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 나는 성프란시스대학 학장으로 곽노현을 처음 만났다. 성프란시스대학은 대한성공회 유지재단으로 2005년도에 설립된 서울역 거리노숙인을 위한 대학이다. 일 년 과정으로 해마다 20여명이 입학 해, 문학, 역사, 철학, 예술사, 글쓰기 다섯 강좌를 배운다. 우리나라 최초 그리고 유일한 거리노숙인을 위한 인문학과정으로, 올해로 20년이 된 이 학교에서 나는 17년 째 글쓰기를 지도하고 있다.
학교는 설립 시부터 기업후원으로 10여 년간 어려움 없이 잘 운영됐다. 그러다 후원기업이 외국회사에 합병되면서 후원이 끊기고 말았다. 어렵게 마련한 학교 강의실은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서울시 소유 서울역 무료진료소 건물 한켠으로 옮겨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다. 학교는 운영에 관한 여러 어려움을 타개해줄 외부 전문 행정인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렇게 해서 모시게 된 분이 곽노현 학장이다. 급료는 말할 것도 없고 활동비 한 푼 줄 수 없는, 오히려 제 편에서 시간과 열정과 경륜을 곱으로 쏟아내야 하는 ‘바보’학장 직을, 그는 삼고초려할 것도 없이 수락했다.
5년 전 학장으로 부임하자마자 그의 첫 일성이 “후원인 모집에 총력을 기울입시다.”였다. 그 결과 후원수가 해마다 배가 되어 2024년 8월 현재 정확하게 다섯 배가 되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성프란시스대학 개교 15주년 기념으로 졸업한 선생님들 글을 묶어 만든 문집책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가 2021년 70주년 서울시 문화상 문학부문 수상자로 선정된 것이다. 학교 구성원들이 감격에 겨워할 때, 학장님은 감동에 머물러 있지 않았다. 이를 학교 운영에 연계해 큰 그림을 신속하고 정확하게 그려내 놓았다. 학장님이 구상한 대역사(大役事)는 문집책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에서 57편을 선정해, 민예총 소속 화가 5명이 재능기부로 삽화를 그려, 2022년 9월 26-30일, 국회의원회관 2층 로비에서 '거리에서 움튼 글, 그림으로 피어나다'라는 제목으로 시화전을 개최하는 것이다. 학교구성원이 총 동원 돼 성프란시스대학 20년 역사의 한 장을 쓴 국회 시화전에서, 서울역 거리선생님들은 다시 일어섰다.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을 짚고서.
성프란시스대학 설립자인 임영신 성공회 신부는 오랜 노숙인 사목을 통해 당장의 의식주를 돕는 것으로는 노숙인이 거리생활을 청산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다고 했다. 오랜 경험과 성찰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자존에 대한 물음과 성찰'만이 바닥에 널브러진 자신을 스스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는 것이었고, 그 물음과 성찰은 인문학이었다. 바로 서울역에 성프란시스대학이 설립된 이유이다.
지난 17년 동안 나는 글쓰기라는 거울을 들이대며 거리선생님들에게 자존(自存)에 대한 물음과 직면하도록 했다. 그 힘든 성찰 과정을 통과해야만 자존(自尊)이 회복된다는 설립자의 믿음에 공감한 터였다. 그런데 지난 5년을 곁에서 지켜본 학장님은 접근 방법이 나와 달랐다. 그는 묻지도 성찰하기도 전에 ‘환대’로 거리선생님들에게 다가갔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호명하고, 다가가 이야기를 나누며, 밤늦도록 소주잔을 기울이다, 함께 노래를 불렀다. 코로나 때문에 무산되기는 했으나, 당신이 잘 아는 품격 있는 와인 바에서 그해 수료생 졸업축하자리를 자신의 사비로 마련해 주려하기까지 했다.
Homeless의 본질은 집이 없는 Houseless가 아니라, 가족, 친척, 친구, 사회, 직장, 이웃 등 모든 관계로부터의 단절이다. 바닥까지 떨어진 거리선생님의 자존(自尊)은 이런 관계단절로 인한 존재이유의 상실이다. 어쩌면 이들을 거리로 내몬 것은 관계단절에 의한 어디서도 받지 못하는 ‘환대’일지도 모른다. 학장님의 환대가 서울시교육감시절 국가가 박탈해간 학생인권을 되찾아주려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한 것처럼, 자본주의 사회구조 자체가 이들로부터 원천적으로 박탈해간 인권을 되찾아주려는 신념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나는 모른다. 삼성, 국정원, 검찰을 상대로 머리 드밀고 싸웠던 ‘최 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려는 그의 소신의 일환으로 나온 것인지도 나는 정말 모른다. 다만 나는 지난 5년 동안 서울역 노숙인 학생들에게 환한 얼굴로, 20대 청년 같은 생기로, 오랜 벗처럼 다가간 그의 환대를, 학장님 우리들의 학장님 곽노현을 보았을 뿐이다.
2024년 9월 2일 성프란시스대학 교수 박경장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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