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웹진/제33호

[길벗 광장] 예술사 이야기 – 토론 수업 5 그림으로 읽는 자화상 (5) 빈센트 반 고흐

by bremendhk 2026. 6. 30.

지난번 글에서는 독일의 르네상스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의 자화상 세 작품을 감상하면서 성프란시스대학 선생님들과 어떤 방식으로 토론 수업을 진행해왔는지 설명해 보았다. 내 수업에서는 이렇듯 회화 작품을 감상하면서 토론 수업을 진행하는 경우가 다른 예술 장르의 작품들을 감상하면서 그렇게 하는 경우보다 훨씬 많은 게 사실이다. 그 이유 중 하나는 당연히도 내가 회화나 조각 작품들을 감상하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선생님들이 편하게 마음대로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하실 수 있도록 하기에 매우 유용하기 때문이다.

물론 대중가요나 TV 드라마, 요즘 식으로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OTT 드라마, 더 최근의 예로는 숏폼 드라마 등이 선생님들이 접근하기 더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감상에 시간이 오래 걸리거나 그렇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선생님마다 자신의 취향이 아주 확고해서 토론에서 상대방의 의견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이유는 위에 든 예들에서는 이른바 걸작들, 명작들을 골라내어 감상하는 때처럼 무언가 깊이 생각할 거리를 꺼내기가 쉽지 않은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드라마나 영화, 대중가요 등을 전혀 다루지 않는 건 아니다. 주제에 따라서는 정태춘이나 안치환의 대중가요, 찰리 채플린의 영화도 선생님들에게 감상과 토론의 대상으로 제시해 드린다.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주제에 대한 선생님들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내기에 어떤 작품이 더 적합하냐는 물음에 대한 내 나름의 생각에 따라 작품을 선정하고 선생님들에게 제시해 드릴 뿐이다.

이제는 다시 원래의 이야기로 돌아가 화가들의 자화상을 통해 어떻게 선생님들과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는 작업을 함께 해왔는지 살펴보기로 하겠다. 뒤러의 자화상에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묘사해 보여주려는 의도와 자신의 직업에 대한 자부심이 엿보이는 데 반해, 다음으로 살펴볼 화가의 자화상에는 그때그때 변하는 그의 감정이나 생각들이 거의 아무런 여과장치 없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그가 바로 빈센트 반 고흐다. 전 세계 어디를 가나 가장 사랑하는 서양화가 한 사람을 꼽으라면 많은 이들이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린다. 그의 전시회가 열리는 미술관은 어디든지 밀려드는 관람객들로 정신이 없을 정도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을 그를, 그의 작품들을 좋아할까? 나는 그 대답을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예술사 수업을 통해서 발견했노라고 자부한다.

Don Mclean이라는 팝송 가수는 그의 작품 세계를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Vincent>라는 노래를 남겼다. 그 노랫말 중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나 이제 이해하네 / 당신이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 / 그리고 제정신이고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 또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는 고흐의 작품 속에서 그의 고통과 열망을 읽어낸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광기의 발작 속에서도 자신을, 자신이 사랑하는 예술에 대한 열망을 지키려 했던 고흐 영혼의 모습이기도 했다. 나는 그를 비롯한, 고흐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것이 그가 그려낸 수많은 자화상 속에 그대로 담겨 있다고 믿는다. 우리 선생님들과 그의 자화상 10여 점을 함께 감상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의 자화상들을 두서없이 보여드리면서는 언제나 뒤러의 자화상과 비교해서 느낌이 어떻게 다른지 주목해 보시라고 말씀드린다. 아래의 자화상들은 내가 보여드린 자화상 중에서 선생님들의 반응이 가장 뜨거웠던 작품들이다.

선생님들은 고흐의 자화상에 대해 뒤러의 자화상에서보다 훨씬 더 강한 반응을 보이셨다. 대상의 객관적 모사에 관심이 많았던 뒤러의 르네상스 화풍에서는 그다지 깊은 동질감을 느끼지 못했던, 그래서 작품 자체에 대해 어느 정도는 객관적인 거리를 두고 감상하던 태도와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고흐의 자화상을 대하는 선생님들이 많았다. 그리고 그러한 태도는 고흐의 자화상을 통해서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고 작품 안에 자신의 인생을 투영해보는 방식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지금은 <빗물 그 바아압>이라는 시집을 출간한 어엿한 시인이 되신 4기 권일혁 선생님은 자신이 경험했던 우울증의 경험을 토대로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고 난 다음에 그린 자화상을 보면서 그의 눈빛에서 우울증의 흔적을 유추해 내기까지 했다.

그리고 뒤러의 자화상에서와는 다르게 얼굴의 혈색이나 주변 환경이 실제로 보는 세계와는 다르게 묘사되어 있고 계속 변화하고 있음에 주목하는 선생님들도 있었다. 그런 반응이 나오면 나는 이미 서양미술사 입문을 통해 한번 설명한 바 있기는 했지만, 서양 예술사를 오랫동안 지배해왔던 전통적인 예술론, 즉 예술의 본질은 모방에 있다는 믿음이 고흐가 활동하던 당시 인상파의 실험을 통해, 특히 클로드 모네의 수련 연작이나 대성당 연작 등을 통해 붕괴하여가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알려드린다. 또 예술작품을 감상할 때도 얼마나 잘 모사했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예술가의 내면이 표현되고 있는가가 중요한 때도 있으며 현대 예술로 올수록 점점 더 그러한 경향이 강해진다는 사실도 언급한다.

이러한 감상과 토론은 몇몇 선생님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깊이 들여다보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삶을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예가 여러 기수에 걸쳐 선생님들이 남기신 작품들이다. 그중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에 실린 수필 하나를 함께 읽어보기로 하자.

