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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32호

[성프란시스 대학 글밭] 성프란시스 대학 창립 20년 행사에 대한 한 졸업생의 소회

by bremendhk 2026. 2. 22.

#편집자주-지난 10월 말  성프란시스대학 창립 20주년 행사후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9기 졸업생인 전원조 선생님이 원고를 보내 주면서, 웹진 32호에 기고를 제의했습니다.  전원주 선생님 기고문은  졸업생 선생님의 또 다른 시각을 보여 주시기에 ,  이번 웹진 32호에 올리니 우리 구독자 선생님 여러분과 특히 재학생/졸업생 선생님들께 깊은  관심을 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정말로 변합니까?"

* "넘어진 자는 반드시 바닥을 짚고 일어서야만 한다." 
서울역 차가운 바닥, 그곳에서 피여난 
'산 인간학' , '산 인문학' 이야기 *** 

지난 10월 28일,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 프란시스 홀에서는 그 이름도 자랑스러운 성프란시스대학 창립 20주년 기념 북콘서트가 성대하게 열렸다.
이번 북콘서트는 성프란시스대학에서 18년 째 '글쓰기' 강의를 해오시는 박경장교수님께서 성프란시스대학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면서 집필하신 [역전문학] "서울역 야생화"와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을 수료하면서 선생님들이 직접 쓰신 산문, 시 작품들을 추려서 묶은 시집 "서울역 눈사람" , 특히 인문학 4기로 수료하시면서 그 1년동안 1,000여편이 넘는 시를 쓰신 권일혁선생님의 개인 시집 "빗물 그 바아압" 3권을 가지고 진행되였다.

'역전문학'이란 말은 문학의 장르에는 없는 말이다. 이 새로운 문학 장르는 성프란시스대학이 한국 최초의 노숙인 인문학 대학이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는 장르이다고 설명하겠다. 우리 성프란시스대학은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수준 높은 인문학의 지식과 삶의 지혜를 가르치는 인문학 전문대학이다. 우리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인문학 과정을 수료한 동문들에게 있어서 대학의 존재 목적 자체가 제일 큰 자랑이지만, 그와 함께 대학 교수님들에 대한 신뢰의 정과 고마움이 엄청나게 크다.

맨 먼저 소개를 하면 중견 기업들의 정기 후원이 끊겨 어려움을 겪는 우리 대학의 학장직을 흔쾌히 수락하시고 벌써 5년간이나 대학의 조립을 지켜주고 계시는 곽노현 학장님, 그리고 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소 교수로 제직하시면서 정년이 지나실 때까지 18년간 우리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가르쳐주신 안성찬교수님, '글쓰기' 박경장교수님("서울역 야생화" 저자이심), 한국사 박한용교수님, 예술사 김동훈교수님, 문학 김응교교수님,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심화과정에 오셔서 여러 분야의 지식과 배움을 전해주시는 각 대학교의 교수님들, 시민사회단체 활동가선생님들까지 합쳐서 정말 많은 교수님들이 계신다는 사실이다.

현실의 암울한 환경과 처지를 한탄하면서 서울역 광장의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이 그대로 온돌방이고 찌푸린 밤하늘이 꿈의 이불인 노숙인들에게 있어서 서울시 안의 여러 대학교 교수님들을 직접 만나 함께 먹고 마시면서 강의를 듣고 높은 문화적 지식과 지혜를 배워간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던 일이여서 인문학수료생(노숙인들)들은 정말로 놀랍게 받아 들인다. 그것은 이번 북콘서트에서 소개된 시집 "서울역 눈사람"에 실린 성프란시스대학 동문들의 작품속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역전문학 "서울역 야생화" 저자이신 박경장교수님은 "정말 변하나요?" 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드는 자기의 심경을 이렇게 쓰고 있다.

...
그 질문의 기저에는 '노숙인은 변해야 한다'는 당위와 '나는 됐고' 라는 당착이 깔려 있다.
지난 십수 년 동안 되풀이되는 이 질문에(인문학 수료식 때면 많은 언론사 기자들이 옴) 나는 만족스런 답변을 한 기억이 없다.
... 질문에 담겨 있는 어조나 뉘앙스도 너무 싫었기 때문이다.
...

여기서 저자이신 박경장교수님에 대한 자랑을 해야 겠다. 우리 성프란시스대학은 1년 정기 강의 과정을 다 맞친 후 수료식 전에 2,3개월간은 그해 수료생들의 문집을 만들기 위한 글쓰기 시간이 된다. 우리 9기 동기인 '방울이'선생님은(자기의 본명 대신 현재의 자기 정체성과 앞으로의 꿈이 담긴 별명을 스스로 짓고 그 별명을 호칭으로 씀) 글쓰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면서 버티다가 마지막 날에서야 마지못해 쓴 글을 냈었다.

