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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10호

[길벗 광장] 내가 만난 어린 왕자들

by vie 2022. 1. 4.

여재훈 (성공회 신부, 前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장) 

 

내가 그들을 처음 만났던 것은 그들이 인생의 긴 항로를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그들은 이 긴 여행 중 사막과도 같은 메마르고 희망 없는 곳을 지나고 있었고 자포자기 상태로 사막 한가운데서 물을 찾아 헤매고 있었지만 목마름을 해결할 생수는 좀처럼 찾기 힘들었다. 끝을 알 수 없는 갈증과 그로 인한 파멸의 두려움이 그들을 절망하게 만들었고 가끔씩 그들과 만나는 일반적인 여행객들은 그들을 두려워하거나 함께하기 꺼려 했다. 때로는 그들에게 물을 나누어 건네는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이 왜 이 사막에서 헤매고 있는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귀담아 들어주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때문에 타인들의 시선 속 외로움에 스스로 벽을 쌓고 그들의 관심을 거부하는 외톨이가 되어갔고 결국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우리는 그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1. 맑고 선한 영혼들

다시서기에서 성프란시스 인문학대학을 진행하면서 참 많은 어린 왕자들을 만났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어린 왕자는 12년 전 인문학 사무실에서 첫 신앙 공동체를 꾸리고 예배를 드리며 만났던 A 선생님이었다. 그는 충북 음성의 꽃동네 노숙인 시설에서 서울역으로 온 50대 후반의 남성이었다. 작은 키에 희끗한 머리, 선한 얼굴을 한 그는 신앙 공동체가 생기고 얼마 되지 않아 예배에 출석을 하더니 매주 빠지지 않고 예배에 출석하며 열심을 다하였다. 10여 명의 인원이 함께 모이던 공동체는 매주 헌금 바구니를 놓고 예배를 드렸지만 헌금이 거의 걷히지 않았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누군가 손때로 인해 새까매진 흰색 편지봉투에 4만 7천 원을 넣어 헌금을 한 것을 발견하였다. 화들짝 놀라 수소문 끝에 누가 냈는지 확인하였더니 그 A 선생님이 봉헌하신 것이 확인되었다.

그를 사무실로 따로 불러 어떻게 된 이유인지 물으니 지난 월요일 서울시에서 노숙인 지원센터로 내려주는 자활근로를 신청하여 한 달 급여 47만 원을 받아 십일조를 봉헌한 것이라 했다. 그는 월급을 받은 날 바로 4만 7천 원을 분리하여 편지봉투에 넣어 일주일간 주머니에 넣고 다니느라 봉투가 검게 때가 탄 것이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나는 이미 예배 때 하느님께 봉헌되었으니 이제 선생님이 이 돈을 생활비에 보태 쓰시라고 했지만 한사코 손사래를 치며 지난 일주일간 헌금할 수 있는 기쁨에 돈 봉투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너무 행복했다며 신앙 공동체를 위해 써달라 부탁하였다. 그에겐 생존비와도 같은 돈이었지만 그의 진심이 느껴져 더 강권할 수는 없었다. 그때 그의 삶은 가난하지만 영혼이 풍성하였기에 그의 맑고 선한 눈망울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2. 보아뱀 속의 코끼리

성프란시스 인문학대학 졸업생 중 가장 기억에 남는 B선생님은 나를 만나면 항상 ‘파공법’을 설명하셨다. 그는 이 파공법을 통해 몸의 뒤틀린 균형을 바로잡고 혈액순환 및 기초대사를 원활하게 해 최고의 건강법이라고 설명하였다. 방법은 입술을 굳게 닫고 그 사이로 숨결을 내보내며 입술과 입술 사이로 파장을 일으키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항상 “부르르” 하는 소리를 입으로 내며 혼자 묵상하였다. 공공장소뿐만 아니라 일상 중 언제라도 그리하셨으니 모르는 주위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겼을 것이 선생님의 외모 또한 남달랐기 때문이다. 회색빛 백발에 부스스한 머리, 삶의 궤적이 느껴지는 강렬한 눈빛, 얼굴 정중앙을 가로지르는 굵고 긴 흉터 등 언뜻 보면 범접하기 힘들어 보이는 인상이기에 더 그러했다. 그는 젊은 시절, 골동품들을 모아 되파는 일을 하였는데 그런 탓에 전국 도심 곳곳의 지리와 그 동네의 유래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 그로부터 도심 곳곳의 이야기를 들을 때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보여지는 외모와 달리 그는 매우 선한 사람이었다. 남에게 피해 주기 싫어하고 사회적 정의와 올바름에 민감하였다. 그런 이유 탓인지 어디 얽매이는 것을 매우 싫어하여 항상 어딘가를 떠돌아다니는 자유인이었다. 서울에서 대전으로 다시 부산으로 가끔은 동해로 가서 바닷가에서 지내기도 했다. 그리고 오며 가며 교통편 안에서 구걸을 하기도 하고 목 좋은 거리에서 잘 부르는 노래를 불러 동냥을 하기도 하며 생계와 차비를 챙겼다. 자존심이 매우 강하여서 그런 와중에도 항상 당당하고 자유로웠다. 그리고 수도자들처럼 항상 밝고 맑아서 그를 만나고 나면 좋은 영향을 받은 듯 즐거웠다. 그런 그가 가끔씩 나를 찾아오면 항상 지갑 속에서 내 명함을 꺼내 보여주며 확인시켜주곤 하였다. 왜 그것을 가지고 다니냐 물으면 자신이 객사하면 신부님께 연락이 가게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그를 본 지 벌써 4년이 지나간다. 그의 위태로운 삶에 혹시 무슨 일이 있지 않을까 센터에 연락을 하는데 아직 자기 별로 돌아간 것 같진 않다. 어딘가를 끊임없이 여행하고 있겠지. 부디 그 여행이 끝나기 전에 그의 ‘파공법’을 전수받았으면 좋겠다.

