장판이 되었단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사람들이 술에 취해 있었고, 술에 취한 몸으로 설쳐댔으니 오죽했으랴.
식당 아줌마가 출근해서 보니 식당이 엉망진창이라 어이가 없어 대충 치웠으나 직원들이 식사하러 갈 때까지도 수습이 안 되었단다. 사무실이 발칵 뒤집혔다. 사장님이 보시고 공장 사람들을 집합시켰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사장님에게 방장이 변명을 늘어놓았다. 송아지만 한 고양이가 쥐를 쫓는데, 마침 문이 잠긴 식당 문틈으로 들어가자 화가 난 고양이가 문을 물어뜯고 발로 차고 헤딩을 해서 문이 부서졌다고 횡설수설했다. 그 말을 들은 사장님이 한바탕 웃으시며,
“야, 너 지금 코미디 하냐? 그만 좀 웃겨라. 너 해고당하고 싶어? 사실대로 말해. 무슨 일이 있었어. 똑바로 말해.” 하셨다.
반장이 두 명이 연탄가스로 질식사할 뻔했다고 말하고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난생처음으로 첫 월급을 탔다. 묘한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아주 좋았다. 땀 흘려 번 돈이라 그런지 보람이 더 컸다. 이 돈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좋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술을 마실까, 아니면 영화를 볼까, 고민 중 같이 있는 친구가 첫 월급을 타면 부모님께 먼저 선물을 해드려야 한다고 귀띔을 했다. 어떤 것을 해드릴까 망설이다가 내의나 목도리를 사드려야겠다고 생각해 선물을 사 집으로 갔다. 작은아버지와 작은어머니께서 반겨주셨다. 작은아버지께서는 힘든 일들도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이니 포기하지 말라고 하시며 꿋꿋하게 살도록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셨다.
나는 육 개월 동안 땀 흘리며 더욱더 열심히 일을 했다. 어느덧 싱그러운 봄이 지나고 여름이 왔다. 기계 앞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졸음이 몰려오고 눈꺼풀이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낮에 먹은 음식이 잘못되었는지 갑자기 현기증이 나고 배가 아파 급히 화장실을 갔다. 그런데 너무 급한 나머지 남자 화장실이 아닌 여자 화장실에 들어온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밖에 있는 여공들이 다 나갈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할 수 없이 화장실을 나오니 많은 여공들이 깔깔거리며 놀려댔다. 내 얼굴은 시뻘겋게 달아 화끈거렸다.
망신은 당했지만 이 일이 계기가 되어 여공들과 친해지고 만나서 놀기도 했다. 재미있는 얘기도 하고 농담도 해가며 친해지자 여자에 대한 호기심도 커졌다. 경희 누나의 유방도 만져보고 키스도 해보았다. 유난히 얼굴도 예쁘고 잘 웃기도 했는데 특히 유방은 복숭아같이 볼록하게 나온 것이 탐스럽기도 하고 부드러우면서 따뜻한 감촉이 나를 황홀하게 하며 심장이 콩당콩당 뛰며 머리가 멍해졌다. 선옥이 누나는 곱상하고 예쁘면서 애교도 잘 부리고 몸이 아프면 옆에 있어주기도 하고 재미있는 얘기도 잘 해주었다. 심심하거나 외로울 때 데이트도 하곤 했다.
대부분의 여자들은 트랜지스터라디오를 조립하는 조립부에서 작업했다. 주로 야간작업이 많기 때문에 야간에 놀러 가곤 했는데 말동무도 하고 짓궂은 장난도 하고 노래도 불러가며 재미있게 놀다 보면 밤이 늦곤 했다. 일요일에 경희 누나와 뚝섬유원지에서 데이트를 하기도 했다. 데이트하며 정답게 사랑을 속삭이며 키스도 하고 유방을 살포시 만져보기도 했는데 부드럽고 따뜻한 감촉이 마음으로 전해져왔다. 누나는 눈을 흘기면서도 살며시 웃어주곤 했다. 잔디밭 호숫가 버드나무 그늘에 앉아 사랑의 대화를 나누고 노래도 부르며 서로 눈웃음을 치곤 했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올 때 누나의 허벅지를 베고 누워 있으면 누나가 더욱 사랑스럽게 보였다. 사랑이란 것이 이런 거구나. 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누나와의 관계가 공장 사람들에게 쫙 퍼졌다. 누나와 데이트한 것을 정윤이 누나가 보고 사진을 찍어 공장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기숙사 식구들은 연애하니까 어떠냐, 같이 여관에도 갔느냐, 몸매는 어떠냐 하며 떠들고 선옥이 누나는 언제 그렇게까지 가까워졌느냐고 질투를 했다. 윤희 누나는 지금도 생각이 난다. 처음 대할 때부터 농담도 잘하고 장난도 많이 쳤는데, 짓궂게 장난하고 농담을 하다 보면 시간도 잘 가고 일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모두들 잊지 못할 고마운 분들이다.
