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진/제32호
[역전 칼럼] 졸업 문집은 대체 불가능한 작은 빛의 기록입니다/곽노현학장님
by bremendhk
2026. 2. 23.
자랑스러운 성프란시스대학 21기 선생님들의 졸업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난 1년간 매주 치열하게 읽고 쓰고 토론하며 인문학의 숲을 거닐어 온 선생님들의 노고에 깊은 경의를 표합니다.
작년은 성프란시스대학이 문을 연 지 2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였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이제 막 성인이 된 나이입니다. 이 특별한 해를 맞아 우리는 여러 기쁜 일들을 함께 겪었습니다. 2학기부터는 더 쾌적한 곳으로 배움터를 옮겨 우리 선생님들이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공간이 주는 안락함이 우리 선생님들의 학습 편의와 자부심을 조금 높여주었기를 바랍니다.
이번 21기 졸업생은 아홉 분입니다. 누군가는 1년이라는 긴 시간과 투입된 노력에 비해 숫자가 적다고 툴툴거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숫자 뒤에 숨겨진 ‘밀도’를 봅니다. 이번 21기는 유난히 개근율이 높았습니다. 이는 단순히 수업을 잘 들었다는 의미를 넘어, 서로를 배려하고 아끼는 ‘인화(人和)’가 훌륭했다는 방증입니다. 보기 싫은 사람이 있으면 발길을 끊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끝까지 서로를 격려하며 완주해낸 선생님들의 우정이 참으로 귀합니다.
20주년을 기념하여 풍성한 열매도 맺었습니다. 4기 졸업생 권일혁 선생님의 시집 『빗물 그 바아압』, 박경장 교수님의 『서울역 야생화』, 그리고 지난 5년간의 졸업문집을 엮은 『서울역 이야기』까지 세 권의 책이 세상의 빛을 보았습니다. 출판 비용을 위해 텀블벅 모금을 통해 많은 시민이 십시일반 힘을 보태주셨고 우리의 활동을 눈여겨보신 한 고액 기부자님의 지속적인 후원 약속으로 늘 우리를 괴롭히던 재정난에서도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어디 그뿐입니까. 청파동 언덕에는 우리 졸업생들이 문을 연 한식당 ‘정담’이 성업 중입니다. 밥을 짓고 손님을 맞이하는 선배들의 땀방울은 인문학이 책 속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삶과 직업의 현장에서 어떻게 꽃피우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선생님 여러분, 그리고 귀빈 여러분,
저는 이 기회를 활용해서 스무 돌을 맞은 성프란시스대학의 학장으로서 여러분께 하나의 화두를 던지고 싶습니다. 만약 우리 사회에, 그리고 노숙인 사회에 성프란시스대학이 없었다면 세상은 어떠했을까요? 쉼터와 급식소, 클리닉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밥만으로는 살 수 없습니다. 빵이 육체를 지탱한다면 인문학은 무너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고 ‘나’라는 존재의 고유함을 성찰하게 만드는 영혼의 양식입니다.
우리 사회에는 효율과 숫자로는 잴 수 없는, 그러나 반드시 존재해야만 하는 ‘작은 빛’들이 있습니다. 성프란시스대학은 지난 20년간 거리의 선생님들이 스스로의 존엄을 회복하고 세상과 다시 관계 맺기로 들어가는 숨통이 되어왔습니다. 우리가 펴낸 두툼한 문집들은 단순한 글 모음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치열한 영혼의 기록이자 역사입니다. 21기의 졸업문집도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세상을 향한 작은 목소리이자 어둠 속을 뚫고 나온 작은 빛들을 담고 있습니다.
성프란시스대학과 이곳을 거쳐 간 선생님들이 존재함으로써 우리 사회는 재활의 의미가 단순한 의식주 해결을 넘어 인간 됨의 회복, 즉, 저마다 고유한 목소리와 작은 빛의 회복에 있음을 묵묵히 증명하고 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작은 대학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자 성프란시스대학이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이유입니다. 성프란시스대학은 작지만 아름답고 대체 불가능한 하나의 기적입니다.
성프란시스대학의 한 해 한 해는 교수님들의 숙련된 헌신, 다시서기지원센터의 전문적인 지원, 자원활동가들의 따스한 손길, 그리고 졸업 동문들의 격려가 합력하여 이루는 선(善)의 역사입니다. 어느 하나도 빠지거나 처져서는 안 되는 이상적인 연대의 고리 안에서 함께해주신 모든 분께, 그리고 성프란시스대학의 보람인 졸업생 선생님들께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오늘 문집에 실린 여러분의 글들이 세상에 던지는 작은 울림이 되기를, 또한 여러분이 앞으로 걸어갈 길 위에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밝힌 인문학의 등불이 꺼지지 않고 비추기를 소망합니다. 졸업을 다시 한번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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