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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32호

[인물 인터뷰] 성프란시스대학 초대 후원회장 강대중 교수님 '내가 삶의 주인이 되는 학습. 평생 학습이 없으면 그 삶은 멈춥니다.

by bremendhk 2026. 2. 23.

글: 김혜진 (성프란시스대학 자원활동가)

인터뷰어: 김동훈 교수님 (성프랑시스대학 예술사 교수), 김혜진

인터뷰이: 강대중 교수님 (서울대 교육학 교수)

 

 

Q. 안녕하세요, 교수님.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A. 저는 서울대학교 교육학과에서 2008년부터 교수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어느덧 20년을 향해 가네요. 대학에서 교수로 일하기 전에는 공공기관인 국가평생진흥원에서 반 년 정도 근무했구요. 그 이전에는 석사과정 지도교수이셨던 김신일 선생님께서 교육부 장관으로 재직하실 때 교육부에서 정책보좌관으로 일을 했어요. 학부를 졸업하고 나서는 신문기자를 잠시 하기도 했습니다. 

Q. 다양한 일을 하셨네요. 평생학습에 대해서 많은 연구를 하고 계신데 미국 조지아 대학교에서의 박사논문은 어떤 주제를 가지고 쓰셨나요?

A. 석사과정 때 지도교수님께서 [뿌리깊은 나무]의 [민중 자서전] 시리즈를 도서관에서 대출해 오라고 하셔서 20권 빌려 온 적이 있어요. 교수님 연구실 구석에 책상을 얻어 공부할 때라서 저도 보게 되었는데 주인공들의 학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인간문화재의 생애를 기록한 자료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나서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성장하고 해방 이후에 왕성하게 활동한 분들이셨어요. 이분들은 사실상 독학으로 공부하셔서 훗날에 인간문화재로 지정되셨죠.

미국에서 박사 논문을 작성할 때 [민중 자서전] 시리즈가 생각나서 자서전 주인공들이 어떻게 배우고, 그 배움이 어떻게 다음 세대로 전승되는지를 연구하고 싶다고 미국 지도교수님께 말씀드렸는데, 쾌히 승낙해 주셔서 그게 제 박사논문이 됐습니다. 학위논문 제목이 Life and learning으로 시작하는데, 삶과 학습이 어떤 방식으로 얽혀 있는지를 탐색하는 게 논문의 문제의식이었어요. 나이와 무관하게 계속하는 학습이 삶을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논문을 쓰면 깨닫게 됐습니다. 

 

Q. 평생학습이 우리 삶에서 이렇게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A. 공부하지 않으면 빠르게 변하는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도태될 수 밖에 없다는 불안감이 더 커진 사회를 우리가 살고 있는데요. 제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평생학습이 단순히 현대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술적인 도구가 아닌, 학습이 어떻게 우리의 삶을 만들어 가는지, 그리고 자신의 삶의 필요에 의해서 어떻게 학습을 찾아가는지, 그런 관점에서 평생학습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평생학습은 삶을 조금 더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한 것이죠.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려고 한다면 결국 자기 삶 자체에 대해서도 학습해야 하구요

 

Q. 내 삶을 내가 주인이 되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평생교육이 꼭 필요한 것이네요. 우리나라의 평생교육은 현재 어떤가요?

 A. 학교교육을 마친 후에도 계속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있지만 아직 공적인 제도나 지원이 충분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평생학습 참여율 조사를 해보면 대략 성인 10명 중 3~4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보다 경제 사회적으로 더 먼저 발전한 국가들이 10명 중 5~6명 참여하는 수준입니다. 최근 평생학습관, 복지관, 도서관, 주민자치센터, 문화센터 등에서 다양한 평생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어요. 직업 관련 평생교육도 많이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평생교육이라고 하면 개인의 미나 자기만족을 위한 일종의 문화적 소비로 생각하는 거 같아요. 그래서 아직 국가 수준의 재정 투자가 매우 미약한 상황입니다. 25세 이상 학령기 이후 평생교육 지원에 교육부 예산의 1% 정도도 투자가 안 되고 있어요. 매우 부끄러운 수준입니다. 우리나라는 초중고생 교육에 국가와 가정에서 엄청난 투자를 하는 나라인데요. 학업 성취도는 높지만 행복도는 매우 낮아요. 게다가 학령기 이후 평생교육 투자가 매우 취약하기 때문에 성인기의 역량 수준이 매우 급격하게 하락하는 나라이기도 해요.  