볼트부에서 작업을 하다 보면 얼굴에는 기름이 줄줄 흐르고 손이고 옷에, 심지어 운동화까지 끈적끈적하게 기름이 배어 있거나 흘렀다. 운동화는 오래 신으면 기름에 배여서 무늬가 만들어져 있거나 개 혓바닥같이 축 늘어져 있을 때도 있었다. 세수하거나 손발을 씻을 때도 잘 씻기지 않았다. 쉬는 날에는 목욕탕에 가서 때수건으로 팍팍 문질러 씻어야 기름 냄새가 사라졌다. 작업을 하다보면 경유를 먹는 일이 발생하곤 했다. 그러면 뱃속이 울렁거리고 속이 메스꺼워 토할 때도 있었다. 그러고 나면 머리가 멍해지고 어지러웠다. 공장 생활하는 공원들이 불쌍하게 보였다. 먹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인생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1년이 지나 볼트부가 해체되어 작업을 중단하게 되었다. 볼트부에서 작업하던 사람들은 뿔뿔이 흩어져 다른 공장으로 옮겨 가거나 제 갈 길로 가버리고 나 혼자만 남았다. 가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고아 출신이거나 건달, 깡패로 살아온 그들이었다. 마음잡고 살아보겠다고 땀 흘려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세상살이가 쉽지만은 않았다. 나는 전선부로 배치되어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 보는 전선 작업이 신기했지만 일은 무척 고달프고 힘들었다. 돌아가며 작동하는 기계가 여러 대 연결되고 ‘로라’라는 조그만 기계는 구리와 맞물려 돌아가면서 당겨주면 굵은 구리를 가느다랗게 늘려주기도 했다.
다른 부서에서는 방앗간 기계처럼 생긴 것이 있는데 고무 종류를 기계에서 녹여가지고 반죽하여 빈대떡처럼 넓적하게 나오는 것이 국수가락 뽑기 전 밀가루 반죽하여 판판하고 넓적하게 나오는 것과 똑같다. 그리고 잘게 쪼개어 나오면 그 작업은 완료된다. 로라와 웅장한 기계에 실패처럼 생긴 큰 나무판에 가느다란 구리가 감겨 있는 물건을 웅장한 기계에 걸쳐 놓고 연결하여 로라와 같이 돌면서 쭉 나가면 중간에 정미소 기계처럼 되어 있는 통에 잘게 잘라 만들어진 고무를 부으면, 기계 안으로 들어가 뜨거운 고열에 녹으면서 구리철사가 지나가면서, 고무 액체가 구리를 입히면 전선이나 전깃줄이 되어 나온다. 완성된 전선이나 전깃줄을 잘 감아 정리정돈하면 작업은 끝이다.
육 개월 정도 일을 하다 보니 다른 부서에서 일손이 모자란다고 그쪽으로 작업 배치가 되었다. 프레스부! 철판 자르고 접고 모양을 내는 곳이었다. 여기서 내게 안전사고가 두 번이나 일어났다. 내 양손이 뭉그러지고 상처가 난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내 작업은 형광등 갓을 접어서 모양을 내는 일이었다. 철판을 잘라 오면 자른 철판을 접고 구멍도 내며 꽃무늬 모양도 내며 기계 용접으로 땜질도 했다. 집과 갓을 만드는 것이었다. 처음은 어설프고 익숙지 않아 작업 진도가 느렸다.
한 달 정도 하고 나니 반숙련공이 되어 작업 능률도 올랐다. 옆에서 일하는 친구와 농담도 주고받고 장난도 치며 일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내가 그런 꼴이 되었다. 일이 익숙해지고 자신감이 생겨 주의를 게을리 한 탓도 있고 방심한 탓도 있었다. 야간작업을 몇 주일 정도 하고 나니 몸이 피곤하고 졸음도 오며 지쳐있었다.
그날도 피곤한 몸으로 야간 작업에 들어갔다. 일을 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순간 왼손이 기계에 딸려 들어가 손가락 세 개가 기계에 끼여 손톱하고 같이 으스러져 있었다. 당황한 나머지 소리를 지르니까 옆에서 일하던 친구가 놀라 사고 났다고 소리를 질렀다. 작업반장이 달려와 기계의 전원 스위치를 끄고 기계를 해체해 손을 빼보니 손가락과 손톱이 으스러지고 피투성이가 돼 붕대로 대충 감고 급히 병원으로 갔다. 응급치료하고 엑스레이 촬영을 해보니 손가락뼈가 부러져 손상이 심해서 수술도 못 하고 오랫동안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했다. 정상으로 치료가 될지도 모르겠고 아무튼 장기 치료가 필요하다고 했다.
