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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20호

[특집: 성프란시스대학 20년 회고와 전망] 성프란시스대학 풍격: 각 기수별 기풍

by 성프란시스 2024. 1. 13.

성프란시스대학 회고와 전망: "성프란시스대학 풍격: 각 기수별 기풍"/  박경장 (성프란시스대학 글쓰기 교수)

 

 

20231120일 심화 강좌 제6 강좌는 성프란시스대학 글쓰기 담당 교수이신 박경장 교수님께서 성프란시스대학 풍격: 각 기수별 기풍이란 주제로 이끌어주셨다아래에 강좌 내용을 편집하여 동영상 몇 컷을 공유해 놓았으니 구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

박경장 교수님은 우선 성프란시스대학 19년의 역사를 회고하는 방법으로 각 기수별 특징을 고찰하여 각 기수의 기풍을 잡아 내고, 이 모든 기수들의 기풍을 종합하여 하나의 통일된 성프란시스대학 정체성을 찾아내면 이것이 성프란시스대학의 풍격이 될 것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박경장 교수님이 각 기수 선생님 이름을 거명하실 때마다, 후배 입장에서는 처음 들어보는 선배님들 이름을 따라가기 바빴으나, 각 기수의 동문 한분 한분 호명해 나갈 때 마다, 배석하신 교수님들께서 그래 그때 그랬지. 아 그 선생님 이제 기억나요하시면서 감탄사를 연발하시는 것을 보면서 아 이것이 성프란시스대학의 역사이고, 성프란시스대학의 정체성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것을 복원해 보고픈 생각이 들었다.

 

당대 최고의 글쟁이이신 박경장 교수님은 다소 낯선 단어인 風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설하시면서 강의를 시작하셨다여러분, 풍격이란 말을 들어 보셨나요?” 질문을 던지자, “품격은 들어 본 것 같은 데, 풍격은 처음 들어 본거 같습니다란 답이 돌아 온다. 이에 박경장 교수님은 바둑에서 기풍이란 말을 들어 보셨죠? 풍격은 그림이나 글 같은 예술에서 쓰이는 말로, 인물, 사물, 예술 작품에서 느껴지는 특징적인 기운을 의미하는 것이 풍격입니다라고 설명하셨다. 그리고 이 강좌에서 성프란시스대학에서만 느껴지는 특유한 기운으로서 풍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이러한 성프란시스대학 풍격은 성프란시스대학 구성원이 함께하는 긴 시간에 걸쳐 자연스럽게 배어나는 기운을 이야기하고자 한다며, ‘성프란시스대학 풍격’  강의를 시작하셨다.

이어서 1기부터 19기까지 각 기수 별로 幾數 風格(기풍)을 정리하는 시간을 마련하여 이번 강좌에 참여한 기수는 그 기수 대표자가 자기 기수 기풍을 정리해 주고, 그렇지 못한 기수의 기풍은 교수님이 정리해 주셨다.

 

 

박경장 교수님은 인문학과정 4기부터 초기 기수의 기풍을 이야기해 주셨다. 4(2008) 기풍을 설명하는 스크린 화면에서 4기 선생님들 명단 중에는 졸업하신 열여섯 분 선생님 중 네 분이 별세하셨다는 안타까운 이야기를 전해 주시면서 애도를 표하셨다. 그리고 4기 문화를 소개하시면서 이때는 학무국장을 간사라 불렀고, 자원활동가를 자원봉사자로 불렀던 그 시기의 기풍을 설명해 주셨다. 4기 간사 선생님과 자원활동가 선생님 사이에 CC 커플이 탄생했던 일화도 소개해 주셨다. 또 4기 문집은 지금은 각 기수별 문집 편성의 특징이 된, 졸업하는 선생님들이 따로 정하는  제목없이 그냥 학생문집”이라는 제목으로 발간되었다는 성프란시스대학 문집 발간 역사의 일면을 소개해 주셨다. 4기 동문이신 윤건주 선생님과 토론하는 가운데, 장군 기풍의 故 천** 선생님의 애달프고 큰 강물 같은 삶의 일화도 소개해 주셨다.

그리고 유식과 무식코너에서 박경장 교수님은 유창만 선생님과 권일혁 선생님의 우의를 성프란시스대학 풍격으로 풀어 주신다. “유식하신 xx, 무식한 yy라는 살아있는 생태어 이야기를 해주신다. 누구에겐 비속어이고 욕이지만 여기서는 가족이고, 친구 사이에서 쓰이는 살가운 애정의 표현이다. 아래 동영상을 클릭해서 박경장 교수님의 살아있는 증언을 통해 성프란시스대학의 역사를 확인해 보자.

