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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31호

[성프란시스대학 글밭] 북한산의 봄

by 성프란시스 2025. 12. 8.

                                                                                     

 

                                                                   북한산의  봄

                                                                                    정 동 주(인문학 20기)

 

미처 슬퍼할 사이도 없이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하지만 내가 사는 변방엔 아직도 눈이 내렸다.

경계도 없이 내리는 눈

 

범람하는 바람 속으로

내 영혼의 긴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홀로 휘청이고 있었다.

 

춘설(春雪)이 흩날리는 동안 마른 풀잎만 나풀거렸고

내게 생각할 틈도 주지 않고 떠나간 여자처럼

먼 산으로 날아간 새는 더 이상 돌아올 것 같지 않았다.

 

마른 기침을 쿨럭거리며 객지에서 봄을 기다리고 있었다.

꽃이 피고 진들 나와 무슨 상관있으랴마는

노새를 타고 저 아득한 시공을 건너오는 이의 목소리

 

봄은 춘몽(春夢)의 강을 건너

집시들이 현을 뜯는 언덕을 지나

한지에 스며드는 먹물처럼 더디고 더딘 몸짓으로

산기슭을 타고 오르는데

 

보았는가. 그대 창가에 핀 목련

세상의 모든 것들이 만나고 스러지는 시점에서

내 몸 안에서도

여린 이파리들은 별일 아닌 듯 사사로이 돋아나고

밤새 시리도록 별들이 뜨더니

각혈하듯 산벚꽃이 핀다.

 

신열이 도져 아픈 봄날

살아 있는 것이 마냥 죄스러워

숨죽여 기도를 한다.

 

뒤늦게 알았지만 그리운 것들은 산에 있었다.

산에 있는 식물성들은 죄다 꿈을 꾼다.

그립기 때문에 꿈을 꾸는 것이리라.

 

21야영장의 가스등 불빛 내가 두고 온 여자도 거기에 산다.

하여 미친 듯 꽃물 드는 봄이 오면

두둥실 꽃구름 타고 북한산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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