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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31호

[성프란시스대학 2학기 심화강좌] "몽양 여운형 선생의 위대한 생애와 교훈"

by 성프란시스 2025. 12. 8.

20252학기 심화강좌 3강은 이두엽 몽양 기념 사업회 부회장께서 몽양 여운형 선생의 위대한 생애와 교훈이라는 제목으로 이끌어 주셨습니다.

몽양기념사업회부회장을 맡고 계시는 이두엽 부회장님은 강의 시작과 함께 짧게 본인 소개를 해 주셨습니다. 이두엽 부회장님은 KBS PD로 다양한 방송제작을 해 오셨습니다. KBS 퇴사후 문화예술을 연구하여 강의도 하시고, 자문도 해오셨습니다. 이런 문화 예술 자문 과정에 곽노현 학장님을 만나 곽노현 학장님의 시교육행정과 맞물려 문화예술 자문역을 담당하시기도 했다 하십니다. 이런 가운데 몽양 여운형 기념 사업에 일에 16년 동안 관여해 오면서 지금은 이 사업회 부회장직을 맡고 계십니다.

 

이두엽 부회장님은 본격적으로 몽양 여운형 생애에 대해 강연을 하시면서, 해방 이후 한국현대사에서 좌익으로 몰렸기에 여운형의 진면모가 알려지지 않음을 안타까와 하셨습니다. 이두엽 회장님은 몽양 여운형의 기본적인 정치 노선을 오늘 날 관점에서 정리하면 진보적 민주주의로 정리할 수 있는 사회민주주의 정치 노선이나 기본 소득당의 정치 노선과 비슷하다고 정리해 주셨습니다. 정치적으로도 좌와 우에 치우치지 않고 좌우를 아우르는 중도 노선을 취하듯이 종교에서도 동학에서 시작하였으나 성장하여 기독교를 수용하는 등 특정 정당, 교리에 얽메이지 않고 포용하는 입장을 견지했다 합니다.

해방후 몽양 여운형은 이승만과 박헌영 세력으로부터 정치적 공세를 받아 12번의 테러 공격을 당하고 마침내 19477월 암살당했다고 합니다. 암살 배후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여러 정황상 우익계열에 의한 암살설이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고 합니다.

이두엽 부회장님은 3.1 운동을 계기로 몽양 여운형은 민족/사회 운동을 공식적으로 시작하였는데. 이 시기는 그 이전 해 파리강화조약에 김규식이 파견되고, 이 과정에서 전국민적 운동 필요성이 자각되는 시기였다고 합니다. 3.1 운동후 일본제국주의는 임시정부 내부 분열책의 일환으로 몽양 여운형을 국빈급으로 일본으로 초대했는데,일본 내각은 몽양을 회유하기위해 갖은 협박을 시도했으나, 몽양은 오히려, ‘조선의 독립은 신의 뜻이라며 조선 독립의 타당성을 주장했고 이에 일본의 양심적인 지식인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게 되고, 그로 인해 몽양을 국빈급으로 초청한 일제 하라 내각이 붕괴하게 되었다고 하십니다. 1920년대에 들어 몽양은 중국으로 건너가 피압박민족 운동의 기치 아래 모스크바 극동피압박민족대회에 참가하여 레닌 등을 만나 볼세비키와 협력 관계를 타진하고, 1924년에는 중국국민당에 가입하고, 1차 국공합작에도 참여해 중국공산당을 지원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소련과 중국등에서 피압박민족운동에 매진하던 몽양 여운형은 1927년 중국 상해에서 체포되어 조선으로 압송되어, 3년간 옥고를 치른 뒤 석방되어 1933년에는 <조선중앙일보> 사장에 취임합니다1936년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마라톤 우승하자, 몽양은 손기정 가슴팎의 일장기를 지운 사진을 조선중앙일보에 실었다고 합니다.

일제 강점기 말엽인 태평양 전쟁시절 몽양은 일본의 패전을 직감하고 군사 훈련과 무장 투쟁을 준비하기도 하고, 19448월에는 민족주의자에서부터 공산주의자들까지 좌우를 망라하는 건국동맹을 결성하였는데 이것이 해방 후 '건국준비위원회로 발전해 나갔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부회장님은 해방후 몽양은 우리 민족이 나아갈 길을 우리 민족 각 정파를 수용할 수 있는 민족주의적 중도주의로 제시했습니다. 그러나 건국준비위원회을 통한 좌우 힙작 운동은 미군정의 불인정으로 실패했고, 1947년에는 미소공위를 계기로 신당 착수 운동을 하다가 그해 719일 혜화동 로터리에서 암살당함으로써 그가 평생 힘써 온 민족 해방운동과 진보적 민족주의에 기반을 둔 좌우 합작 운동이 갑작스럽게 종료되었다고 하시면서 몽양 여운형의 삶을 정리해 주셨습니다.

강의를 마무리하시면서 몽양은 철저한 진보적 민족주주의자로서 좌우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노선을 취하며 민족 독립 운동과 건국 운동에 매진해 왔으며, 몽양의 동아시아 평화주의는 오늘의 동아시아 정치에도 부합한다고 이야기해 주시면서 이런 몽양의 인본주의가 오늘날 우리 시대에서 ‘AI라는 사회적 생산력을 토대로 기본소득이 보장되는 사회로 나아감에 지침을 준다고 이야기해 주시면서 오늘 강의를 매듭해 주셨습니다.

이두엽 부회장님의 귀한 강의를  오래 우리 선생님들과 공감하고자  4-5분여  짜리 동영상으로 올려 드립니다.

 

 

몽양 여운형의 살의 교훈과 이두엽 부회장의 귀한 강의가  우리 선생님들 가슴에 오래 오래 남아 있기를 바랍니다.

이두엽 부회장님 귀한 강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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