 

 

이러한 기수별 기풍의 예시는 5, 6기에서 출발하여 19기까지 이어진다.

아쉽게도 동영상 촬영이 중간 중간 생략되어 여기서는 짧은 메모와 필자의 기억, 그리고 박경장 교수님의 강의안에 의존하여 교수님의 강의 내용을 간략히 기록해 본다.

 

2009년 인문학과정  5기는 21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5기에 와서 문집에 처음으로 5기에만 해당되는 다음과 같은 이름이 생겼다: <벽에 문을 내다>. 그리고 자원봉사자란 이름에서 자원활동가라로 명칭이 바뀌면서 그 안에 능동적 활동의 의미가 담기게 되었고, 이때 이번 심화 강좌 제3강 강사이셨던 김의태 교수님이 자원 활동가로 등장하셨다.

 

2010년 인문학과정 6기에는 총 13명의 선생님들이 수료하셨고 <똑똑똑>이란 문집을 발간하였다. 배우 윤동환 선생님을 홍보대사로 모신 점이 돋보인다. 윤동환 선생님은 20139기까지 성프란시스대학 홍보대사로 활동해 주셨다고 한다. 미래에 성프란시스대학이 시도해야 할 일 중 하나는 이처럼 성프란시스대학의 철학에 동의하는 시민 사회 인사들과 다양하게 협력하는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리라. 교수님은 6기의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해 주셨다. 6기 선생님들이 졸업여행으로 제주도를 가게 되었는데, 제주도가 고향인 어느 선생님이 제주도에 가면 일가친척을 동원해서라도 졸업 여행 모든 일정을 본인이 준비하겠다고 장담하셨는데, 정작 여행 당일 날에는 본인이 여행 출발지에 나타나지 않으셨다고 한다. 아마 본인 장담과 달리 현지 친척의 지원이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2011년 인문학과정 7기에 와서 인문학과정의 행정을 담당하시는 선생님 직함이 간사에서 국장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한국 연구재단으로부터 연구기금이 들어오면서 재정적 여유가 생겼다. 7기에서는 총 13분 선생님들이 인문학과정을 수료하셨다. <간이역>이란 제목으로 문집을 발간했다. 교수님께서는 이 기수의 기풍을 냉정과 열정으로 표현하시면서 전설 같은 일화를 소개해 주셨다. 7기 시절 어느 날 어느 선생님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길거리에서 조금은 민망스러운 다툼을 벌였다. 이때 자원활동가 선생님이 그 현장을 지나다가 그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가지 않고, 소란을 떠시는 선생님을 잡고서 선생님 뭐하시는 거예요? 저를 따라 오세요!”라면서 그 선생님을 잡고 성프란시스대학 교정까지 왔다는 이야기를 해주셨다. 이 장면을 동영상으로 촬영하지 못해 못내 아쉽다. 글로는 그 생생함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까.

 

2012년 인문학과정 8기에는 17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고 <8760시간>이란 제목의 문집이 발간되었다. 기업 후원, 연구재단 지원금 등이 들어오고 교육체계가 정비되면서 성프란시스대학은 성장기에 들어서게 된다. 이때부터 3년간 정경수 선생님이 학무국장을 담당하셨고, 이번 심화강좌 제5강을 담당하셨던 김연설 선생님을 중심으로 선생님들 주도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하였으며, 졸업후에도 자전거 수리 사업을 시작하거나 총동문회, 등산동아리 메아리”를 발족하기도 했다. 김연설 선생님을 위시한 8기 선생님들의 이런 활동은 성프란시스대학의 역사를 회고하고 전망하는 현 시점에서도 시사해 주는 바가 매우 크다고 하겠다.

 

2013년 인문학과정 9기에는 무려 20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다. <>이란 제목의 문집이 발간되었다. 9기 졸업생 중 한 분이신 박은철 선생님은 나중에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따서 현재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근무하고 계신다.

 

2014년 인문학과정 10기에는 17명의 졸업생이 배출되었으며 <사이>라는 제목으로 문집이 발간되었다. 박경장 교수님은 10기의 기풍을 이야기하시면서 한계령 흘림골, 업고 오르다란 일화를 소개해 주셨다.  2018년 별세하신 김대인 선생님 이야기이다. 여름수련회를 동해안으로 떠나 한계령에서 오색 방향으로  있는 남설악  흘림골계곡을 등반했다. 이때 몸이 불편하신 김대인 선생님도 따라 나섰으나 몇 걸음도 떼지 못하고 주저 앉고 말았다. 결국 센터 실장으로 재직하시면서 인문학 운영에 함께 참여하셨던 이수범복지사님과 박경장 교수님이 번갈아 업고 그 가파른 계곡을 완주했다면서 애잔한 추억이 어린 회상을 해 주셨다.