[제목]   아버지

터덜 터덜 터덜
아버지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소리
터벅 터벅 터벅
아버지 술 안마시고 들어오는 소리  

-끝-

그 글을 받아 본 박경장교수님은 자기 목소리로 크게 읽어 주셨다. 그러면서 심한 오버 액션을 곁들인 연기를 하면서 하시는 말씀, "방울이 선생님, 이게 바로 시 입니다. 시라는게 별게 아닙니다. 자, 여러분! 여러분들도 겪어 보셨을듯 싶은 아버지가 떠오르지 않습니까? 시쓰기, 글쓰기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정말 쉽지 않습니까! 하하하하"

우리들 모든 학생들은 교수님의 그 흥분하신 제스처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뭐야?! ... 우리 교수님, 연기도 잘하시네!" ...

우리 성프대에는(성프란시스대학 줄임 말) 교수님들뿐만 아니고 "자원활동가" 선생님들도 계신다. 우리 대학에는 "자원봉사자"라는 말이 없다. 그들도 인문학을 더 배워서 자기들의 인생을 꾸며가는데서 지혜를 얻는 과정이다고 인식하기때문에 "자원활동가"라고 부른다. 이들은 1년간 무급으로 자원활동을 하면서 그해의 수료생들과 모든 과정을 동행한다. 구체적으로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학생에게는 개별적으로 학습지도를 해주고, 때론 딸이나 누이나 어머니 같은 캐릭터의 옷을 입고 입씨름도 하고, 저녁 밥상머리 수다도 떨면서(대학에서는 저녁식사 한끼는 수료생들이 자체로 음식을 만들고 나눈다.) 그야말로 가족같은 식구가 되여 준다. 이들은 그저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서울역 광장의 노숙인 수료생들 삶의 행적들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면서 자기들이 되려 더 힐링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교수님들, "자원활동가"선생님들 그리고 우리 동문들 모두를 자랑스러운 "성프인" 이다고 부른다.

"정말로 변합니까?" 나는 인문학 수료식에서 이렇게 말했다. "인문학을 배우면서 나는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 서는 첫 대문을 이제서야 열었다는 기분이 든다".

교수님은 이 책에서 이렇게 답했다.
... 
문사철을(인문학) 공부하는 것은 인간과 사회, 그리고 자신을 깊고 넓게 성찰하기 위함이다. "정말 변하나요?" 묻는 당신도 답해야 하는, 나도 성찰하기 위해, 당신 말처럼 변하기 위해, 평생 공부해야 하는 학문인 것이다. 그렇다고 기자 탓만을 하는 건 아니다. 그는 단지 '노숙인이 왜 인문학을 공부하는가?라는 우리 사회가 의아해 하는 물음을 대신 물었을 뿐이다.
...
 
지난 주에 인문학 9기 동기인 선생님  한 분이 돌아가셨다. 선생님은 인문학 수료식 이후 사회에 나가서 어떻게든 자리 잡고 잘살아보려고 노력했었다. 그러나 몸에 이미 깊숙이 밴 병마를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지난 2월에 다시 서울역에 왔다. 더 정확하게는 자기의 인문학 동기들과 성프란시스대학을 다시 찿아 온 것이다. 그리고 센터와 인문학 동기들과 어울리면서 임대주택 입주를 기다리다가(두달 뒤면 입주할 수 있었음) 끝내 사망하였다. 선생님의 믿음대로 우리 동기들은 가족이었다. 그는 자기의 마지막 길도 인문학 동기들이 잘 지켜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서 지친 자기  인생의 마지막 짐을 짊어지고 여기 서울역으로 다시 찿아온 것이리라.

인간 삶의 존엄에는 귀천이 따로 없음을 배워주고 그렇다는 확신을 심어주는 곳이 바로 성프란시스대학(인문학과정) 이다. 지금 서점들에는 "성프란시스대학 창립 20주년"을 맞으면서 출판된 기념도서 역전문학 "서울역 야생화" , 동문들이 쓴 작품들을 묶은 "서울역 눈사람" 그리고 인문학을 배우는 1년동안 1,000편 넘는 시를 쓴 기록보유자 권일혁선생님의 개인 시집 "빗물 그 바아압"이 판매되고 있다. 만일 그가 누구든지 인문학 교육의 강사로서 관심이 있다거나 아니면 그대로 참여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이 책들을 꼭 사서 읽어보시라고 강력하게 추천하겠다.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 시민의식을 깨우치고 선도하는 인문학! 그 선두주자인 "성프란시스대학"은 자기의 창립 20주년을 이렇게 뜻깊게 맞이했다고 나는 한국 시민사회에 자랑스럽게 보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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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광장 차가운 아스팔트 위. 이름 없이 스러져가던 존재들. "밥은 비통한 것이다"라는 고백에서 "나는 살아 있다"라는 선언에 이르기까지 '글쓰기'는 그들의 마지막 희망이자 이 물음에 대한 뜨거운 응답이다!
...

어쩌면 "살고있다!"라는 말도 사치일지도 모른다. 우리는(그누구나 다~) 이 세상이 무작정 가져다준 자기 '삶' 이라는 무거운 짐에 짓눌리면서도 숙명처럼 그 인생을 "살아 내고 있는 중이다!"고 말해야 정확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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