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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2호

[인물 인터뷰] 어둠을 탓하기보단 한 자루의 촛불을 켜라

by bremendhk 2020. 8. 22.

글 / 김연아

인터뷰어 / 김연아, 강민수

인터뷰이 / 마명철 사회복지사

(성프란시스대학 학무국장)

 

코로나19로 인해 입학식이 늦어지고 수업이 늦어졌지만, 성프란시스대학 16기 선생님들은 무사히 1학기를 마쳤습니다. 무탈하게 수업이 진행될 수 있었던 그 배경에는 마명철 학무국장님의 노고가 있었죠. 한 학기를 해 본 소감이 어떠신지, 직접 여쭤보기 위해 5일 오후 숙대입구 다시서기센터에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인터뷰 중인 마명철 국장님(오른쪽)과 김연아 선생님

 

- 국장님 이번에 성프란시스대학 학무국장을 처음으로 맡으셨잖아요. 느낌이 어떠세요? 현재 드는 생각?

“좋네요. 이전에는 희망지원센터에서 거리 응급구호활동, 응급 보호하는 그런 일들을 주로 했어요. 거리 노숙인 분들을 지원하는 일들이었는데, 단기간에 사람을 상담하고 조치해야 하는 일이었거든요. 그런데 성프란시스대학에서는 이렇게 1년이란 과정 동안 사람을 만날 수 있으니까 한 사람, 한 사람 깊이 알아갈 수 있다는 게 장점인 것 같아요. 짧은 시간에 잘 모르는 상황에서 어떤 걸 판단해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아니고 충분히 계속 만나면서 그런 과정들을 지속한다는 게요.”

 

- 몇 년도부터 센터에 근무하셨나요?

“2008년도요. 10년 넘었습니다.”

 

- 여기 성프란시스대학 학무국장으로 오게 된 계기가 있으세요?

“저희는 업무를 순환 근무하고 어떤 역할이라도 일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서요. 또 인문학이란 업무를 직접 해본 적은 없었지만, 개선점이라든가 좀 변화되지 않는 것들에 대한 갈증도 있었고, 어쨌든 좀 더 진보하고 좀 더 발전해야 하지 않나 싶어서요.”

 

- 그럼 자원하신 거예요?

(도리도리) (웃음)

 

- 학무국장의 역할이 어떤 거라고 보세요?

“교수님들이 하는 일 말고는 다 학무국장 일인 것 같아요. 강의 말고는 다. 사례관리에서부터 모든 과정을 준비하는 거, 입학식에 앞서 신입생 모집에서부터 면접 보기 전까지의 과정을 준비하는 거, 또 면접 보고 합격하면 오리엔테이션이라든가 인문학 시작하기 위한 수업에서부터 모든 과정을 다 준비하는 거요. 또 행정적인 것도 포함해서요. 그리고 자원활동가분들과 잘 소통해서 우리 선생님들하고 융화될 수 있게 하는 그런 것들도 다 제가 하는 일인 거죠.”

 

- 선생님들 사례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세요?

“먼저 선생님들의 개별적인 상황을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해요. 선생님들이 여기 지원할 때 이력서에 써주신 정보랑 저희가 선생님들 상담할 때 활용하는 인트라넷 상 기록들 다 종합해서 저 나름대로 엑셀 시트를 만들었어요. 개인별로 개별화할 수 있게요. 거기에 개개인별로 상담하면서 제가 어떻게 진행하고 어떤 얘기를 했고 이 분이 어떤 상황이라고 한 내용을 계속 업데이트하죠. 그걸 가지고 운영 회의할 때 쓰기도 하고요. 선생님들의 현재 어려움이나 욕구가 뭔지 알아야 인문학에 계속 나오시도록 도울 수 있으니까요. 이력서 지원했을 때 쓰신 내용, 거기에 보면 지원 사유들도 있어요. 왜 이렇게 인문학을 하게 됐고, 본인이 어떤 문제를 갖고 있고, 또 스스로 생각하는 강점이나 약점, 그 이후에 제가 상담한 것들, 진행됐던 내용을 다 넣는 거고요. 16기 선생님들 인원이 많지 않아서 상담하기가 어쨌든 수월한 것 같아요. 선생님들의 주거 상황에서부터 연락처, 비상 시 연락처도 파악된 사람들만 해서 넣고. 기본적인 주소라든가, 누구 통해서 왔고 하는 것도 넣어요. 만약에 이분이 결석하게 되면 지인을 통해서 확인하기도 하니까요. 혹여나 신용불량 문제가 있으신 분들은 문제를 해결하려고 도와드리고 있고, 아니면 호적 문제라든가 사망신고 돼 있는 이런 문제 같은 경우는 되게 풀기 어렵잖아요? 이런 것도 법률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나름대로 1:1로 집중해서 상담하고 있고요. 개별적인 어려움이 있으신 분들은 계속 하나하나 다 이렇게 하고 있어요. 어쨌든 주목적은 선생님들 모두 일할 수 있게 하고 주거 유지하면서 인문학에 참여하시도록 하는 것이죠.”

