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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27호

[인물 인터뷰] 마음의 눈높이를 맞추고 싶어요 정경수 사회복지사님

by 성프란시스 2025. 3. 20.

글: 김혜진

인터뷰어: 김혜진

인터뷰이: 정경수  / 다시서기 종합지원 센터 사회복지사/기획팀 팀장

 

인문학의 입학식이나 졸업식, 좋업 여행 등 모든 행사때 늘 자리에 함께 계시면서 행사 지원을 해 주시는 분이 계십니다. 2012년부터 2014년까지 성프란시스대 인문학과정 학무국장을 하시고 현재는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에서 기획팀 팀장을 맡고 계신 정경수 사회복지사님을 만나서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Q> 안녕하세요. 팀장님. 인문학 행사때마다 늘 동행해주셔서 뵌 적은 많은데 이렇게 이야기 나누는 건 처음이네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팀장님은 어떻게 사회복지사를 직업으로 택하게 되셨고 그 중에서도 노숙인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A> 저는 크리스천이에요. 2011년 겨울에 다시서기 노숙인 종합지원센터에 입사를 한 처음부터 노숙인 복지를 하는 사회복지사가 저의 사명이라고 생각했어요. 대학교때는 노숙인을 사회복지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어요. 학교에서도 장애인, 청소년, 아동, 노인 복지에 대해서는 배웠지만 노숙인 복지에 대해서는 배운적이 없었구요. 그렇게 지내다 어느 순간에 저의 신앙관에서 이땅에서 정말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이 이땅에 오셨고 공생애 기간동안에 그런 사람들과 다니시면서 그런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 나를 대하는 것이다 라고 하셨는데 그런 사람들은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다라고 나오거든요. 그런데 그 나그네가 제 마음에 들어왔는데 이 땅의 나그네는 노숙인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그 때까지의 제 생활에서는 노숙인을 피하며 살아왔어요. 노숙인을 만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스러웠구요. 그래서 그럼 뭘 해야 할까를 생각하다가 우선 봉사활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봉사기관을 찾았는데 그렇게 해서 보게된 구인 광고에서 ‘노숙인과 함께 할 가슴 따뜻한 사회복지사를 구합니다’라는 문구를 봤고 그것이 다시서기 노숙인 종합지원 센터 였어요. 저는 삶의 가치가 물질적인 것에 있지 않았고 이타적인 것에 마음이 가고 순수한 마음으로 그런 것을 했을 때 즐거움이 있고 후회가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사회복지사라는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Q> 크리스천으로서의 신앙이 큰 영향을 주었군요. 그렇게 노숙인 복지를 하시다가 어떤 계기로 인문학 과정의 학무국장을 맡게 되셨어요?

A> 입사해서 처음에는 서울역 광장에 있는 응급대피소에서 일을 했어요. 술을 드시고 오셔도 누구나 주무실 수 있는 곳인데 겨울에 길거리에서 동사하는 분들이 없도록 돕는 시설이였어요. 처음에는 하나님이 저를 어떻게 쓰실지 궁금하고 비젼을 기대 하고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리라는 생각으로 열심히 했어요. 술 드시고 응급대피소에 오신 분들이 대화를 원하시면 새벽 네시. 다섯시 까지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렇게 얘기를나누면서 선생님들을 위로하고 응원하고 다음날 선생님들의 변화된 모습을 기대하면서 사무실에 오면 선생님들은 다시 어제와 똑같이 술취한 모습으로 오시는거에요. 그러다보니 몇개월 지나지않아 순수한 열정으로 시작한 일에 에너지가 다 소진되었어요. 그때 이 일은 내가 개인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라기 보다 정책적이고 거시적으로 해야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렇게 3개월 정도 지났을때 신부님께서 성프란시스 대학 인문학과정의 학무국장으로 일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셨어요. 지금은 보건소 건물을 빌려 쓰고 있지만 그 때는 민간 임대 건물에 한 층을 임대해서 강의실과 사무실을 세팅해 놓고 독립운영을 하고 있을 때여서 아직 신입이었던 저는 역량도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또 여러가지 고민들을 많이 했는데 결국 이것도 노숙인 복지를 위해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신부님을 찾아뵙고 하겠다고 말씀 드렸어요. 그렇게 해서 8,9,10기 3년동안 학무국장을 맡게 되었습니다.

 

Q> 학무국장을 하시면서는 어떠셨어요 ? 선생님들을 만나는 일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일들도 다 처음이셨는데요.

