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사 이야기 - 토론 수업 1
김동훈/성프란시스대학 예술사 교수
성프란시스대학에서 필자가 18년 동안 진행해 온 예술사 수업은 입문 격의 첫 몇 주 수업을 빼놓고는 모두 토론식으로 진행된다. 서양 미술사를 중심으로 예술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들을 선생님들과 나누는 입문 수업 때도 가능하면 토론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려 한다. 왜 토론식으로 수업을 진행하는지 사람들이 물어올 때면 나는 언제나 같은 대답을 내놓는다. 그게 인생을 살면서 품게 되는 수많은 물음에 대해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서 나름대로 해답을 찾아가는 데 가장 적절한 방법이기 때문이라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생각의 한계를 넘어 다른 이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과 함께 대화하면서 어떨 땐 그들에게 설득되어 자기 생각을 바꿔보기도 하고 어떨 땐 다른 사람을 설득하여 생각을 바꾸게 하기도 하는 과정이 이전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기쁨과 감동을 주기 때문이기도 하다.
필자가 토론 수업을 시작하게 된 건 성프란시스대학에서가 아니다. 이전에 덕성여자대학교 철학과에서 처음으로 토론 수업을 시작했다. 그 경험을 토대로 우리 선생님들을 만나게 되었을 때는 무조건 토론 수업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덕성여대에서도 처음부터 토론 수업을 했던 건 아니었다. 독일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처음 강의를 시작했던 곳 중 하나인 그곳에서 나는 풋내기 강사로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숱한 실패와 좌절의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유학하면서 경험했던 매우 중요한 사실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고 그러면서 토론식으로 수업을 진행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내가 유학했던 브레멘 대학은 68혁명 이후 새로운 대학교육을 목표로 설립된 실험대학이었다. 이런 설립 취지에 맞게 이 대학에서는 이전 독일대학들에서는 행해진 적이 거의 없었던 파격적인 실험을 시도했다. 그중 하나가 강의나 강연 중심의 수업에서 벗어나 토론 위주의 세미나 수업을 주로 개설하는 방식이었다. 강의나 강연 수업 때도 언제나 수강생들의 질문이나 문제 제기, 자신의 견해 발표가 허용되었다. 유학 가기 전 국내에서 10년 넘게 여러 대학의 학부나 대학원의 많은 수업을 들었지만 한 번도 제대로 된 토론 수업이라는 걸 경험해 본 적이 없던 내게는 매우 신선하기도 했지만, 너무도 어렵고 힘든 수업이기도 했다. 일단 외국인이고 독일어가 서툴렀기에 교수님이나 다른 학생들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기도 어려웠고 토론 주제에 관한 내 생각을 발표한다는 건 아예 꿈도 꿀 수 없었다. 이렇게 2, 3년 동안 나는 토론 수업의 침묵하는 구경꾼 역할에 충실했었다.
이런 내 태도에 결정적 변화가 생긴 일화 하나를 소개해 보기로 하겠다. 처음 유학 갈 때만 해도 나는 독일에서는 어디서나, 심지어 길거리에서도 사람들이 철학에 관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거라는 식으로 철학의 나라 독일에 대한 근거 없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물론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아무도 길거리에서 철학에 관해 말하지 않았다. 적어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또 하나 내가 가졌던 환상은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할 정도라면 독일 학생들은 무언가 철학에 관한 높은 식견과 깊은 통찰을 지니고 있으리라는 거였다. 어학을 마치고 처음 철학과 수업을 들어갔을 때 나는 내 이런 기대가 실제로 충족되고 있다고 느꼈다. 잘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제 막 대학에 입학했거나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아주 젊어 보이는 학생들이 교수와 아무런 스스럼 없이 대화하며 자기 생각을 편하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물론 수강생 전부는 아니었지만, 상당수의 학생이 그랬다. 그래서 역시 철학의 나라 대학생들은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런 첫인상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실망으로 바뀌었다. 독일에 살면서 독일말이 점점 귀에 익숙해지고 수업 시간에 이야기되는 내용이 더 많이 이해될수록 수업 시간에 독일 학생들이 하는 말이 대부분 치기 어린 말이고 그 안에서 제대로 된 내용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을 느끼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을 인내심을 가지고 경청하면서 진심으로 반응해 주려는 교수님의 노력에 비추어 보면 그 학생들의 태도는 내가 보기에는 무례에 가까웠고 그래선지 어떨 때는 수업 시간에 그들에게 슬며시 화가 나기도 했다.
