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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19호

[성프란시스대학 동문 소식] 고 최중겸 선생님 추모사

by 성프란시스 2023. 11. 13.

 

내가 기억하는 허당(최중겸)

이상은(인문학과정 11기 학무국장)

 

최중겸 선생님과의 첫 인연은 201410월이었습니다. 꽃게잡이 배에서 일하던 중 쓰러졌고 결핵 판정을 받아 보라매병원에서 3개월을 입원 후 갈 곳이 없어 처음으로 서울역에 발을 내딛은 순간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결핵으로 마른 몸에 처음 노숙을 경험하시는 분들이 으레 그렇듯 불안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간단한 초기 상담과 함께 안내로 끝난 첫 만남은 저에게는 일상의 한순간이었고 다른 대상자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는데 이 인연은 2015년 성프란시대학 인문학과정으로 이어졌습니다.

허당은 성프란스대학의 오리엔테이션에서 별명 짓기 작업에서 최중겸 선생님이 직접 지은 별명입니다. 다음카페 성프란시스대학 11기 까페에 적힌 자기소개에는 이름은 최중겸입니다. 1년 농사 잘 지을 수 있게 단비와 숙성된 응가 많이 아주마니 부탁해용이라고 적으셨습니다. 별명과 자기소개에서 느낄 수 있는 그의 성격과 행동은 첫 만남을 가진 성프란시스대학 11기 동료들과 자원활동가 그리고 처음 인문학과정을 맡아 진행하고 있는 저에게 긴장감을 풀 수 있는 활력소이자 사람들 사이를 끈끈하게 만들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과장되고 우스꽝스러운 허당이 최중겸 선생님의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쉽게 알아볼 수는 없지만 남을 생각하는 따뜻함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최중겸 선생님의 관심은 자기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있었고 20151학기 학생회장으로서 주변을 챙겼습니다. 수업에 나오지 못한 학우가 있다면 담당자인 저보다 먼저 전화했고 이야기를 들어주고 필요하다면 자신의 시간과 돈을 투자해 해결해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성프란시스대학 11기가 순항할 수 있도록 헌신하셨고 이후에 참여하게 된 두드림(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노숙인 풍물패)에서도 마찬가지로 총무로서 상쇠(풍물패에서 꽹과리를 치며 전체를 지휘하는 사람)로서 남을 챙기는 일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사람 좋은 그에게 술은 아킬레스건이었습니다. 아마 노숙을 하기 전에도 술이 최중겸 선생님의 발목을 잡았을 것이고 인문학과정을 하면서도 술로 인해 오해를 사고 관계가 틀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외로움을 많이 타는 그분에게 술은 버릴 수 없는 존재였습니다. 일하고 집에 돌아가서 혼자 보내는 그 시간을 채워줄 수 있는 것을 술 말고 찾기는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나름 조절하기 위해 많이 노력하셨는데 소천하신 지금 생각하면 가장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허당 미가 넘치고 의욕적이고 적극적인 최중겸 선생님, 남 챙기는 데 진심이었고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사람. 너무 의욕이 넘쳐 가끔은 오해를 받고 일이 잘못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를 아끼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면 그는 좋은 사람입니다. 인문학과정을 하실 때의 모습이 많이 생각나고 제가 딸을 낳고 돌이 될 때쯤에 아이 입히라고 하얀 드레스를 선물해주신 모습도 기억이 납니다. 돌아가시기 얼마 전 서북병원에 입원해있을 때 그 야윈 모습도 생각이 나고 두드림 풍물패 공연을 하셨던 모습도 기억 속에 남아있습니다. 이젠 기억으로만 남아계시겠지만 저를 포함한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주 오랫동안 기억 속에 남아 계실 겁니다. 부디 하늘나라에서 더욱 행복한 모습으로 남아있는 저희들을 지켜봐 주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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