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이현아
인터뷰터: 이현아
인터뷰이: 박영신(성프란시스대학 20기)
Q. 선생님,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먼저 성프란시스대학은 어떻게 알게 되셨는지 궁금해요.
A. 제가 2021년쯤 길 카페에서 일했는데 그때 길 카페를 소개해주셨던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이형운 실장님이 20기 입학을 권해주셨어요. 들어와서 많이 공부하면 마음이 편해질 거다 그러셨어요.
Q. 이제 3개월 하셨는데 마음이 좀 편해지셨거나 공부를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드시나요?
A. 처음엔 화수목 7시에서 9시까지 억지로 왔어요. 근데 보름쯤 지나니까 내용은 잘 기억도 안 나는데 이상하게 마음이 편해지더라구요 그 2시간이.
Q. 특별히 좋아하는 수업이 있으신가요?
A. 글쓰기 수업에서 박경장교수님이 처음에 컵이랑 민들레랑 대화를 해보라고 하셨는데 그 방식이 특이한데 재밌더라구요. 그래서 민들레랑 대화하는 글을 썼어요 (*편집자주: 웹진 22호 [성프란시스대학 글밭] 또는 아래 사진의 글).
안녕 넌 누구니 난 박영X이라고 해
민들레: 난 만들레라고 해
박영X: 지나가다 널봤어 혼자서 외롭지
민들레: 너무 외롭지 밤이라 너무 추어
박영X: 추워 보여 내일은 덥다니깐 쫌 참아
민들레: 난 지금 배고파 비도 안오고 힘들어 혼자라서 더 외로워 내일도 들릴 꺼지
박영X: 그럼
민들레: 나랑 대회해 주어 고마워
박영X: 민들레야 너무 고맙고 힘들지만 잘 살아 보자
민들레: 화이팅! 우리 힘들지만 잘 살아보자 그럼 다음에 또 보자
Q. 이전에는 어떤 일을 하셨나요?
A. 군대 제대하고 제가 스물 네 살이었어요. 말년 휴가를 12월15일 쯤에 나왔는데 나와보니 어머니가 당뇨 때문에 얼굴이 많이 부으셨더라구요. 그래서 어머니를 병원에 입원시켜드리고 병간호를 하다가 2-3일 정도 후에 복귀를 하고 다시 2-3일 후에 제대를 한 다음에 그때부터 어머니 병간호를 했어요.
Q. 그럼 어머님 병간호를 얼마나 하신 거죠?
A. 거의 10년 정도 했을 거에요. 청량리 성바오로 병원에서 투석을 하셨는데 일주일에 세 번 한다는 게 너무 힘들어요. 1-2년은 어머니가 걸어다니고 그러셨는데 3년 지나니까 몸을 못 움직이셔요. 그래서 제가 업고 다녔어요.
Q. 어머님께서도 힘드셨겠지만 선생님께서도 힘드셨을 것 같은데요.
A. 그동안 어머니께 불만이 많았는데 병 간호를 하면서 어머니와 대화를 참 많이 했어요. 대화를 너무 많이 하니까 마음이 풀어졌어요. 어머니가 저 어렸을 때부터 장남 편애가 심했거든요. 나중에 물어보니까 어머니가 예전에 이북에서 오빠랑 넘어오셨대요. 그러고 결혼을 했는데 그저 장남만 예뻐하는 걸로 알았지. 나도 자식을 처음 낳아봤는데 어떻게 알았겠냐 하시더라구요.