A> 1년차 떄는 그 전 학무국장님이 하신 프로그램을 그대로 따라하다가 2년차 때부터 욕심이 생겨서 여러 프로그램을 새로 시작해 보기도 하고 열심히 했죠. 8.9.10기는 제 식구라는 생각이 들어요. 인문학 1, 2학기를 지나면서 애교심도 생기고 서로 동화되면서 엄청 가까워졌어요. 그래 서 졸업할때에는 거기서 만난 분들이 선생님들이 아니라 제 삼촌 같고 형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1년을 하면서 아, 이렇게 변화되는 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러고 나니 그 다음 기수를 뽑을 때는 우리 식구를 뽑는 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중에 인문학을 떠났을 떄에도 이분들이랑은 인간적인 관계를 계속 유지하고 싶었고 지금도 몇몇 졸업생 분들과는 그 만남을 계속 하고 있어요.

 

Q> 인문학 3년을 하셨는데 인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

A> 인문학 콘텐츠가 주는 힘도 있겠지만 가장 가치있는 것은 공동체의식 인것 같아요. 공동체의 핵심은 같이 밥먹고 같이 시간을 보내는 것이죠. 저희가 받는 경제적 지원이 줄어들면서 인문학 공간을 보건소를 빌려 사용하게 되니까 선생님들이 언제라도 오셔서 쉬거나 함께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어렵고 또 시간을 같이 보내며 만들어지는 끈끈함을 가지는 것이 좀 어려웠졌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그 끈끈함이 다시 보이더라구요. 17기, 18기, 19기를 거치면서 과연 인문학의 힘은 있구나 라고 느꼈어요.

 

Q> 물론 더 나은 공간이 주어진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지만 그 부족한 공간에서도 인문학 자체가 가지는 힘이 있었군요.

A> 성프란시스대학에서 2012년에 발간한 도서 <거리의 인문학>을 보고 자문을 구하러오는 단체들이 많았는데 저는 프로그램이나 강사진에 대한 중요성보다 먼저 이 공동체 구조를 가져야 한다고 말씀드려요.

 

Q> 예전 심화강좌에서 여제훈 신부님께서 인문학에서 중요한 것은 가족을 만드는 일이라고 이야기 하신것이 생각나네요.

A> 인문학에서 가족같은 공동체 의식이 화두가 아닐까 합니다. 이건 노숙인으로 확장했을때도 마찬가지에요. 제 개인적으로 가족은 우리의 삶에서 목적과 방향성을 만들어 주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노숙인이 되는 과정에서 거의 가족의 해체가 있고 가족을 상실하게 되요. 노숙인의 목표를 탈노숙이라는 결과로 잡기 보다는 그분들에게 가족같은 공동체를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봐요.

 

Q>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탈노숙을 하고도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예전 노숙을 하던 곳으로 나오신 분을 만난 적이 있어요. 친구도없고 이웃도 없는 방에 머무는 것보다 같이 노숙하던 친구들이 있는 거리로 나오는 게 낫다고 하셨어요. 우리 선생님들이 오랜 노숙생활을 하게되면서 낯선 곳에서 누군가를 새로 사귀고 관계를 형성해 가는 걸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많이 봣어요. 그럼 인문학에서 서로 돈독함을 가지고 공동체 의식을 높이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A> 그 기수의 선생님들이나 교수님. 자원활동가, 학무국장의 성향도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건 책임감 있는 한사람의 ‘내가 더 희생하겠다’ 라는 마음가짐인것 같아요. 그런 분이 계시면 구심점이 되어서 그 기수가 더 잘 모이게 되구요.

 

Q> 정말 그런것 같아요. 기수마다 그 기수의 특징이 있는데 그런 분이 계시는 기수는 유독 더 잘 모이고 서로를 위하는 마음이 큰 게 느껴져요. 그런 공동체의 힘을 받고 인문학 일년을 마친 선생님들의 삶에는 어떤 변화가 있나요 ?

A> 서로 챙겨주고 이끌어주면서 인문학 일년을 끝까지 함께 한 선생님들에게는 어떤 맺음이 생겨요. 일년동안 출석율은 좀 떨어지더라도 수료라는 맺음을 맺은 분은 인문학을 수료하고나서 그동안 미뤄왔던 일이나 새로운 일들을 해봐야겠다는 새로운 목표의식을 가지시는 분들이 많더라구요. 저는 선생님들께 공부는 못해도 되지만 수료는 꼭 하시라고, 열매는 꼭 맺자고 말씀드려요. 제가 학무국장을 했을 때 인문학을 수료하시고 나서 가방공장에 취업하신 분도 계시고 택시를 시작하셨던 분도 계셨는데 인문학 수료후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시작하는 힘이 보였어요.