그런 내 불만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에 관한 수업 시간에 한 학생이 유독 교수의 한마디 한마디에 계속 토를 달았고 심지어 교수의 설명이 틀렸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런데도 교수는 학생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그가 말하는 바를 나름대로 이해해서 다른 학생들도 함께 토론에 참여할 수 있게 해주려 노력했지만, 그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어느 수업 시간엔가 그 교수는 다른 학생들에게 자기 생각을 마음껏 설명해보라고 그에게 시간을 할애해 주었다. 그러자 그 학생은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 앞으로 다가가 불교식 합장 인사를 건네고는 다시 자리에 가서 앉았다. 아마도 일본식 선불교에 심취해 있던 그는 이런 식으로 자기 생각을 충분히 전달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동아시아에서 온 나조차도 그의 이런 태도가 정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이 사건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그가 사라졌다. 몇 년 동안 나는 그의 모습을 어떤 수업에서도 볼 수 없었다. 가끔 그의 소식이 궁금하기도 해서 함께 수업을 듣는 독일 학생들에게 물어보기도 했지만 아무도 그가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그가 다시 수업에 나타났다. 놀라운 건 그가 이제 수업 시간에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교수나 다른 학생들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몇 주가 지나고 수업이 끝난 후 학교 카페테리아에서 우연히 그와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동안 무엇을 했느냐는 내 물음에 그는 자신의 부족함을 뼈저리게 느껴 몇 년 동안 여러 철학 분야의 책을 읽으며 혼자 생각할 시간을 가졌노라고 말했다. 그는 이전의 모습이 전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겸손해져 있었다. 그리고 나를 비롯한 다른 학생들의 말에 마음과 귀를 열어 진지하게 반응해 주었다. 이를 통해 나는 그가 진정으로 철학을 사랑하는 훌륭한 철학도가 되어 있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유학 전 우리나라의 한 대학 수업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다. 그 수업을 담당했던 교수는 미국의 명문대학 출신의 유명한 학자였고 언제나 수업 시간 시작 전에 강의실에 와 있다가 정각에 수업을 시작해서 열정적으로 강의를 했다. 많은 학생이 그 교수를 따랐고 그의 수업이 진행되던 강의실은 어려운 내용의 철학 수업임에도 언제나 만원이었다. 어느 날엔가 그 교수는 자신이 준비해 온 수업 내용을 모두 전달한 뒤 수업이 끝나기까지 시간이 약간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하고는 학생들에게 질문해 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학생이 질문했는데, 당시에는 비전공자였던 필자가 보기에도 그 교수가 수업 시간에 강의한 내용과는 동떨어져 보이는 질문이었다. 그러자 그 교수는 수업 내용과는 상관없는, 쓸데없는 질문하지 말라며 그 학생에게 핀잔을 주었다.
단기간의 수업 효율성을 위해서는 그 교수의 핀잔이 옳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두 교수의 반응 중에서 전자가 훨씬 더 교육적으로 옳다고 느꼈다. 지금까지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도 고국에 돌아가서 철학을 강의하게 된다면 그 교수와 같은 선생이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박사 학위를 받은 뒤 한국에 돌아와서 여러 대학에서 이른바 보따리 장사를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이런 결심을 까맣게 잊고 익숙한 방식으로 강의식 수업을 진행했다. 덕성여대 철학과에서 전공 수업을 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덕성여대 철학과에서 강의하게 되었을 때 나는 막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풋내기 강사였다. 풋내기들이 언제나 그렇듯 열정은 있지만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막막해하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몇 학기는 당연히 시행착오의 기간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그렇다. 처음 맡았던 과목은 <문화철학>이라는 수업이었다. 나는 독일 철학자 허버트 마르쿠제의 『에로스와 문명』이라는 책을 교재로 정하고 매주 한 장(章)씩 읽어나갔다. 학생들에게는 미리 읽어올 분량을 제시해주고 나는 그 내용을 요약, 정리해가서 학생들에게 설명하는 방식이었다. 나로서는 읽어보고 싶었던 책이었고 강의 준비를 하면서 마르쿠제의 사상을 공부할 수 있어서 나름으로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전혀 내가 예상했던 것과 달랐다. 새로 강의를 맡게 된 교수에게 호응해주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몰려오는 졸음을 막지 못해 꾸벅꾸벅 조는 학생이 태반이었다. 나에게는 매우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일까? 이리저리 생각해 본 결과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내가 학생들과의 소통보다는 내 위주로 수업 내용을 정하고 내 위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게다가 많은 내용을 전해주고 싶은 마음만 앞서 학생들의 수준을 고려하기보다는 가능하면 많이 가르치려 했던 것이 학생들의 부담을 증가시키고 있었다. 당시 받았던 학생들의 기말 보고서에서도 그런 느낌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 배우는 내용인데다 철학 서적이 워낙 이해하기 어려운데도, 자신이 부족해서 수업을 따라가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학생들이 많았다.
