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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10호

[역전 칼럼] 서울역 연가(戀歌)

by vie 2022. 1. 3.

박경장 (글쓰기 교수, 문학평론가)

 

서울역 연가(戀歌)


1
모기야 그만 빨아라. 취하겠다.

2
서울역 광장을 지나 인문학교실 가기 전 횟집 수족관 바닥의 가재미를 보고 있었다.
볼 거 뭐 있어? 너도 누워봐바닥에 누운 가재미 한 마리가 내 뒤통수를 후려친다.
벌러덩 바닥에 누우니 내 눈이 한쪽으로 쏠렸다.

3
출근길
값도 없는 무가지가
지하철 선반 위에 하나씩하나씩
앉는다. 그것도 자리라고 

출근길
값도 없는 무가지가
지하철 선반 위 무가지를 하나씩하나씩
수거한다. 그것도 일자리라고

출근길
지하철보다 빠르게
무가지가 무가지를 잡으러 한칸씩 한칸씩
달려간다. 그것도 경쟁이라고 


4
나는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 떨어지자마자 하염없이 낮은 곳으로만 흘러갔다. 흘러 흘러 마침내 고인 곳, 서울역사 바닥. 나는 단 한 번도 이렇다 할 명함을 가져본 적이 없다. 비정규직이었으며 일용직이었고 무직이었다. 형태도 없이 퍼질러진 물이었다.
 

5
불볕더위를 피해 한 떼의 피라미들이
바위그늘 속으로 들어왔다 

그렇게 숨죽이며 또 하루를 죽이면
생을 거슬러오를 수 있겠느냐

떠내려가지 않으려
서울역 한켠
한 무리 피라미 떼가 어둠으로 들러붙었다  


6
바닥에 멍석을 깔고 병풍을 세우고
이젤과 줄로 우리의 그림과 사진과 글을 걸어 주위를 둘렀더니
광장이 마당이 되었다. 

누구는 전시물을 보고
누구는 공연을 하고
누구는 박수를 치고
누구는 춤을 추었지만
모든 시선이 마당 안으로 둥글게 모였다.

공연이 끝나고 마당은 다시 광장으로 흩어졌지만
흩어질 필요 없는 사람들이
서로의 집이 되어 마당을 쪼개고 있었다.
안방
건넌방
헛간
뒷간
부엌
장독
꽃밭
....  


7
풀죽지 마라
검푸른 살과 피
광장햇살에, 아직
뜨거우니

풀죽지 마라
파닥거리는 생의 비늘
역사달빛에, 아직
영롱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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