 

Q> ‘맺음’이라는 것이 분명 필요하고 또 힘이 되는 걸 느껴요. 선생님들을 뵈면 지금 있는 자리에서 새로운 길로 첫 발걸음 떼는 걸 많이 어려워하시는 모습을 봐요. 그런데 인문학 과정을 통해서 ‘수료’라는 계단에 한 발을 올리고 나머지 한발도 딛고 있었던 땅에서 떼어 한 계단 위로 새로 내 딛는 용기와 경험을 가지게 되는 것 같네요. 간혹 인문학을 졸업하신 선생님들이 인문학 1년은 너무 짧다는 이야기를 많이 하시는데요. 일주일에 세번씩 가던 수업시간들이 없어지고 왠지 공동체도 사라진 느낌이라서 이제는 덩그라니 혼자 남겨진 느낌을 받는다고 하세요. 기획팀에 계신 팀장님으로서 그런 문제들에 대해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신지 궁금해요.

A> 인문학을 수료한 동문들이 오셔서 쉴 수 있고 여러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것이 예산상의 어려움에 부딪히기도 하고 수업을 2년제로 한다고 하면 다양한 분야의 강사진을 갖추고 여러 프로그램을 실행하는 것에도 운영비의 어려움이 따르기는 해요. 여러 아이디어를 생각하는데 저는 수료생이라 할지라도 예를 들어 한 3년이나 5년의 기준을 정해놓고 그 이전 수강하셨던 분들은 수업을 다시 받을 수 있게 해드리는 방법도 생각해요. 예전에는 새로운 분들이 이 인문학 수강에 대한 기회를 얻으셔야 하는데 기존 참여자가 그 자리를 뺏으면 안된다는 관점이였는데 만약에 새로운 지원자가 줄어든다면 재수강의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Q> 실제 다시 듣고 싶다는 선생님들도 많이 계신데 재수강의 기회가 주어지면 좋아하실것 같네요. 학무국장을 하시면서 선생님들의 많은 고민도 들으시고 도움 요청도 많이 받으셨을텐데요. 그런 일들을 어떻게 해결하고 어떤 방법으로 대처하셨어요 ?

A> 선생님들께서 주거, 일자리, 경제적인 문제. 사람간의 관계 등 많은 고민들을 이야기 하시죠. 처음에는 제가 다 해결해드려야 한다는 생각에 힘들었던 적도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보니 선생님들께서 스스로 그것들을 해결해나가는 힘이 있다는 걸 깨달은 적이 많아요. 결국 제가 할 일은 고민을 같이 들어주는 것이였어요. ‘선생님. 힘드셨겠어요.’ ‘저도 한번 알아볼께요’ 라고 말씀드리고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같이 해결 방법을 찾아 나가는 것이 중요 하더라구요. 결국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 필요한게 아니라 해결책을 같이 찾아보는 사람이 필요한 거에요. 제 좌우명이 마음의 눈높이를 맞추는 사람이 되는 것인데. 선생님들이 고민하시거나 무기력할 때 그 마음을 같이 느끼면서 이해하려고 해요.

 

Q> 선생님이 아까 말씀하신 공동체 의식과도 상통하는 부분이네요. 마음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고자 같이 고민하는 것이 곧 내가 너의 곁에 있고 우리가 함께 한다라는 걸 의미하니까요.

A> 다시서기의 미션이 ‘ 우리는 홈리스의 인간다운 삶을 위해서 함께 한다’에요 그리고 그 핵심 가치는 존중이에요. 가끔 센터에 술드시고 오셔서 힘들게 하시는 분들 중에 다시는 오지 않는 분들이 계세요. 왜냐하면 본인이 민망해서 못 오시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도 그 때 우리가 막 대하거나 하면 그분들 마음에 그게 다 남아요. 잘 조치해 드리면 나중에 술 깨고 오셔서 고맙다고 하시기도 하구요. 저희가 어떻게 응대했냐에 따라 그분들의 다음 행동이 달라지거든요. 존중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존중의 대상 범위라는 게 따로 있나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어야죠.

 

Q> 그렇죠.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하는 그 따뜻함의 불씨 하나가 그분들의 삶을 당장 변화시킨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불씨의 그 따뜻함은 마음에 기억될 것 같아요. 사회에서 소외되고 고립된 분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중을 잊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20주년을 넘어서 앞으로 성프란시스대 인문학과정이 좋은 공동체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함께 협력해 나가길 바랍니다. 오늘 좋은 이야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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