그다음 맡게 되었던 수업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라는 과목이었다. 철학을 오래 전공한 사람들도 이해하기 매우 어려운 서양 철학사 최고의 걸작 중 하나인 이 책의 내용을 다 설명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했기에 나는 마음을 겸손하게 다져 먹었다. ‘그래, 가장 기본적인 개념과 서론 부분만 가르치고 다른 부분은 나중에 더 깊이 있게 공부를 하게 될 때를 대비해서 남겨두자.’ 그러나 결과는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금도 가끔 기억이 나면 미소를 머금게 되는 일이 하나 있다. 칸트가 정의한 감성 혹은 감각 능력(Sinnlichkeit)이라는 개념에 대해 한 학기 내내 대여섯 번은 상세히 설명했던 것 같다. 학기 말이 되어서 이제는 당연히 모두 알고 있겠거니 생각하고 수업 시간에 학생들에게 그 의미를 물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의 반응은 내 예상을 완전히 빗나갔다. 거의 모든 학생이 동시에 머리를 숙이고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다시 한번 머릿속에 ‘실패’라는 단어를 떠올려야 했다.
어떻게 하면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수업에 참여하고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우게 할 수 있을까? 이것이 풋내기 강사였던 나를 끊임없이 괴롭혔던 질문이었다. 그에 대한 나름의 답을 얻은 것은 그러고도 두 학기가 지나고 나서였다. 다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과목을 맡게 되었다. 어떻게 학생들을 만날까 고민하던 중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 학생들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게 되면 거기서부터 시작할 수 있을 거다. 그런데 학생들의 생각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학생들이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바를 수업 시간에 자유롭게 말할 수 있게 해주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자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많은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앞에서 소개한 독일에서의 토론 수업이 생각났다.
그래서 첫 시간에 이 수업은 토론식으로 진행할 것이고 학생들이 생각하는 것들을 자유롭게 이야기하면서 그 안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깨달음이 있기를 바란다고 학생들에게 말해주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그 이전에 이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의 악몽과 같았던 경험을 전해 들었는지 수강 학생 수는 단 네 명이었다. 그런데 이 네 명의 학생들이 수업 시간이 끝난 줄도 모르고 서로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너무나 즐거워하지 않는가! ‘순수가 뭐죠?’ 내가 학생들에게 처음 물었던 질문이다. 이 질문 하나가 그 후 여러 주 동안 학생들이 열띠게 토론하면서 끊임없이 자기 생각을 표현하게 만들 줄은 나 자신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 물론 토론을 정리하면서 마지막에 칸트가 순수라는 개념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설명해주고 앞으로 더 생각할 거리를 제시하기는 했지만, 진짜 수업의 성과는 그러한 지식의 전달에 있지 않다는 것을 나도 학생들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깨닫게 된 것은 좋은 수업이란 학생들의 눈높이에서 학생들이 느끼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학생들 스스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끔 해주는 수업, 그 결과로 학생들 스스로가 자신의 견해를 정립할 수 있도록 해주는 수업이란 사실이었다. 적어도 철학 수업은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다음부터는 어떤 주제들을 제시하면 학생들이 많은 생각을 하면서 자기 생각을 피력하고 다른 학생들과 생각을 나누게 할 수 있을까에 관심을 집중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내가 수업을 준비하는 방식은 전달할 지식의 내용을 내 머릿속에 집어넣는 방식이 아니다. 수업을 준비할 때 나는 ‘학생들은 이 주제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을까? 어떤 문제의식으로부터 출발하여 토론 주제를 정하면 학생들이 더 흥미로워할까?’를 많이 생각한다. 물론 그와 동시에 ‘그러면 나는?’이라는 생각을 함께한다. 이런 생각이 충분히 진전되었다고 생각되면 그러한 주제들에 대한 이해를 돕고 흥미를 유발하는 데 필요한 자료들을 찾는다. 물론 이렇게 한다고 해서 언제나 학생들이 내가 예상하고 원했던 만큼의 관심을 보이고 열띤 토론을 벌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열심히 학생들과 소통하기 위해 노력한 만큼 학생들이 토론에 참여하는 태도에 변화가 있었던 경우가 그렇지 않았던 경우보다 훨씬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토론에 참여하면서 했던 여러 이야기의 내용과 거기서 느낄 수 있었던 학생들의 생각과 태도다. 그러려면 학생들의 이름, 학생들이 토론 시간에 했던 이야기들을 가능하면 잘 기억하고 그에 걸맞게 수업을 준비하는 것이 필요했다. 출석을 부르면서 학생의 얼굴과 이름을 기억하려고 애썼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학기 초에는 학생들의 이름을 다 기억하고 각자의 특성에 맞게 토론 주제를 끌어내기가 쉽지 않았지만, 학기가 진행될수록 조금씩 더 나아졌고 그만큼 학생들의 참여도도 달라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험을 토대로 나는 성프란시스대학에서 예술사를 강의하게 되었을 때도 당연히 토론 수업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지금까지 18년 동안 그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왜 성프란시스대학 예술사 과목을 토론 수업으로 진행하게 되었는지 설명해보았다. 다음 글에서는 예술사 수업을 진행하면서 내가 정했던 원칙과 그 이유, 그리고 실제로 진행된 토론 수업의 성과와 과제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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