학령기 교육이 매우 경쟁적이기 때문에 서로 협력적으로 소통하고, 민주적으로 의사결정을 하는 역량을 키우기가 어려운 게 한국 학교교육의 가장 큰 문제인데요. 이런 점에서 평생교육의 역할이 매우 중요한데 개인의 흥미나 만족 위주로 평생교육을 접근하는 게 지배적이라 매우 아쉬운 상황입니다. 예를 들면 도서관에서 이루어지는 독서 프로그램이나 토론 모임이, 강사가 와서 일방적으로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자들이 서로 다른 의견을 나누면서 자녀 교육 문제, 살고 있는 지역과 사회 문제를 논의할 수 있거든요. 자연스럽게 민주시민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는데, 그런 게 아직 잘 일어나지 않습니다. 교육은 한 사회의 상태를 보여주는 시금석이기도 하고, 그 사회의 전반적인 수준을 높이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평생교육이 시민성, 시민의식 향상과 사회적 역량을 배양하는 데에 더 노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Q. 지금도 교육현장에서 보면 교육하는 사람들이나 교육 받는 사람들 모두가 개방형 토론을 두려워하고 있는데 모두가 말 할 수 있고 서로의 대화를 조율해 갈 수 있는 구조가 절대적으로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학교나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어느 순간에 열띤 토론이 이루어 질때가 있는데 저도 몰랐던 것을 그 때 배우게 되고 그게 집단 지성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아이들은 영어유치원이나 선행학습등 많은 교육을 받고 있지만 기본적인 인성교육의 부재같은 면에서는 아쉬움이 큰데요. 교육을 미래의 좋은 직업이나  경제적인 안정을 얻기 위한 준비과정으로만 여기고 있는 것 같아요. 앞으로 교육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A. 교육 단순히 누군가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학습을 관리하는 행위이 제도라고 이해할 수 있어요. 사실 가정이나 학교에서 교육이라고 부르면서 하는 일이 자녀나 학생의 학습을 적극적으로 관리하는 것이죠. 요새 상류층에서는 자녀를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게 인기라고 하는데 자녀의 학습을 관리하는 한 방식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곳에서 지식을 전달하거나 기능을 익히는 학습의 관리에는 관심이 높지만, 인성과 사회성을 계발하는 학습의 관리에 얼마나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교육을 학습을 관리하는 행위와 제도로 볼 때 중요한 건 ‘학습의 주체인 사람이 스스로 학습할 수 있다’라는 것을 전제하고 관리자라 할 수 있는 부모나 교사가 그 전제를 받아들여 학습자인 자녀와 학생을 신뢰하는 겁니다. 그게 되지 않으면 학습의 관리라는 말은 현실에서 왜곡된 형태로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만약에 학습자에게 억지로 어떤 학습을 강제하면 결국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본인의 필요와 요구에 반 학습을 ‘통제’ 당하는 건 비극적인 일이죠. 사회적으로 그런 방식의 학습 관리가 일상화되면 종국에는 사회 배신당하는 일이 일어난다고 생각해요.

 

Q. 그렇군요. 실제로 학습자와 관리자 사이에 신뢰나 정서적인 면이 결여된 교육이 결과적으로 가져오는 사회문제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지식교육은 넘쳐나지만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는 메말라 가는 시대인데요. 나와 다른 처지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도 점점 무관심해지고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선도 마찬가지 인것 같아요. 교수님은 어떤 계기로 노숙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셨는지, 성프란시스학과는 어떻게 인연이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요. 

A.  2008년에 교수가 되고 석사과정 학생으로 지금 방송통신대에 재직하고 있는 태 교수를 만났어요.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교실에 들어가서 논문을 쓰고 싶어했고 마침 그 무렵에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님께서 노숙인 구술사를 채집하고 계셔서 저도 함께 하게 되었죠. 그렇게 해서 성프란시스대학과 직접적으로 연결이 되었어요.  그곳에서 열심히 헌신하고 계시는 교수님들이 계시다는 걸 알게 되었고 멀리서 응원하게 됐습니다. 

 

Q. 그랬군요. 제가 몇 년 전에 다시서기 센터에서 아웃리치를 시작했을 때 노숙인에 대해서 좀 더 알기 위해서 책을 두권 구입했는데 그 중 한권이 아까 교수님이 참여하셨다고 하신 서울대에서 발간한 [한국의 노숙인]이였어요. 그 책을 읽으면서 어떤 과정을 겪으며 노숙의 상황에 들어오게 되는지노숙인의 삶이나 사회 복지 문제 등에 대한 내용들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주위에서 노숙인을 바라볼 때 개인의 노력 부족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데 사실 우리가 ‘노숙’문제를 이야기할 때 빈곤문제와 함께 교육의 부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 같아요. 