 

한시간 강의를 통해 19기수의 기풍을 다 소개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박경장 교수님께서도 결국 11기부터는 짧게 기풍을 소개해 나가셨다.

 

201511기는 1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우리>라는 제목의 문집을 발간하였다. 11기의 기풍으로 여인천하를 이야기하셨는데, 11기 선생님과 자원활동가 선생님들 가운데 여자 선생님들이 유독 많았고, 또한 여자 선생님들 활동의 유독 많았다고 기억해 주셨다.

 

201612기는 1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17기 기풍을 적당한 거리로 정리해 주셨고, 20229월 국회 시화전에서도 소개되었던 공동창작시 연탄구멍을 소개해 주셨다.

 

201713기는 12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동행>이란 제목의 문집을 발간했다. 13기 기풍을 복면을 쓰고 시를 낭송했던 인문학 프로그램 제목인 복면시왕네 글자로 정리해 주셨다. 이때 안상협 선생님이 학무국장으로 취임하여 3년 동안 인문학과정을 이끌어 주셨다.

 

201814기는 17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꿈길>이란 문집을 발간했다. 14기 기풍으로는 몽유도원이라 정리해 주셨는데 시간 관계상 그 의미를 길게 설명해 주시지는 못했다.

 

201715기는 17명의 졸업생을 배출했으며, <매듭>이란 제목의 문집을 발간했다대기업의 후원이 중단되면서 15기 기수는 후암동 교사의 마지막 세대였는데, 교수님께서는 15기 기풍을 ‘화양연화(花樣年華)로 정리해 주셨다. 아마 16기 이후 대기업 후원이 중단되고 코로나 19의 대유행으로 인문학과정도 행사가 취소되거나 축소되고, 심지어 대면 수업 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이 된 것을 회상하시면서 15기의 기풍을 정리하신 것으로 보인다.

 

202016기는 11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나의 인생의 마중물>이란 제목의 문집을 발간했다. 이 시기는 대기업 후원이 끊어지고 본격적으로 코로나 19가 극성을 부리기 시작한 때여서, 지금의 우체국 건물에 설치된 보건소 시설 한 켠을 빌려 수업을 진행해야 했고, 현장 수업이나 소풍 및 졸업여행마저도 취소되거나 규모를 대폭 줄여야 했던 시절이다. 이런 16기 시기의 아픔을 박경장 교수님은 ‘명이포음/암(明以包喑)이라는 16기 기풍으로 정리해 주셨다.

 

202117기는 1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별을 보며 나누는 우리들의 작은 이야기>라는 제목의 문집을 발간했다. 16기의 시기의 어려움이 17기에 와서 더욱 심화되어, 수업의 태반 이상이 을 통한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되었고, 다소 무리한 봄소풍과 가을 소풍 외에는 대부분의 현장 수업이 취소되었다. 졸업식도 학사모 차림이나 풍물패 축하 공연도 없이 식당 한 켠에서 무언가에 쫓기듯 수료증만 받고는 후다닥 식사하고 그냥 헤어졌다. 그러다 보니 17기 시기에 어떤 추억이나 남은 것이 없는 것 같다. 그런 17기 모습을 박경장 교수님은 성견자작(星見自酌)이라 정리해 주셨다.

 

202218기때에는 코로나19가 한풀 사그라지고, 그 동안 움츠렸던 인문학과정도 원상복귀하는 시기였다. 18기는 16명의 졸업생들을 배출했으며 그동안 취소되거나 규모가 축소되었던 야외 현장 수업도 재개하고 여름수련회도 다녀왔으며 16기와 17기는  합동으로 졸업여행도 다녀왔다. 18기 졸업여행도 23일로 조금은 여유 있는 일정을 잡기도 했다. 그리고 9월에는 국회의원회관 로비에서거리에서 움튼 글 그림으로 피어나다란 제목으로 졸업하신 선생님들의 글에 민예총 소속 애니메이션 혹은 만화 작가들의 그림을 곁들인 시화전을 개최하기도 하였다. 그 동안 움츠러 들었던 인문학과정이 다시 활기를 되찾아 가는 과정이었다.

 

202319기는 아직 인문학과정이 진행 중이지만 성프란시스대학 구성원 모두가 참여하는 집단지성을 통해 지난 시절을 회고하고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에 대해 논의하는 성장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박경장 교수님은 '19살 성프대 풍격은이라고 운을 떼시면서 19기와 19살 성프란시스대학의 오늘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이야기해 보자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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