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 어디로 가는가 - 나는 누구인가 박재동/화백
지난 11월 18일 2학기 심화강좌 제8강에서 박재동 화백께서는 “나는 누구인가 –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 어디로 가는가”라는 주제로 강의해 주셨습니다. 예술가로 살아가면서 작품을 창작하는 과정에서 불교의 영향을 받았기에 불교 우주관과 세계관, 선지식을 토대로 작품을 창작하는 본인만의 방법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불교 선종에서는 선을 통해 답을 찾아가는데 이를 견성(見性; 자신의 본래 성품을 깨닮음을 가리키는 불교 용어)이라 합니다.
대학 시절 하숙집에서 불교책을 우연히 접하면서 불교에 심취하게 되셨답니다. 그를 통해 배운 것은 불교 태동기의 인도 문화가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선진 문화였다고 평가하셨습니다. 중국 등의 나라에서는 삶의 목적을 명예/지위와 부, 가문의 번영에 두었던 반면, 인도 사람들의 삶의 목적은 결혼해서 자식 다 키우고 나면 출가하여 걸식하면서 수도를 수행하는데 있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고대 인도인들의 삶은 목적은 부나 지위와 연결된 행복이 아니라 그런 모든 것을 버린 채 진정한 자아를 찾는 데 있었던 거죠.
박재동 화백님은 부처의 탄생 역시 이런 인도인들의 수행 문화에 기반한 것으로,석가는 처음에는 당대 주류 수행 방법인 고행을 수도 방법으로 채택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고행 방법이 진정한 자아를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육체적 피폐를 가져온 점인 인식이라고, 고행 수행의 대안으로 명상 수행을 제기하고 명상 수행을 통해 진정한 자아와 우주에 대한 깨달음이라는 불교적 진정한 진리를 찾게 되었다고 이야기해 주십니다.
그리고는 다시금 “견성”이 무엇인가란 질문으로 돌아가서 그것은 나와 자연과 우주에 대한 깨달음이라고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살아오시면서 불교와의 인연으로 만난 수도승은 많지만 진정하게 득도한 이와의 만남은 드물었다고 말씀하시면서 본인이 만난 몇 분들과의 교류 사례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박재동 화백님은 1980년 친구를 따라 부산에 있는 작은 암자인 광성사를 찾았는데 그 절의 주지이셨던 해산(海山) 스님은 보기 드물게 견성하신 분이셨는데 그 스님과 나눈 화두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 몇십억원하는 비싼 병풍 그림을 그리게 되는데, 그림이 그려지지 않다가 어느 순간에 빛 그림자가 나오고 그 빛 그림자에서 길이 계속 나온다; 불교 명상을 통한 어떤 깨달음의 표현을 이렇게 이야기 하신 것입니다.
- 관세음보살과 결혼할 수 있는가? – 스님은 바로 대답한다: 있다 - 관세음보살과 결혼이 불가능하다는 선입견을 극복해야 한다는 지적인 것 같습니다.
- 무엇이 그림을 그리게 하는가 – 스님은 박재동 화백님으로부터 어떤 답을 듣기를 원했고, 화백님 답변에 따라 선문답을 계속 이어 가기를 원했으나 화백님은 그 당시 제대로 답하지 못하셨다고 하네요.
견성하여 득도한 해선 스님과 인연을 보다 깊이 있는 대화로 이끌지 못한 점을 박재동 화백께서는 두고두고 아쉬워 하셨답니다.
그로부터 한참 시간이 지나 한겨례 만평을 담당하던 시절, 불교 승가대 소속인 일선(一禪) 스님을 만나셨는데 대화하던 중 일선 스님께서 다음과 같은 우주관을 제시해 주셨답니다: 서양 철학에서는 나와 우주를 분리하여 생각하지만 불교에서는 나와 우주가 하나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박재동 화백께서는 이런 말씀에서 깊은 인상을 받으셨는데 한참 시간이 지난 뒤 해남 보림사에서 다시금 일선 스님을 만나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나누셨답니다:
- 그림을 그리게 하는 것이 무엇이냐:
- 내가 그린다:
- 그 “내”가 누구인가? (그 질문에서 큰 깨달음을 얻으셨답니다.)
견성과 관련해서 만나셨던 세번째 인물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셨는데 그분이 바로 명진(明盡) 스님입니다.
명진 스님과 함께 깨달음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셨는데, 명진 스님이 깨달음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씀하셨답니다.
그러니까 지금 여기의 자명한 사실에 대해서는 깨달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으셨답니다:
꿈에서 깼다 – 미혹에서 벗어 났다 –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으면 더 깨달을 게 없다.
그러면서 박재동 화백께서는 열반은 궁극에 도달한 상태이며 더 이상 깨달음이 필요 없는 지금 여기가 열반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강의를 마무리하시면서는 다음과 같은 깨달음으로 우리를 안내해 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가?”
- 나를 나라고 부르는 자 – 원래 있는 나는 누구인가?
- 어디에서 오지도 않고 원래 존재하는 것이다
- 일시적으로 현상적으로 보이는 것은 반드시 사라지나, 참된 나는 원래 있는 나로서 태어나지도 않았고죽는 것도 없다-
마지막으로 이번 강좌에 참여하신 선생님들도 이런 진정한 나에 대한 깨달음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하시면서 강의를 매듭지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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