깁스하고 삼 개월 치료 받으니 어느 정도 완쾌되었는데 뭉그러지고 일그러진 손가락이 소름 끼치게 흉해 보였다. 차라리 깁스를 안 풀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집에 가서 한 달 정도 쉬고 있으려니 좀이 쑤시고 답답해서 공장엘 찾아가 일자리를 찾았다. 일 년은 그럭저럭 열심히 일을 했다. 프레스부는 주로 야간작업이 많았다. 누나들도 보기가 어려웠다. 누나 몇은 시집가고 처음 들어온 누나들도 많았다. 몇 년 동안 누나들에게 고생도 많이 시키고 간호도 받고 위로도 많이 받았다. 아플 때, 외롭고 심심할 때, 간식도 사다 주고 재미있는 말도 해주고 내 옆에서 있어 주기도 했던 누님들.
어느 날 물량이 많아 야간작업을 하는데 마귀가 내게로 와 다정하게 속삭이며 잠자고 싶지? 잠이 와 죽겠지? 자라. 왜 고생을 하니? 잠으로 유혹을 했다. 프레스 앞에서 잠깐씩 졸고 있는데 무언가가 날아와 내 머리를 쳤다. 순간 통증과 함께 정신이 돌아왔다.
“야, 인마, 정신 차려. 기계 앞에서 졸면 어떻게 해! 사고 나.”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세상모르고 깊은 잠에 빠졌다. 아침에 일어나 하늘을 보니 구름이 잔뜩 끼고 흐리며 비가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작업하러 나갔는데 공장 사람들이 일하지 않고 웅성거리며 서성거렸다. 사무실에선 방송을 통해 모두들 작업을 하십시오라며 작업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프레스 기계를 맡은 직공이 나오지 않아 내가 프레스 작업을 하게 되었다. 기술적인 문제는 반장이 하고 나는 기계 돌리며 철판 자르는 작업을 했다. 발로 페달을 밟아 기계를 돌리고 철판을 잘랐다. 손과 발이 박자가 맞아야 한다. 박자가 틀리면 대형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 아주 위험한 작업이기에 잠시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다. 반장은 항상 경고를 했다.
삼일 동안 비는 내리고 땅을 철퍼덕거리고 공장 안은 눅눅하고 곰팡냄새도 났다. 기분도 좋지 않고 몸도 무거운 느낌이 들었다. 불행은 한순간에 일어났다. 앗! 하는 순간 기계에 오른손이 딸려가면서 손등이 뭉그러지고 손가락 세 개가 철판과 같이 잘려 나갔다. 피가 튀면서 손가락도 튀었다. 파닥파닥 춤을 추며 손가락들이 손으로부터 튀어 나갔다. 구급차를 타고 병원에 입원했다. 응급치료하고 수술을 했다. 회복되더라도 정상으로 돌아오기 힘들고 일하기도 힘들 거라고 했다. 손가락을 꿰매 붙이고 손등을 여러 번 수술을 했다.
깁스를 하고 한 달 동안 입원 생활을 했다. 퇴원을 하고 집에서 통원 치료를 육 개월 받았다. 참으로 괴상하게 생겼다. 누가 조각품을 만들어 냈는지 손이라고 보기 어려웠다. 오른손, 왼손, 성한 데 없고 모양도 가지각색이었다. 흉하고 일그러진 손, 거기다가 손톱 세 개는 뭉그러지고 세 개는 손톱이 없다. 나의 손을 보고 있노라면 소름이 오싹 끼친다. 항상 양손에 장갑을 끼고 다녀야 하고 긴소매로 감추어야 한다. 다른 사람이 혹시라도 볼라치면 문둥병 환자 보는 것처럼 놀라 소리를 지른다. 흉측하기 때문이다.
한 십 년 넘게 죄인처럼 불편하게 양손을 감추고 살아야 했다. 하지만 거의 40년 가까이 살아오면서 손을 보니 행운이랄까 기적이랄까 정상적으로 돌아오고 살아가는 데 불편도 없다. 손톱도 다시 나와 언제 병신이었던가 생각이 들 정도다. 참으로 기적이다. 영원히 병신이 될 줄 알았는데, 태양은 지고 나면 다음 날 다시 떠오른다. 잘리고 뭉개진 손과 손톱이 이렇게 다시 살아났는데, 내 어두운 시절이 지나면 다시 밝은 날이 오지 않겠는가? 아니 어쩌면 밝은 날은 벌써 와 있는지도 모른다. 내가 만난 희망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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