 

- 선생님들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대하시나요?

“따뜻함? 기본적으로는 사람에 대한 인정? 그게 가장 기본이 돼야 하지 않나 싶네요. 마음가짐은, 내가 낮은, 좀 더 낮은 자세?

 

- 국장님 보시기에, 선생님들의 만족도가 높으신 것 같으세요?

“수업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데, 저에 대한 만족도는 잘 모르겠어요. 처음에 보니까 눈빛이 다들 좋으신데 아마 1학기 끝나실 땐 좀 많이 힘드셨는지 흐려지긴 했는데, (웃음) 그래도 수업에 대한 만족도는 높은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이런 과정에 대한 만족도는 잘 모르겠어요. 제가 인덕이 좀 부족해서 선생님들이 저를 좀 불편해하시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 우리 사무실에서 얘기 좀 나눠요.” 이러면 좀 불편해하시더라고요. 왜 따로 부르냐고, 이렇게. 그런 게 아닌데.”

 

- 뭔가 담임이 학생 부르듯이요? (웃음)

“어, 그런 느낌인 것 같아요. 제가 참 많이 인덕이 부족하구나, 좀 더 내가 따뜻하게 다가가야겠다고 느껴요.”

 

- 국장님 보시기에 수업은 어떠셨어요?

“저도 수업을 많이 못 들어가서요. 제가 느끼기에도 어려운 거면 선생님들도 어려울 수 있고 하니까 같이 들어가서 좀 듣고 그래야 하는데, 아직 그만한 여유가 없네요.”

 

- 인문학 오기 전에 옆에서 보셨을 때, 좀 개선되어야 할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보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었을까요?

“인문학과정이 지금은 하나의 사회복지 프로그램으로서 운영되고 있는데, 예를 들어 어떤 대학의 평생교육원이라든가 이런 전문교육기관에 소속돼서 최소한의 인증을 받으면 우리 선생님들도 뭔가 성취감이 더 크지 않을까요? 저 같은 경우도 평생교육원에서 이런 과정을 통해서 사회복지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있었거든요. 이번에 지원하신 분은 아닌데, 어떤 분이 학위 인정되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노숙인 인문학도 필요하다면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교육과정이 되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 지금 성프란시스대학에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일까요?

“저는 가장 필요한 게, 이런 인문학이라는 걸 통해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효과성을 검증하는 일이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인문학을 통해서, 우리 인문학을 수료하신 분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는 효과성을 보여줄 수만 있다면 저라도 어디든 발 벗고 뛸 수 있어요. 돈 많은 재력가를 찾아가서 도와달라고 한다거나 청와대에 정규 사업으로 하자고 얘기할 수도 있고요. (웃음)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는 게 인문학이잖아요? 근본적으로 모든 문제는 자기로부터 시작되는 건데, 우리 선생님들은 살아오면서 그런 과정들을 잘 겪지 못했어요. 워낙 바쁘게 살고, 주거나 생활의 안정이 안 되다 보니까 충분히 자기를 스스로 돌아볼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 뭐 철학적으로나 이론적으로도 고민해보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저도 바쁘게 먹고살 때 그런 여유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이 인문학이 필요한 게 아닌가 싶어요. 모든 게 다 관계의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을 알고, 또 남을 알고, 그러면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한 방향도 생기지 않을까요? 이런 변화들을 파악하기 위해 이번에 15년 동안 졸업하신 선생님들께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평생교육원에서 사회복지사를 하게 된 계기가 있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엇이었나요?

“크리스토퍼 리더십이라는 평생교육 과정이 있었어요. 10주 정도 매주 한 번씩 나가서 교육 듣고 말하기 배우고 하는 건데, 거기 좌우명 같은 게 있어요. ‘어둠을 탓하기보다는 한 자루의 촛불을 켜라’고요. 교육 마지막에 이제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밝힐 것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해 얘기하는데 사회복지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죠. 촛불 하나가 되게 미약하지만 어두울 때 촛불 하나 켬으로써 밝아지고, 또 다른 사람이 켬으로써 세상을 밝게 할 수 있다는 거에 감동했어요. 20대 때는 먹고 살기 바빠서 그냥 아등바등 살았지만 공부해서 일을 해보자 라는 생각에 29살에 야간대학을 가고 31살에 졸업했죠. 그러고서 여러 군데 지원을 했는데 제일 처음으로 여기 다시서기센터에서 연락이 왔죠. (웃음) 하필 또 제일 어려운 곳에서 왔네요.”

