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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2호

[길벗 광장] 코로나 이전과 코로나 이후의 서울역

by bremendhk 2020. 8. 27.

박한용 (한국사 교수, 전 민족문제연구소 교육홍보실장)

“이제 인류는 코로나 이전의 삶과 코로나 이후의 삶으로 나뉘어졌습니다. 이제 인류는 더 이상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면서 WHO나 각국의 의료 전문가 그리고 정치인들이 한결같이 한 말이다. 정말 그렇다. 삶이 많이 달라졌다. 카뮈의 <페스트> 같은 소설책이나 중세 ‘흑사병’을 다룬 역사책 또는 비디오를 빌려볼 때 늘 앞에 나오는 “호환 마마”로 역병의 공포와 위력을 희미하게 알던 21세기의 우리는 코로나를 통해 악성 유행병이 얼마나 혹독한지 실감하고 있다.

문명의 오만을 자랑하던 서구는 마스크 한 장의 문화 차이로 ‘마스크 문명권’으로부터 곤욕을 치렀다. 마스크를 쓴 동양인을 향해 침을 뱉거나 눈을 찢는 행동을 하던 서구인들은 결국 동양의 여러 나라로부터 마스크를 긴급 수입해야 했다. 서구의 피식민지 역사를 가진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인들은 카타르시스를 느꼈을까?

질병이 경제에 이렇게까지 큰 타격을 준 것도, 그리고 전 국민이 재난구호금을 받는 일도 처음이 아닐까 한다. 서구나 우리 사회 일부 젊은이들의 코로나에 대한 안이한 태도는 ‘니들은 괜찮아도 니들 때문에 우리가 죽어 나가게 생겼다’는 기성세대 특히 노인 세대들의 분노를 자아내기도 했다. 동성애와 관련된 곳이나 극우 종교단체의 반종교적 광신적 정치집회를 통해 코로나바이러스가 대량 확산되면서 동성애자들이 죄인이 되기도 했고 ‘교회’가 사회를 치유하기는커녕 병들게 한다는 탄식과 분노도 나오고 있다.

특히 서구에서는 방역을 위한 개인 정보 추적이 개인의 자유 침해 아니냐는 논쟁도 일어나면서 개인과 공동체, 개인주의와 민주주의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해주었다. 정치적 동기나 경제 활성화란 명목으로 생명의 위험조차 무시하고 코로나에 무방비로 국민들을 방치하는 무지막지한 정치지도자들도 적지 않았다.

‘천조국’ 미국에서 코로나 조기 방역에 실패한 제일 큰 두 가지 원인은 사람-대통령과 제도-미국식 의료보험체계였다. 치료는 고사하고 검진만 받으려고 해도 엄청난 병원비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검사도 치료도 못받고 죽음의 위기에 내몰렸다. 우리나라도 ‘대한민국을 투기 대상으로 인지하던’ 한 대통령이 의료민영화를 밀어붙이려고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은 이제야 실감한다. 의료민영화가 되었더라면 미국처럼 끔직한 일이 일어났을 거라는 것을. 코로나 바이러스는 빈부를 차별하지 않지만 치료는 빈부를 차별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정말 많은 것이 바뀌었다. 8·15 광복절 이후 다시 코로나가 상승세를 타면서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고 있다. 가급적 실내에서 대인 접촉을 삼가고 조용히 지내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여전히 많이 모이는 곳이 있다. 서울역 광장이다. 기차를 타러 오가는 시민들의 자취가 줄어든 만큼 ‘노숙인’들의 광장 자리잡기는 더 늘었다. 비둘기조차 이들에 의해 영역을 축소당하고 있다. 갈 곳이 없는 이분들에게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공간이 서울역 광장뿐이다. 그래서 더욱 모여드는 것일까. 코로나 이전 서울역의 노숙인분들이 서울역의 여백처럼 보였다면 코로나 이후 이들은 서울역 광장의 당당한 주인임을 확인시켜주는 듯하다.

비가 몹시도 내리던 보름 전쯤 밤의 서울역.

지하도 처마 밑 오륙십 센티미터 남짓한 길쭉한 돌난간에서 서로의 발끝을 머리에 두고 줄지어 자던 이들의 얼굴과 몸으로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방수도 되지 않는 침낭으로 온몸을 뒤집어쓰고 있지만 시간은 비의 편이다. 문득 연약한 인간의 몸을 침투하는 바이러스 장면이 오버랩 된다. 오늘밤 태풍이 분단다. 태풍아, 사람과 물건을 날려버리지 말고, 코로나바이러스와 고단한 삶의 근심을 가져가다오.

([길벗광장]은 성프란시스대학의 구성원들이 바라보는 세상과 노숙인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진솔하게 담아내는 장입니다. 다시서기센터장 신부, 학장, 교수진 혹은 노숙인들에 대해 세상에 무언가 할 이야기가 있는 분들의 글을 계속 실을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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