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장 (글쓰기 교수, 문학평론가)
지난 3월 초순 아직 봄꽃도 피기 전인데 <여름이 저무는 소리>라는 책을 택배로 받았다. 포장을 뜯으니 책은 리본매듭을 한 노끈으로 묶여 있었다. 보낸 이의 정성을 느끼며 나는 조심스럽게 노끈을 풀었다. 돌돌 말린 주먹을 펴듯 책 표지 위에서 화사하게 빛나는 보랏빛 별꽃 ‘꽃마리.’*
2년 전 3월 초순, 나는 온몸을 얼어붙게 하는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가 새벽의 별처럼 빛이 되었습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문자를 찍었다.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세상에 신이 존재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있다면 신은 천벌 받을 것이오. 안 돼.” 하지만 어떤 대목이 마음에 걸렸는지 나는 그 문자를 보내지 못했다. 대신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두 부부는 서로 신뢰하고 사랑하며 존경했음을 증언하는 증인으로 남겠소”라는 답문을 보냈다.
송수경, 그녀는 13년 전 성프란시스 인문학 1호 자원활동가였다. 그녀가 홈리스(homeless) 선생님들에게 만들어준 온라인 카페 홈(home)에서 사용한 아이디가 ‘꽃마리’였다. 그렇게 일 년 동안 그녀는 인문학 4기 선생님들에게 밤이면 꽃마리로 별처럼 반짝반짝 빛났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나고 4기 졸업이 다가왔다. 풀었던 꽃마리도 다시 돌돌 별빛을 말아야할 때, 아무도 모르게 별을 딴 온달장군이 나타났다. 4기 학무국장이었던 이선근. 그가 일 년 동안 무릎 꿇고 낮게 엎드려 수없이 눈 맞추고 꽃마리를 불렀다는 걸 우리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2009년 봄날 꽃마리는 다가와 자신의 이름을 불러준 이선근 낭군의 인생 반려자가 되었다. 우리학교 설립자이자 초대 학장이었던 임영인 신부님의 축복기도와 안성찬 교수님의 축복인사로 견우직녀 같은 이 아름다운 부부는 백년가약을 맺었고 나는 축하연주로 대금을 불었다.
결혼 후 신랑은 교회 전도사와 신학대학원생으로, 아내는 사회복지사 대학원생으로 평택에서 신혼살림을 꾸렸다. 해마다 안부 인사를 거르지 않던 신랑은 몇 년 후 잘 생긴 아들을 업고 아내와 함께 내가 다니던 구립도서관까지 찾아왔다. 단란한 일가를 이룬 온달과 꽃마리가 얼마나 행복해 보이던지 반짝반짝 빛나는 별빛가족이었다.
이후로도 신랑은 정기적인 안부인사로 자신들의 근황을 내게 전해주었다. 자신은 신학대학원을 마치고 유학을 갈까 고민 중이며, 아내는 평택대에서 상담학으로 박사과정을 곧 이수할 예정이라고.** 나는 단언컨대 내 주위에서 이 부부만큼 서로를 존중하고 신뢰하며 사랑하는, 그리고 우리사회의 약자들을 위한 관심과 배려를 삶으로 실천하며, 신을 향한 참된 믿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젊은 부부를 본 적이 없다.
그런 부부를 2019년 3월 5일 세상은 그리고 신은 하늘과 땅으로 갈라놓았다. 폐암이 발병한 지 1년 반, 44세의 나이로 그녀는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를 땅에 남겨두고 홀로 하늘의 별빛이 되었다. 저자의 말처럼 “어쩌면, 나처럼, 그리고 세상처럼, 저 전능한 신도 그녀를 잃었는지 모른다(170쪽).” <여름이 저무는 소리>는 지난 2년 동안 그녀를 기억하며 그가 쓴 시와 단상 그리고 사진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책은 3부로 구성돼 있는데 “2020년(1부)부터 2019년(2부)까지는 시간의 역순으로 감정이 흘러왔던 길을 되돌아가고, 한편 2018년(3부)은 살아있던 그녀가 죽음에 다가가는 과정을 따라”갔다고 서문에서 저자는 밝히고 있다. 불과 200여 쪽밖에 안 되는 글길이지만 나는 쫓아가기가 벅찼다. 어떤 길목에선 내 눈길로도 저들 슬픔의 성역이 침범되어서는 안 될 것만 같았다. 그럴 때면 나는 잠시 책갈피로 내 눈을 덮었다.