A. 저는 노숙인 지원은 교육의 문제로 풀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노숙에 이르게 되는 경로를 보면 많은 경우 성장기부터 구조적인 교육 결핍이 반복되어 왔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어요. 그런데 누구도 그것을 지속적으로 돌보고 책임지지 못했어요. 부모 역시 학교 교육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고 아이들 교육을 학교에 맡겼지만 학교 또한 여러 사회적, 환경적 제약 속에서 충분한 돌봄과 교육을 제공하지 못했죠. 그럼에도 이러한 결과를 개인의 책임으로만 돌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학교 단계에서 교육 결손 누적적으로 경험한 사람들이 있어요. 기초교육의 결손이 매우 큰데 직업세계에서 생존하는 게 버거울 수밖에 없어요. 여기에 사회경제적인 요인도 중요하게 작용해요. 불황으로 사업에 실패하거나, 안정적인 임금 노동에 진입하지 못한 채 비정규직이 불안정한 노동을 전전하다가 한 번의 선택이 어긋났을 때, 삶 전체가 추락하기도 합니다. 이를 전적으로 개인의 노력 부족, 개인의 문제라고만 바라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Q. 그런 교육의 결핍을 겪어 온 노숙인을 위한 평생교육은 어떻게 이루어 져야 할까요?

A. 교육이 학습을 관리하는 행위와 제도라면, 평생교육은 평생학습을 관리하는 행위와 제도라 하겠습니다. 삶이 끝날 때까지 교육이 필요합니다. 그 말은 곧 우리의 삶 속에서 학습이라는 것을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에요. 

저는 평생학습을 삶에서 길어 올린 학습이 다시 삶을 길러내는 학습이라고 정의하는데요. 자기 삶이 학습의 소재이고 내용이라는 것이요. 인간의 삶을 체계적으로 접근하는 학문이 인문학입니다. 학문적으로 체계화한 렌즈로 삶을 바라보는 것이 매우 낯선 사람들도 많아요. 하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고어떻게 본인의 삶을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있단 말이에요. 제가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발간하신 권일혁 선생님 시집을 읽으면서 ‘아, 이분은 자신의 삶을 시의 소재로 삼았고, 자신의 삶을 정말 열심히 공부하셔서 써 놓으신 게 이 시들이구나’ 생각했거든요. 자기의 삶을 소재로 학습한 결과를 시로 승화시켰다는 면에서 권일혁 선생님은 탁월한 평생학습자라고 생각해요. 

평생학습이라는 것이 삶에서 길어올린 학습이라는 것은 곧 자기 삶을 이해하는 것, 자기 삶의 필요가 무엇인지를 발견하는 것이에요. 이해하고 발견하면 누구든 열심히 공부하는 상태에 있게 됩니다. 자신의 삶을 공부하면 어떻게 자신의 삶을 꾸릴 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저는 그 생각이 이제까지 삶과는 다른 삶을 만드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삶을 길러내는 학습이겠고, 그 과정에서 행복 삶도 찾을 수 있을 거구요.

 

Q.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인문학 과정을 통해 선생님들이 변화하시는 모습을 보게 되는 데요.  ‘나’를 알고 ‘자신의 삶’을 이해하게 되고 ‘앞으로의 삶’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하며 새롭게 계획하시는 모습들이 인상적이에요. 

A. 자신의 삶에서 길어올린 소재로 학습을 하도록 돕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학습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에서 길어올린 학습을 하도록 지원하는 것은 많은 노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 힘을 북돋아야 하거든요. 성프란시스대학 교수님들을 제가 참 존경하는데, 이 일을 너무나도 훌륭하게 해내세요. 

제가 성프란시스대학에서 공부하신 분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자신의 생에서 그런 경험을 처음 했다고 하시더라구요. ‘학습자로 존중받는 경험’이요. 자신의 삶이 바닥을 쳤을 때 인문학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하고, 비로소 본인의 삶을 긍정할 수 있게 된 얘기를 해주시는 데 아주 큰 감동을 받았어요. 저는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이 진짜 교육이 무엇인가를 생생하게 보여주신다고 생각해요. 

 

Q. ‘존중받는 경험’이라는 말이 마음에 깊이 와닿네요. 노숙 상태에 있거나 노숙을 경험했던 분들이  탈노숙이나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며 살아가기 위해서 교육과 함께 또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요?

