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재동 화백
5월 20일에 두 번째 심화 강좌를 박재동 화백님께서 “뭐가 예술이고, 예술가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 주제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박재동 화백님께서는 2022년 국회 의원회관에서 개최되었던 성프란시스대학 시화전 “거리에서 핀 글, 그림으로 피어나다”에 우리 선생님의 글에 그림을 실어 주시는 등 재능 기부를 해 주시기도 하고, 2023년 심화 강좌에서 강의를 맡아 주시는 등 오랫동안 성프란시스대학과 끈끈한 정을 이어 주셨습니다.
박재동 화백님은 이번 심화강좌에서 자신의 평생 예술가로서 삶의 이야기를 그때 그때 마다 자신의 예술 작품 소개를 통해 풀어 가셨습니다.
박재동 화백님은 한 사람이 예술가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일정하게 재능과 예술에 대한 욕구가 있어야 한다고 말씀 하시면서, 자신의 삶을 되돌아 보았을 때 네 살 나이에 자신이 그림에 재능이 있음을 어렴풋하게 느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신이 예술가로 성장하게 된 요인으로는 이런 타고난 재능 외에 부모님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만화 가계를 운영하신 환경적 요인이 있었다고 하십니다. 육십년대 칩십년대 초등학교(당시 국민학교)를 다닌 이들에게 만화 가게와 만화 가계 주인 자식이란 것은 어떤 선망의 대상이었죠. 공짜로 날마다 만화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어떤 특권이었죠. 더구나 그림에 재능 있는 박재동 학생에게는 만화 속에 나오는 다양한 상상력들은 자신의 예능 재능에 맞물려 자신의 삶의 주변을 그림으로 형상화하여 예술인의 삶의 성장의 자양분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아래 좌측 그림은 초등학교 2학년때대 식사를 준비하시는 어머니 모습을 그리 신 것이고, 우측 그림은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림 ‘불조심’이란 그림입니다.
초등학교 어느 시절 울산 앞바다에서 춤추는 파도를 보면서 그 파도를 그림으로 그려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강렬하게 일어 났다 합니다. 집에 돌아오니 그런 파도를 형상화할 그림 도구가 없다는 것을 알고는 송곳으로 방 장판에 자신이 느끼는 파도를 그렸다고 하십니다. 마침 집에 돌아 오신 아버님이 그런 모습을 보시고, 야단치는 대신에 칭찬해 주었다고 하십니다. 돌아보니 자라나는 아이의 예능적 재능에 기반한 장난을 야단치지 않고, 그 재능을 살려 주는 것은 한 예술가의 탄생과 성장의 또 다른 한 요인이 된다고 지적하십니다. 우리 인문학과정 공동체에서 그림에 재능있는 누가 방바닥에 송곳으로 춤추는 파도를 그리는 박재동 학생 모습을 그려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화백님 초등학교 4학년 때 일화를 소개해 주십니다. 당시 학교에서는 만화 가계나 불량 식품 반대 캠페인의 일환으로 이에 대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있었는데, 자신 가족의 생계 수단이자 자신의 예술적 재능을 키워 주는 만화와 만화 가계와, 제도화된 교육에서 만화 반대 그림을 그려야 하는 가등 사이 고민하다가, 아버지를 배반하고, 만화와 만화 가계를 규탄(?)하는 글을 쓰셨다 합니다.
1962년 11살에 ‘아버지”란 작품이 있었고, 1963년에는 화백님 자신의 보물 1호라는 160 페이지에 달하는 ”내 가슴에도 봄은 왔습니다”라는 만화를 그리셨습니다. 헉 12살 나이이시네요.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 사이에는 입시 준비 때문에 그림 그릴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고, 지금 남아 있는 그림도 적다고 하십니다.
그런 가운데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술과 육식을 멀리 해야하는 스님이 술과 육식을 즐기는 것을 비판적 해학으로 아래 그림으로 표현하십니다.
박재동 화백님은 고2 때 친구 여동생 자매 그림을 소개해 주시며 이 그림은 화백님 자신이 가장 애착가는 그림이라 하시면서 또한 울산 다대포 앞바다 대상으로하는 그림도 소개 시켜 주십니다.
대학 시절 그리고 미술 교사 시절의 유화 그림을 소개시켜 주십니다. 그 시절 민초 사람들의 삶을 그린 <야시장>과 <어머니>에서 사람들의 정과 행복을 그림을 보여 주십니다.
이런 사람들에 대한 애정은 2008년 노량진에서 과일 파는 그림에서도 솟아 나옵니다. 이런 그림에 대해 화백님이 부촌에서 생활할 때는 결코 나오지 않으며, 일반 민중이 사는 곳에서 함께 살아가다 보면 그들의 일상 삶을 느끼고, 거기서 그들의 건강한 삶에 대한 애정이 그림으로 피어난다고 하시면서, 박재동 화백님은 ‘보통 사람’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다는 생각이 자신의 예술가 삶의 방향을 이끌어 주었다고 고백하십니다.
박재동 화백님은 '노숙자'를 바라 보는 그림을 우리에게 소개해 주십니다. 아마 무수한 사연을 지닌 무수한 노숙인의 모습을 한편의 그림으로 표현해 주신 것 같습니다. 몇번을 보고 또 보게 되는 작품입니다.
동학농민운동의 그림이 보입니다. 혁명운동을 하는 이들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옆 자리 혁명 전우와 농담도 나누기도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마음 한 켠으로 집에 두고 온 아내와 갓 태어난 자식의 얼굴을 떠 올렸을 수 있고, 집에 있는 그의 아내는 자신의 남편이 다치지 말고 무사히 돌아 오라는 바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민초들의 마음의 합이 동학의 반봉건 반제 혁명 운동의 죽창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2시간 길이의 심화 강좌에서 박재동 화백님도 현대사로 이어지는 후반부 강의에서 시간에 쫓기시듯, 편집자도 웹집 전체 용량에 마음이 쫓기나 봅니다. 어찌 보면 진짜 중요한 주제인 한국 현대사에서 사람들과 역사 가운데 자신의 삶을 예술과 일치시키신 박재동 화백님 작품과 그 삶의 소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자 합니다.
박재동 갤러리에 이런 글이 있다죠? 박재동 화백님의 현대사 작업은 계속 이어 질 것 같습니다.
강의 중에 들려 주신 화백님 이야기 하나를 소개합니다:
“장사하는 사람에게는 들판이 재물로 보이나 예술가에게는 들판의 모든 잡초 마져 아름다운 생명으로 보인다. 예술가는 이것들이 사랑스럽기에 이들을 그림으로 형상화한다”
박재동 화백님은 우리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심화과정에서 강의하시기전 10일전인 5월 10일에 “박재동 갤러리”를 서울 중량구 망우동(양원역로 17-13)리에 개관하셨습니다.
심화강좌에서 박재동 화백님 강의에 감사의 마음과 화백님 갤러리 개관에 대한 작은 축하 마음으로 편집자는 웹진 23호 준비 중 어느 날 “박재동 갤러리”를 찾아 보았습니다. 갤러리를 돌아보고 나오면서 “박재동 화백 갤러리 대문”과 박재동 첫 작품을 사진 한 장으로 담고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우리 구독자님들께서 어느날 박재동 화백님 갤러리 대문을 활짝 열고 들어 가시어, 그의 평생 작품 감상을 통해 화백님 예술가 삶과 대면하고 이야기하는 모습들을 상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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