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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5호

[길벗광장] 곽노현 학장님과 함께한 일 년

by vie 2021. 2. 25.

 


허용구 (성공회 신부,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장)



지난해 성프란시스대학을 되돌아보면서 두 가지를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새로운 학장님을 모셨다는 것입니다. 노숙인 인문학이라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한 다시서기센터와 인문학과정을 16년 동안 이끌어 오셨던 교수님들의 열정이,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에서는 여전히 생경한 분야이기도 합니다.

피상적으로 또는 편견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간다면, 판단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은 속편할 수 있지만, 대상이 되는 입장에서는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일들이 종종 벌어집니다. 관행적으로 판단되어지는 것 중의 대표적인 것이 ‘종북’ ‘좌파’ ‘우파’ 등과 같은 이념의 잣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이 잣대를 너무 편하게 사용해 왔습니다. 왜냐하면 제일 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관점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념이라는 잣대를 가지고 판단하고, 원하는 대로 재단을 하면서 본인의 판단이 옳다고 도출시킬 수 있는 것이 이념의 '프레임'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이렇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15년 동안 성프란시스대학은 이런 편견에 저항하고 때로는 맞서곤 했습니다. 그동안의 업적을 때로는 효율성과 효과성이라는 기준으로 재단하면, 다시서기센터의 업적이 폄하되어 지기도 했습니다.

그동안 풍족한 재원과 후원을 바탕으로 온실 속에 살아 왔습니다. 대기업의 후원이 있었기에 강의실부터 학습과 야외학습 각종 야유회 등이 걱정 없이 이루어졌습니다. 15기부터는 기존에 사용하던 공간의 임대료 감당할 수 없어,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했고, 문화카페 길 또한 거친 광야로 나와 혹독한 자립을 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힘든 시기에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께서 흔쾌히 학장직을 수락해 주셨습니다. 어려운 시기라는 것을 익히 들으셨을 텐데 성프란시스대학 학장직을 수락해 주셨다는 것 자체로만으로 우리들에게 큰 힘과 격려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 년 동안 운영위원회를 개최할 때마다 참석해 많은 의견과 함께 앞으로의 발전을 위한 열정적인 의지를 보여 주셨기 때문에, 북콘서트를 준비하고 15년 노숙인 당사자들의 문집인 '거리에 핀 시 한송이 글 한포기’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거리의 인문학’ 이후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출간한 두 번째 문집으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첫 문집은 노숙인의 글을 세상에 소개했다면, 두 번째 문집은 노숙인의 글이 세상을 가르쳤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노숙인에게 인문학이 무엇인지, 또한 노숙인이 다시 설 수 있는 힘은 실용적인 기술이 아니라 내면의 가치와 자존을 세우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세상에 알렸다고 평가를 해봅니다.

곽노현 학장님의 시대를 새롭게 세상에 알렸고, 학장님이 가지고 있는 새로운 계획과 희망이 조금씩 뿌리내렸던 해였습니다. 그리고 성프란시스대학의 새로운 자립과 자존을 위한 의미 있는 첫 발자국을 시작했다는 것이 우리들에겐 크나큰 선물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코로나19를 말해야 할 것입니다. 코로나가 우리의 모든 일상을 바꿔 버렸습니다. 성프란시스대학 또한 이 영향 안에서 벗어나질 못했습니다. 그동안 유지해왔던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기가 매우 힘들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문학의 출발은 질문과 개인의 사유라고 할 수 있는데, 이런 형식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해였습니다. 자원활동가들이 수업을 하시는 분들 옆에서 친구처럼 도와주고 격려와 지지를 통해서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야 함에도, 비대면 수업에서는 역시나 한계를 갖고 운영할 수밖에 없던 것이 많은 아쉬움으로 평가됩니다.

성프란시스대학은 단순히 지식만을 전수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활동을 하며, 서로서로 함께 공동체 활동을 통해서 성숙된 인간관계를 다시 설정하는 역할 또한 중요한 학습임에도, 코로나로 인해 야외 학습과 활동 등이 많이 이루어지질 못했습니다.

아마 모든 분들이 지난해를 되돌아 볼 때 코로나로 인해 상실되거나 불편함을 겪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사연 많은 코로나가 새해가 되면 사라지길 바랐지만, 코로나와 함께 새해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올해도 성프란시스대학은 새롭게 학생을 모집하고 학습을 진행할 것입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노숙인 인문학이 사람을 살리는 힘이 있다는 것을 세상에 계속해 알려야 하고 때론 세상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과 사명이라고 다짐해 봅니다.

어떤 환경이 오더라도 성프란시스대학은 계속되어 운영되고 이를 통해 잃었던 자존감과 인간성의 보편적인 소중한 가치가 되살아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곽노현 학장님과 성프란시스대학을 함께하시는 교수님들, 자원활동가들, 후원인들이 계시기에 흔들림 없이 우리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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