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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18호

[성프란시스대학 동문 소식] 최인택 선생님 추모하며

by 성프란시스 2023. 9. 12.

성프란시스 대학 16기라는 마중물

- 0택 선생님을 추억하며 -

마명철(16기 학무국장)

 

코로나바이러스와 함께 어렵게..어렵게 시작된 성프란시스 인문학 16! 그 과정에 함께 하셨다가 얼마 전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난 최 선생님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선생님의 개인사는 첫 수업 시작 후 2주 정도 되었을 때 개별 면담을 진행하면서 조금 알게 되었습니다. 최 선생님은 다시서기에 오기 전이 인생 최대 위기였다고 하셨습니다.

과거의 이야기를 하자면 아버지는 직업군인, 어머니께서 임신중독으로 인해  선생님을 낳으시다가 돌아가신 후, 부친이 재혼하면서 친적 집에서 자라며 학창시절을 보냈다고 합니다.

성인이 되어서는 서울 용답동에서 20년 이상 거주하며 동네에서 일용근로 하면서 지내 왔지만, 지역 재개발로 일거리도 줄고 집주인은 퇴거 요청을 하는 상황이 겹쳐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였습니다. 이에 우울감으로 죽음을 결심하고 깊은 밤 아무도 없는 산속에 혼자 가서 실행하려던 찰나에 집주인으로부터 연락이 왔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살던 곳에 월세가 밀려 보증금도 다 소진되어 받을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집주인이 돌려줄 것이 있다 하며 25만원을 보내주셨던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삶의 마지막에 한 줄기 희망을 발견하고 마음을 잡았으며, 주민센터를 통해 다시서기에 오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다시서기 센터를 이용하며 자활근로에도 참여하고 고시원 방도 얻어 저축도 시작하셨으며, 생활이 조금 안정되었을 때 성프란시스 인문학과정 모집 공고를 보셨습니다. 다시서기 인문학에 대한 명성과 소문은 수없이 들었는데 좋은 계기였던 것이죠. 그렇게 선생님의 성프란시스 인문학 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최 선생님은 인문학 16기 동기생들 중 최고령으로 입학하였으며, 정규수업 및 심화 수업, 현장학습 등 공식 일정에 늦으시거나 빠지는 일이 없었으며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특히 예술, 철학, 역사 수업에서 기본적인 상식이나 지식은 저도 감탄할 만큼 놀랐던 기억이 있네요.

학사일정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글쓰기였습니다. 2학기 글쓰기 수업에서 매주 시 한 편을 외우는 과제는 그 때문에 여러 학생들이 인문학을 그만두거나 수업을 고정적으로 빠지게 될 정도로 힘든 과제입니다.

그런 이유에선지 모든 수업 중 글쓰기 수업이 출석률이 제일 저조하지만 최 선생님은 한 번도 과제를 어려워하거나 피하지 않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시고 모든 과제를 즐겁게 외우며 임하셨습니다. 함께 공부하는 동기생들이 나이가 어리다고 말을 낮추지 않았으며, 나이가 많다고 우대를 바라는 것 없이 항상 겸손한 모습이었습니다.

이런 선생님의 성실함은 16기 수료 과정 중 가장 받기 어렵다는 개근상을 수상하는 최후의 1인이 되시게 해 주었으며 그렇게 선생님은 인생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를 완성하였습니다.

인문학 수료 후의 계획을 여쭤보니 일할 수 있을 때까지는 최대한 근로를 하실 생각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숙인 일자리는 본인보다 어려운 사람을 위해 양보하는 게 맞다고 하시며 더는 참여하지 않고 구청에서 하는 공공일자리에 참여하며 근로활동을 지속하셨습니다.

졸업 후에도 16기 동기들과 정기적으로 만남을 진행하고 송년회도 같이 하며 서로의 소식을 전하며 인간적인 관계를 이어나갔습니다. 선생님은 인문학 과정을 통해 내적인 성장은 물론 경제적 안정을 위해 정말 열심히 생활하셨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16기 동기인 유0욱 선생님을 통해서 들었습니다. 20227월경 부터 소화가 안 되고 속이 불편하고 구토가 나와 동네 병원을 찾았는데 위암 의심으로 2차 병원 진료가 필요하다는 소견이 있었습니다. 저는 바로 연락 드려 보라매병원에 진료 예약하고 병원에 함께 동행했습니다.

병원으로 가는 도중에 최 선생님에게 우리 포기하지 말고 일단은 최대한의 치료를 받고 나머지는 하늘에 맡기자고 말씀드렸으며... 선생님도 그렇게 하시기로 하고 투병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암이 급속도로 전이되어 수술을 진행할 수 없었으며, 약물치료를 지속하였지만 신체 컨디션 저하로 더는 몸을 움직일 수 없는 탈수 상태가 되었습니다.

20236월 선생님은 수액 치료를 받고 기력을 회복하시기 위해 119를 통해 동네병원 이송을 요청 했지만 응급상황에 해당되지 않아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한번도 다른 사람에게 먼저 도움을 요청한 적 없었던 선생님은 스스로 몸을 가눌 수 없는 상황에 이르자 동기 유0욱 선생님과 저에게 마지막으로 전화하셨습니다. 이전에도 호스피스병동 입원은 권유했지만 거부하시고 통원 치료를 받으셨지만 이제는 선생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을 인지하셨고 저희에게 연락을 주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병원으로 이송되어 입원 치료를 받았으며, 선생님의 기적적인 회복을 위해 16기 도반인 김봉은, 김연아, 동기 유0욱선생님, 그리고 지금은 목사가 되신 김용극 선생님이 회복 기도까지 하며 병문안도 진행하고 쾌유를 기원했습니다.

병문안 당시 침대에 누워계시고 의식이 흐릿한 상태에서도 우리의 목소리를 듣고는 웃음도 지으시고 반응을 보여주셨습니다. 저희는 최 선생님이 다시 일어나서 남대문시장에 가서 삼계탕도 먹고 예전처럼 식사 모임도 하자고 이야기하며 회복을 빌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일주일 뒤 선생님은 다시 소생하지 못하시고 하늘나라로 소풍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서울역에서 15년 동안 수많은 죽음을 직·간접적으로 마주하였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은 소우주의 소멸이라고 표현합니다. 태어나면 없어지는 것이 자연의 순리이지만 어느 때 보다도 마음이 무거워 몇 주간 잠을 이루지 못하였습니다.

제일 아쉬웠던 것은 선생님이 생전에 마국장님에게 개인적으로 식사 대접을 하고 싶다고 이야기하셨는데 시간을 핑계로 그 부탁을 들어드리지 못한 것이 죄송스럽고 속상합니다.

이제 자유로운 영혼이 되신 최 선생님! 성프란시스 도반으로 선생님과 함께 한 순간들 모두 저에게도 한편의 영화나 소설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이번 생의 마지막 눈 감기 전 무거웠던 삶의 무게와 병마의 고통은 훌훌 털어내시고 다시 깨어난 곳에서 안식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 0택 선생님을 추억하며 -

 

절망 속에 희망을 찾았던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한결같던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흐트러짐 없이 매 순간 최선을 다하신 선생님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평소에 조용하시지만 한 번씩 터지는 선생님의 유머스러운 해학을 기억합니다.

마지막까지 병마와의 싸움에 포기하지 않고 최선을 다했던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삶의 마지막에 성프란시스 도반을 생각하신 선생님을 기억합니다.

한없이 자유롭고 괴로움 없는 곳에서 평안하소서~

 

최선생님과 함께 했던 소중한기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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