 

- 인문학 형태는 아니더라도 뭔가 동기부여도 되고 생각하게 되는 인문학적인 과정을 통해서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되는 계기가 있으셨던 거네요?

“저는 그게 제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던 것 같아요. 저도 그 당시에 우리 선생님들같이 그냥 먹고살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해야만 했어요. 비전이나 미래에 대한 고민 혹은 정치, 경제, 사회에 대한 지식도 없고 오로지 그냥 각박한 삶이라고 해야 하나? 돌아볼 여유가 없는 거죠. 사회에 대한 불만은 많은데, 구조적인 건 잘 모르고. 사회복지 공부하면서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같은 걸 알게 됐죠. 우리 선생님들도 잘 모르시고 그냥 무조건 보수적인 당을 지지하는 그런 경우가 저는 안타깝죠. 성프란시스대학에서도 이론적인 순수 인문학도 좋지만, 자본론을 쉽게 배우는 등 사회 현실에 밀접한 강의도 있었으면 좋겠어요. 깊이 들어가지 않아도 왜 우리가 노동을 해야 하고, 임금 노동자가 어떻고, 월급 준다고 무조건 일만 하는 게 아니다, 노동자의 권리가 어떻고 이런 부분을 선생님들이 배울 기회가 많지 않다고 생각하거든요.”

 

-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이 노숙에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렇죠. 제가 봤을 땐 노숙을 하는 여러 요인 중 타고난 환경이 제일 큰 것 같아요. 지지기반이 없고, 비빌 언덕이 없다고 해야 하나, 100m 달리기를 위해 다 같이 라인에 섰는데 누구는 운동화도 좋은 거 신고, 옷도 좋은 거 입고, 고글도 쓰고. 근데 이분들은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같이 경쟁을 해야 하는 거예요. 마라톤을 해야 하는데 경쟁이 안 되는 거죠. 물질적으로도 중요한데 정서적으로 지원을 많이 받고 자라신 분들은 다르더라고요. 성격도 좋고. 태어났을 때부터 가장 기본적인, 사람이 보편적으로 누려야 할 환경이 갖추어져 있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거기서 안정이 있다 보면 부모님께 정서적으로라도 많이 지지받고 하는데, 그게 없는 게 가장 크지 않나. 그렇지 않은 상황에서 일단은 성장했는데, 똑같이 사회 나와서 열심히 살라고 했을 때 얼마나 잘 살 수 있을까요. 시작부터가 다른데. 남들은 아파트도 사주고 뭐도 해주고,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사람이 살 수 있는 그런 기반이 갖춰져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 할 수 있는 일들이 뻔한 거고. 대부분 중학교 정도 졸업하고 나서부터 생계 전선 나가서 일하는데, 정상적으로 생활할 수 있을까요? 주거나 이런 것도 안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래서 저는 타고난 환경이 가장 큰 거 같아요. 정신과 질환이 있더라도 지지기반이 있는 분들은 가족들이 계속 붙잡아주고 하면 그래도 잘 되는데, 어려운 거죠. 거리에 계신 분들이 거기다 병까지 있으면, 그게 잘 안 되시더라고요. 지지기반이 가장 중요하죠. 물질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 다시서기센터에 계시니까, 다시서기센터가 그 지지기반이 돼줄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많이 노력하면 되겠죠, 네. 그게 비슷한 게 인문학이 있고, 어쨌든 1년 과정이긴 하지만요. 또 신부님이 하시는 종교 공동체, 예배드리고 하는 그런 것도 있죠. 없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공동체 만들어서 서로 의존하고, 정보도 교환하고 커뮤니티도 형성할 수 있으니까요. 가족은 억지로 만들 수 없고, 선생님들 대부분이 단신이잖아요. 가족도 없고 혼자 사시고 하는데, 같이 그런 걸 만드는 게 좋지 않나? 비슷한 상황에서 서로 지지할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관계를 이어가게 하는 것이죠. 혼자가 아니라 어디 소속되어 있다는 것도 느끼고요.

 

- 성프란시스에서 국장님만의 목표가 있다면요?

“가장 중요한 건 우리 선생님들이고, 이 인문학 과정이 우리 선생님들한테 어떻게 하면 터닝포인트가 될지, 1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만들지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노숙인 사업 중에 이게 정말 효과성이 검증된 사업으로 인정을 받아서 의무적으로 예를 들면, 지역마다 설치해서 할 수 있게 한다거나 평생교육이든 아카데미든 정규과정으로 할 수 있게끔 만드는 거? 그래서 누구든지 인문학을 통해서 물질적으로 풍성하지 않더라도 내면적, 의식적으로 좀 더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겁니다.”

 

- 선생님들께 한마디?

“우리 수료식까지 다 같이 갑시다. 그 이후의 일은 차차 만들어 가면 되니까요. 어둠을 탓하기보다는 한 자루의 촛불을 켤 수 있는 변화의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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