 

3. 여우도 뱀도 없이 사막에 홀로.

일반적으로 노숙의 원인을 경제적 파탄과 그로 인한 주거상실로 여기는 이들이 많은데 실지로는 경제적 불안과 주거 탈락보다는 가정의 몰락, 인간관계의 추락에 의한 노숙인 발생이 더 많다. 때문에 노숙인들 중에는 정상적인 방법의 관계형성에 서투르고, 더불어 그것을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성장기 유복한 가정에서 성장한 C 선생님은 제법 좋은 환경의 삶을 살아오다 다니던 회사가 IMF의 영향으로 부도나고 실직을 경험하면서 인생의 나락으로 추락하였다. 문제는 그동안의 유복한 생활에 대한 미련이 그를 스스로 일으켜 세우는 데 큰 벽으로 자리잡은 듯 하였다. 사람들과의 관계는 대부분 끊어지고 가정이 해체되어 재기의 가능성은 더 희박해졌고 결국 그를 서울역으로까지 이르게 하였다. 이제 그는 타인을 만나고 사귀는 관계설정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그의 재기 가능성을 더욱 희박하게 만들어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결과적으로 다시서기센터와 성프란시스 인문학대학을 통하여 새로운 관계를 만들고 새로운 환경설정을 할 수 있기까지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는 현재 주거지원과 기초수급 등을 통해 일상적인 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나와도 가끔씩 연락하며 동네에서 식사와 함께 소주 한 잔씩을 나누곤 한다. 결국 인생을 함께 걸어갈 도반(道伴) 동료들을 만나자 삶이 안정되고 새로운 일과 인생을 모색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비록 온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무언가에 대해 의논하고 나눌 수 있는 이들이 있다는 것은 삶을 지탱하는 '기댈 언덕'이 되어 주었고, 성프란시스대학은 그 길을 안내해 주었다.

 

4. 별로 떠난 사람들

수많은 사람들이 거쳐간 다시서기센터와 성프란시스 인문학대학은 사막을 헤매는 어린 왕자들에게 도반으로서 여우와 뱀이 되어 주고 의미 있는 관계와 삶을 함께 나누는 친구가 되어 주려 힘써온 시간과 공간들이었다.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었던 그들은 자신의 별로 돌아갔거나 다시 여행을 시작했지만 이곳에서 함께 나누었던 경험들은 어쩌면 그들의 여행에 귀한 에너지와 깨달음이지 않았을까?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그들이 우리에게 남긴 삶의 물음표를 잊지 않을 것이다. 세상 사람들보다도 더 맑고 순수함을 가진 이들이었기에 더 많은 상처에 쉽게 노출되었고 타인들의 부정적인 선입견에 시달려야 했던 그들은 우리와 함께한 시간을 양분 삼아 하루하루 치유하고 회복하며 또한 그 에너지를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을 것이라 믿는다. 부디 어느 곳에 있든지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하고 이해하는 행복한 여정이 되길 기도해본다. 그리고 남겨진 도반으로서 우리는 새로 시작하는 2022년도에도 사막 같은 서울역에서 만날 수많은 어린 왕자들이 스스로 사랑받을 존재이고 사랑을 줄 수 있는 장미의 왕자임을 깨닫도록 함께하는 더 뜨거운 한 해가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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