Q. 어머님이 형만 챙기셔서 서운했던 일 한 가지만 말씀해주신다면요?
A. 뭐를 해달라 그러면 한 번에 해준 적이 없어요. 형은 고등학교 때까지 도시락을 다 싸줬어요. 근데 저한테는 귀찮으니까 돈으로 1000원만 주는 거에요. 그래서 중고등학교 내내 사발면만 먹은 게 참 서운했어요.
Q. 진짜 서운하셨겠어요.
A. 큰 아들 편애가 너무 심했어요. 도시락도 그렇고 학원도 그렇고 형이 해달라 하면 다 보내주는데 저는 안 보내줘요. 누나도 있었는데 형 편애가 너무 싫어서 누나는 일찍부터 나가서 살고 집에도 안 왔어요. 옛날처럼 핸드폰이 있는 게 아니라 집 전화가 있었잖아요. 누나가 가끔 집에 전화를 하는데 아버지나 형이 받으면 끊어버려요. 근데 제가 받으면 “영신아 너만 들어” 하면서 어디어디로 나오라고 한 다음에 누나가 용돈도 주고 돈까스도 사주고 그랬어요. 다섯 살 차이인데도 저한테는 어머니 같은 사람이죠. 어렸을 때 누나가 목욕도 시켜주고 그랬어요. 그러던 누나가 제가 고2 때 사고로 죽었어요. 어머니는 그 이후로 몸이 계속 안 좋아지신 것 같아요.
Q. 긴 시간이셨는데 직접 병간호를 하셔야 했던 이유가 있으실까요?
A. 어느 날은 형이 술 마시고 와서 그러더라구요. 엄마 요양원에 보내자. 무슨 뜻인지 알겠는데 저는 그렇게 못하겠더라구요. 그렇게 보내면 내가 죽을 때까지 후회할 것 같았어요. 그래서 여러 인간관계도 포기하고 오로지 그냥 어머니 병간호만 했어요. 근데 어머니가 나중에 돌아가실 때 누나 볼 수 있다는 게 좋다고 하시더라구요. 누나가 죽은 다음 돌아가실 때까지 계속 누나만 생각하신 것 같아요. 누나가 되게 예쁘고 식구들 중에서는 공부도 제일 잘했거든요.
Q. 10년 정도 얘기하신 후에는 서운한 게 많이 풀리셨어요?
A.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억만금을 주는 것보다 니가 병간호 해줘서 고맙다. 너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냐. 그러시더라고요. 나중에 저도 “ 엄마 나 안 낳았으면 엄마 병간호 누가 할 뻔 했어?” 했고 어머니도 “니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할 뻔 했냐. 고맙고 미안하다” 그러셨는데 마지막 한 마디에 다 풀리더라구요.
Q.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A. 처음엔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게 너무 무서운 거에요. 집에 딱 들어가니까 상상으로 어머니가 막 보이는 거에요. 보름은 불 켜고 잤어요. 두 세 달은 먹어도 먹어도 배가 고파서 한 솥을 먹어도 허기가 지고 이유 없이 밥만 먹었어요. 이제 어머니가 돌아가신지 한 12년 됐는데 어머니 돌아가시고 2년 정도는 노가다를 했는데 노가다 뛰면 술 한잔 하고 이유없이 세월아 네월아 이때까지 온 것 같기도 하고. 또 어머니 업고 다닌 게 독이 됐나봐요. 고관절이 망가져서 인공관절 수술을 했어요. 수술을 하니까 병원에서 10kg 이상은 들지 말라고 하고 그때부터 일을 할 수가 없어요. 2-3년은 깁스하고 다녔거든요. 그게 좀 아쉽죠.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라도 많이 먹은 나이는 아닌데 정신 차리고 살 걸 하는 생각이 들고.