A. 탈노숙을 무엇으로 정의할 것인지 고민해봐야해요. 노숙으로의 진입경로는 비교적 명확하지만 많은 분들이 불안정한 주거와 일자리를 유지하는 ‘반노숙’ 상태를 유지하는 거 같아요. 그렇다면 탈노숙이라는 것은 단순히 잠자리를 확보하는 것을 의미할까요? 가족, 친구, 직장에서의 관계가 회복되지 못한 상태에서는 지속적인 삶의 회복이 어렵거든요. 탈노숙을 한다든지, 사회구성원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런 ‘관계의 회복’이라고 봐요. 노숙기간 동안 얼마나 건강한 관계를 맺는지, 부정적인 경험이 없이 타인과 연결 될 수 있는 지가 중요해요.

 

Q. 예전에 인문학과정을 마친 선생님께서 전에는 혼자였는데 이제는 인문학 공동체라는 가족이 생겨서 기쁘다고 말씀하신적이 있어요. 무슨 일이 생기면 서로를 걱정하고 챙겨주고, 밥상공동체를 만들어 함께 밥을 먹고 여행도 함께 하는 일들이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좋은 경험이 되는 것 같아요. 

A. 밥을 ‘얻어먹는’ 존재가 아니라 누군가와 식탁을 공유하며 함께 밥을 먹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일상적인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되고, 누군가 돌아가시면 가족처럼 장례를 치르는 관계들이 삶을 다시 회복하게 하는 힘이 되죠. 일이든 취미든, 함께 할 수 있는 활동이 생기고 그 과정에서 자기 만족이나 사회적 생산성이 회복된다는 것이 중요해요.

소위 정상사회에서 인정받는 번듯한 직장과 가족형성 차원에서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존중 받는 상태로 되는 것이 중요하고 이런 관점에서 탈노숙이나 사회로의 복귀를 이야기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제가 노숙인에 대한 연구를 마칠 때 쯤 했던 생각이에요. 

Q. 인문학 과정에서 그런 긍정적인 관계형성을 만들었는데 졸업 이후에 선생님들이 각자의 삶에서 그것을 지속시킬 수 있느냐에 대한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되거든요. 수업을 듣는 선생님들도 졸업 후 다시 혼자 되는 삶에 대해 불안을 느끼시기도 하구요. 저희가 심화과정을 진행하고 있고 다른 연속 프로그램도 생각하고 있지만 결국은 지속성이 문제인것 같아요. 저희 공동체 안에서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안정적으로 활동하려면 예산과 후원 구조가 뒷받침 되는게 중요한데요. 저희와 함께 해주시는 7-80명과 연대의식을 가지고 싶었고 또 교수님이 그 부분에서 회장직을 맡아 주시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하고 있던 차에 인권연대에 『거리의 인문학』소개글을 써주셨던 것을 발견하고는 너무 감사했습니다. 어딘가에서 우리를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에 힘도 났구요. 교수님께서 후원회장을 맡아주신 것에 다시한번 감사드립니다. 성프란시스대학 초대 후원회장이 되셨는데 소감과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A. 처음 후원회장 제안을 받았을때, 재정후원이 중요한데 그런 걸 잘 못하는 사람이라서 어떻게 하나 지금도 고민이 되거든요(웃음). 재정적으로 안정될 수 있도록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지혜를 모았으면 합니다. 

성프란시스대학 20주년 행사에서 만난 한 분의 말씀이 제 마음에 남는데요. 그분이 제 이름을 웹진 후원자 명단에서 보셨다고 해요. 그러면서 성프란시스대학이  어디에도 없는 일을 해왔고 지금도 이렇게 유지하고 있는데 이것을 알려야 하는게 아닌가 라고 얘기하셨어요. 그리고 본인도 이곳을 통해 많이 달라지고 변화했다고요. 

[한국의 노숙인] 책에 관여한 분들이나 여기서 오랫동안 일하셨던 분들과 함께 성프란시스대학의 발자취를 연구하고 그 기록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해요. 개인의 삶이 담긴 기록일 수도 있고 집단의 기록일 수도 있는데 이걸 어떤 방식으로 남길 수 있는지 같이 고민을 하고 싶구요.

가장 좋은 것은 우리 사회에 노숙으로 진입하는 분들이 생겨나지 않는 인데, 빈곤 문제나 청년 노숙같은 문제들에 대해서도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의 그간 활동이 일종의 좋은 실천 사례이자 지침이 되길 바랍니다. 

 

Q. 교수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평생교육이 우리의 삶과 떼어 놓을 수 없는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많이 배웠습니다. 교수님이 저희와 함께 해주셔서 성프란시스대학 동문들께서 ‘우리 뒤에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고 느끼시고 또 그것이 그 분들에게 큰 응원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교수님과 저희가 함께 만드는 이 성프란시스대학 공동체가 인문학 과정을 통해 자존감을 회복한 분들께 더 넓은 세상과 연결되는 전진기지가 되길 기대합니다. 그 여정에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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