“그녀가 잠이 들려할 때, 나는 그녀의 관자놀이, 이마, 턱, 그리고 가슴에 라벤더 오일을 각각 한 방울씩 바르며, 따뜻하고 경건한 햇살의 목소리로 선언한다.
"생명, 평화, 아름다움, 헌신, 그리고 사랑, 이 가치들은 그대에게 허락된 것입니다. 그대가 나를 사랑하고 내가 그대를 사랑합니다. 우리는 아주 오래전에 하나였고,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10쪽).”
호스피스 병동에서 숨을 거두기 며칠 전 그녀 머리맡에서 그가 한 거룩한 선언이다. 그녀를 보내고 난 500일 동안 밤만 되면 그는 “별빛을 잃은 별빛(27쪽)”이었고, 그가 “살아왔던 이유였”던 그녀가 이제는 그가 “죽어가는 이유”(74쪽)가 되었다. 목숨은 한 사람에게만 부여된 몫이지만 그는 “죽음은 반드시 죽은 이만의 것이 아니다. 죽음은 되려 산 자의 처연한 것이 된다 (82쪽)”고 했다. 아내를 보내고 그녀의 유품을 정리하다 맞닥뜨리게 되는 산 자의 처연함이란...
“보바스 병원에 있을 때, 그녀는 새해에 사용할 가계부 다이어리를 기록하고 있었다. 가족의 기념일과 한해살이를 달마다 세세하게 기록한 것인데, 12월 마지막 장에는, 그녀가 투병한 지 만 2년이 되는 기념일에 동그라미를 그려놓았다. 그런데 거기에 눈물이 떨어져 얼룩이 남았다. 비록 그녀 자신이 세상에서 곧 사라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동그라미는 부디 그곳에 있었으면 했던 것이다. 동그라미는 그곳에 있어야 했다. 그러고 나서 며칠 후 하늘이 보고 싶다고 했던 그녀의 마지막 말이, 지금 저 하늘 아래 너무 생생하여, 나는 엉 엉 운다. 도저히 너무 슬퍼서 참을 수 없다. 고속도로를 가속하여 달리는 동안, 슬픔이, 나 혼자 울어야만 하는 슬픔이, 나와 함께 시속 100키로의 속도가 되어 준다. 삶도 죽음도 괴로운 나, 그녀의 죽음이 내게서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22쪽).”
책 마지막에 저자는 엄마가 살았다면 아들과 함께 어떤 일을 하고 싶었을까, 상상하며 깨알 같은 목록을 적어놓았다. “예섭이 성년 축하 파티해주기(스무송이 장미꽃과 향수 선물하기)...아빠랑 예섭이 힘들 때 곁에서 무조건 응원하며, 또 믿어주며 하소연 들어주기...새로운 맛집 아빠랑 예섭이랑 찾아다니며 맛 품평하기...예섭이 유치원 버스 등하원 해주기...매년 아빠와 예섭이 생일 축하해주기.”
p.s.
“꽃마리, 올해로 성 프란시스 인문학과정이 17년째예요. 작년엔 교육계 연암 선생, 곽노현 신임학장님을 맞았지요. 꽃마리가 첫발을 내딛은 후로 50여 명의 자원활동가가 거쳐갔답니다. 성 프란시스 인문학과정 20주년 책이 발간되면 연력에 ‘2008년 1호 자원활동가 송수경’이라 적고 ‘동그라미’를 그려 넣을까 해요. 꽃마리, 혹 우리 선생님들 쓰러지면 아침이슬 동그라미 새벽 별빛으로 바닥잠 깨워주세요. 다시 일어서라고.”
*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피는 들꽃으로 봄에 작은 보라색 꽃들이 줄기나 가지의 끝 부분에 피는데, 태엽처럼 말려 있다가 펼쳐지면서 꽃이 핀다고 해서 ‘꽃마리(말이)’라 이름이 붙여졌다.
** 송수경은 2018년 2월에 평택대학교 상담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평택대 상담학과 비정년제로 임용되었으며, 학생상담실 실장직을 맡고 있었다. 2021년 현재 이선근은 감리교신학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학위논문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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