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단이 흐른다.
한상규 (인문학 19기)
붉은색 같기도 주홍빛 같기도 한 촘촘히 쌓아놓은 계단이 파란 도화지에 흐르고 있다.
어느 날 비 온 뒤 더 파래진 숲 사이로 더 파란 하늘을 보았다. 그 숲을 하나씩 하나씩 스쳐 지나가는 나무의 향기와 들꽃의 산들거림을 보며 인사를 하다가 올라가는 길은 층계도 없는데 고즈넉하기만 하다.
올라가는 길은 점점 힘들어지고 땀은 방울방울 세수라도 한 냥 맺혀지는데 계단은 보일 생각도 하지 않는다.
꾸역꾸역 올라가는 길 중간 흐른 냇물에 발 담그고 파랬던 숲도 살짝 어둑해지는 터널을 지나오는 바람에 땀 식히며 올라간다.
어둑해지는 터널이 점점 빛으로 밝아지고 터널을 지나오는 바람보다 더 세찬 바람이 불어올 때쯤 머리를 다 밀어버린 옆 방 아저씨 같은 꼭대기가 그 빛을 반짝일 때 올라오는 내내 투덜거리던 그 계단이 하늘 위로 올라가 있었다.
파랗다 못해 시퍼런 깊은 바다 같은 하늘에 촘촘히 쌓아 올렸던 그 계단이 올라오던 노고를 칭찬이라도 해주듯 바람 같은 선물과 함께 내려가는 길은 편하라는 듯 흐르고 있다.
그렇게 계단이 흐르고 있었다.
나도 흐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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