"거울 앞에서

0

두 눈을 꼭 감고 거울 앞에 섰다. 실눈을 뜨고 살짝 보려다가 곧 다시 감고 만다. 그러기를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아니 수천 번. 내 모습을 똑바로 봐야 하는데 그래야 하는데 덜컥 겁부터 난다. [] 그렇게 실눈이라도 뜨려 애쓸 때, 예술사 수업에서 만난 여러 사람의 자화상들. 그 우연한 만남이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고흐의 자화상 몇 점이 연이어 보인다. 한 사람을 그린 자화상이 각기 다른 사람을 그린 것 같았다. []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두 눈을 크게 똑바로 바라보는 것밖에 없었다. 바로 볼 수 있어야 바로잡을 수 있으니까."

이렇게 감상을 남기지는 않으시더라도 나는 선생님들이 이때쯤 되면 자신의 삶에 대해, 자기 자신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시리라고 기대한다. 예술을 통해 선생님들 자신을 들여다볼 기회를 드릴 수 있다는 사실, 이것이 내가 예술사 수업을 20년 가까이 지속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발간에 즈음해 텀블벅 펀딩을 진행하던 때 우연한 기회에 자원활동가셨던 김아란 선생님을 통해 오마이뉴스의 <사수만보>라는 지면에 칼럼을 쓰시던 분의 인터뷰 대상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분이 내게 어떤 계기를 통해 예술사 수업을 하는 보람을 느꼈는지 물었을 때 나는 주저 없이 <저승사자가 사는 법>이라는 너무나 독창적인 시의 저자셨던 4기 유창만 선생님께서 돌아가시기 직전에 보이신 모습이라고 말씀드렸다. 그 마지막을 지켜보셨던 권일혁 시인의 입을 통해 전해 들은 이야기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창만이가 복수가 차서 나중에는 거의 의식이 없다시피 했어요. 그런데 가끔 정신이 돌아오면 뭔가라도 보여주려다가 갑자기 생각이 나서 김동훈 교수님께서 예술사교재로 나눠주셨던 미술사 책을 끄집어내서는 한 장 한 장 넘기며 보여줬어요. 한 작품을 보여주면 창만이가 보다가 고개를 끄덕이면 다음 장으로 넘어가는 식으로요. 그런데 고흐의 자화상에 이르러서는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더라고요. 아마도 창만이가 마지막 가는 길에 고흐가 좋은 길동무가 되어 준 것 같아요."

유창만 선생님은 재학 시절 수업 시간에는 거의 말씀이 없이 교수인 나와 열띠게 토론하는 동료 선생님들을 진지하게 바라보시기만 하셨다. 그런데 졸업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아 4기 졸업생 모임에 초대받아 갔을 때 선생님이 나를 발견하시곤 갑자기 곁으로 오셔서는 그전에는 길거리를 가다가 회화 작품이 나오는 선전이나 간판, 동영상을 보면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지금은 자꾸 눈길이 가고 더 찾아보게 되더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렇게 내게 스스럼없이 다가와 본인의 얘기를 들려주신 선생님이 정말 고마워서 다음에 만나면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씀드린 뒤 헤어졌었다. 그리고는 동부 시립병원 장례식장에 놓인 영정사진을 통해서야 그분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여러 감정이 교차하면서 슬픔이 복받치던 그때 권일혁 선생님께서 전해주신 그 이야기를 들은 일은 내가 노숙인 인문학을 떠날 수 없게 만든 결정적인 사건 중 하나였다.

어쨌든 고흐의 자화상에 대해 충분히 토론이 진행되었다 싶으면, 선생님들이 자화상에서 읽어내신 것들이 단지 자화상이라는 제목이 붙은 작품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느끼실 수 있도록 고흐의 다른 그림들도 보여드린다. <감자 먹는 사람들>, <직조공> 같은 작품들을 통해서는 그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해서 느끼던 한없는 애정, <까마귀가 나는 밀밭> 같은 작품을 통해서는 그의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엿볼 수 있다. 따라서 예술가의 예술작품은 그 예술가의 삶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러한 삶을 마주하는 감상자는 그러한 삶을 대하면서 자신의 삶에 투영하고 새롭게 자기 삶의 의미를 돌아볼 수 있다는 언급으로 자화상에 대한 감상과 토론을 마감하곤 한다. 나는 매년 이런 토론 수업을 통해 선생님들이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5기 학생이셨다가 졸업 후 사회복지사가 되셔서 지금도 서울역 노숙인들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고 계신 김대영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깨지지 않는 거울을 하나씩 가지게 되셨기를 바란다. 선생님의 글 <깨지지 않는 글> 마지막 단락을 다시 읽으면서 힘이 닿는 한 선생님들과 함께 예술을 통해 계속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며 울고 웃고 부대끼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이제 인문학이라는 보호막과 끝이 없어졌다. 다시금 그 혜택을 입을 수 없으니 가로등도 없는 어두운 도시 골목을 걸어가는 것 같다. 차라리 산길이었으면 별이라도 보고 갈 텐데 말이다. 이제 신분 상승은 없다. 영원한 공공근로 계층에 머물지라도 내가 할 일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이 하나둘 생겨날 것이다. 어차피 진흙탕에서 뒹구는 인생, 모래 위에서 뒹구나 자갈에서 뒹구나 더 이상 땅으로 꺼지지 않으면 인생 성공인 듯하다. 그러다 보면 남을 위해 일하는 시간은 늘어날지도 모른다. 인문학이 나에게 준 건 깨지지 않는 거울 하나였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