Q. 요즘 취미 같은 게 있으실까요?
A. 제가 걷는 걸 되게 좋아해요. 서울역에서 일할 때는 집에서부터 1만9천보를 걸어왔어요. 걸으면 잡생각이 다 없어져요. 잡념이 다 없어진달까. 걷는 게 제일 좋아요.
Q. 좋아하는 길 있으세요?
A. 저는 찻길로 다니는 걸 좋아해요. 집에서 종암동 고대쪽으로 와요. 동묘에서 종각. 구경하면서 걷는 게 제일 힘들지도 않고 좋더라구요. 중간에 앉아있다가 걷고. 좋을 대로 걷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동묘가서 구경도 하고 동대문 가서 구경도 하고 그런 식으로 걸으니까. 예를 들어서, 조계사를 도착지로 잡으면 대학로 쪽으로 가볼까. 그런 식으로 길을 잡아요. 일어나서 이 닦으면서도 길을 생각하는 거에요. 많이 걸으니까 좋은 음식점도 알게 돼요. 어머니 병간호하느라 청량리를 다닐 때는 혜성칼국수를 좋아했어요. 닭 칼국수랑 멸치 칼국수가 있는데 마늘 다대기 넣으면 얼큰하고 맛있거든요. 8월달엔가 시립대에서 교육을 한다고 하더라구요. 시립대 가게 되면 혜성칼국수나 가려구요.
Q. 언제 처음 걷기 시작하셨어요?
A. 고관절 수술한 후에 병원에서도 많이 걷는 게 좋다고 추천하시더라구요. 이게 인공 뼈니까 부자연스럽잖아요. 원래 뼈랑 잘 붙으려면 걷는 게 좋대요.
Q. 서울 지리는 많이 아시겠네요.
A. 아는 곳만 알죠.
Q. 어디가 가장 친숙하세요?
A. 동묘죠. 쉬는 날은 거의 동묘 가서 사니까.
Q. 최근에 걸었던 길 중에 처음 걷게 된 길이 있으세요?
A. 성북동이요. 부자 동네라고 해서 가봤는데 위에까진 안 가봤어요. 중간까지만 가봤는데 다시 한번 가봐야죠. 맛집이 있다고 하면 조금씩 가보는데 쌍다리불고기라는 불고기 백반집에 다녀왔어요. 고대도 일본 라멘집이 맛있는 곳 하나 있는데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정통이에요 정통. 입구부터 돼지 냄새가 한 가득이에요. 여기 근처에도 맛있는 데 있어요. 대구탕집인데 그 집에서 볶음밥 먹으면 맛있거든요.
Q. 이렇게 들어보니 음식에 대해서 관심이 많으신 것 같아요.
A. 음식을 제가 맛있게는 못해도 따라할 수는 있어요. 어머니 아프실 때도 제가 다 했거든요. TV보면서 제가 따라는 해요. 재료만 있으면 잡식으로라도 만들고. 또 어머니한테 음식을 많이 배웠어요. 김치부터 해가지고.
Q. 혹시 요식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으신가요?
A. 하고는 싶은데.
Q. 자신 있는 메뉴가 있으시다면?
미역국이요. 저는 기름 뜨는 건 싫더라구요. 미역 불린 다음에 미역 넣고 들기름 넣고 국 간장 좀 넣고 볶다가. 물 붓고. 쌀 뜨물이나 그냥 물이나 똑같아요. 어느정도 끓이냐가 문제고 푹 끓여야 맛있어요. 어머니가 당뇨 때문에 이가 없으셔서 미역국을 제일 좋아하신 것 같아요. 또 육개장도 괜찮은데 육개장은 어떻게 끓이냐면 소고기랑 대파 두 단을 사요. 대파 두 단을 흐물흐물할 때가지 끓이면 거의 죽처럼 되거든요. 그걸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셨어요. 소고기도 넣으면 두 시간 끓이면 흐물흐물해져요.
Q.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다, 이런 게 있으실까요?
일단은 몸이 건강해야죠. 건강을 회복하고. 강아지들도 키우고 싶어요. 제가 좋아하는 게 강아지밖에 없는데 사나운 강아지도 저를 잘 따라요. 강아지랑 인연이 많나봐요. 그리고 국내 여행 다니면서도 맛있다는 데 많이 가보고 싶어요.
어쩌면 피할 수 없었던, 나에게 정해진 길을 걸어야 했지만 그 길을 걸으며 나만의 맛집 지도를 그린 박영신 선생님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는 ‘나는 어떤 길을 걷고 싶은가, 그 길에서 무엇을 만들고 싶은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생님께서 앞으로 걸어가실 길을 더욱 기대하며 걷고 싶은 길을 마음껏 걸어가실 수 있기를 기원드렸습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신 박영신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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