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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21호

[역전 칼럼] 이런 졸업식을 보셨나요?

by 성프란시스 2024. 3. 20.

박경장 / 성프란시스대학 글쓰기 교수

 

 

우리 학교는 격월로 웹진을 발행해 후원자들에게 학교 소식을 꾸준히 알리고 있다. 하지만 졸업식만 되면 지면으로 알리는 것을 넘어, 현장에서 나누었으면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그만큼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졸업식엔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고 싶은 무엇이 있다. 그리하여 이번 칼럼에서는 현장에 초대된 듯한 느낌이 들도록 졸업식 풍경을 묘사해보려 한다. 이를 통해 후원자들이 우리 학교를 좀 더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기를.

지난 2024221, 성공회대학교 성 미가엘 성당에서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 19기 졸업식이 열렸다. 작년 327일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 치러진 입학식에서 선서를 한 17명 중 13명이 수료를 했다. 수료생 13명은 일 년 6과목 90180시간 중 120시간(2/3) 이상 출석한 분들이다.

입학식과 졸업식 장소에서 드러나듯 성프란시스대학은 대한성공회가 그 모태다. 2005년 성프란시스대학은 대한성공회 유지재단인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내의 한 프로그램으로 시작됐다. 설립자이자 초대 학장은 다시서기 종합지원센터 장이자 성공회 신부인 임영인 신부다. 명예총장은 3-4대 성공회대학교 총장을 역임하고 대한성공회 주교인 김성수 주교다. 이런 연유로 입학식은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에서 졸업식은 성공회대학교 성 미가엘 성당에서 각각 치른다. 학교명 성프란시스대학13세기 이탈리아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수도회를 설립한 프란치스코 성인의 영문 이름을 본떠 설립자인 임영인 신부가 지었다. 개심한 이후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가난한 이들의 친구로 산 프란체스코 성인의 구도자적 삶을 학교의 설립 취지로 삼았다고 한다.

2024221(수요일) 오전 9,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성공회대학교 성 미가엘 성당은 학무국장과 센터 실무들 그리고 자원활동가들의 졸업식 준비로 분주하다. 학사 가운과 학사모를 쓴 졸업생들은 학무국장의 지시하에 몇 번의 리허설을 반복하고 있다. 아래층에선 두드림 단원들의 축하공연 연습 소리가 간간이 들려온다. 축하객으로 동문들이 하나둘씩 들어오는데, 평일 오전이라 참석 수가 적다. 서울시 관계 직원도 몇 분 보인다.

 

11, 축하객과 내·외빈이 참석한 가운데 대표 교수인 안성찬 교수의 사회로 졸업식이 시작됐다. 내빈석에도 성프란시스대학 네 분 교수가 자리하고 있으니, 이 기회에 자랑을 좀 해도 괜찮을 것 같다. 2년 전 서울대 정년퇴임을 한 안 교수는 다섯 교수 중 맏형이다. 독문학을 바탕으로 독일 지성사를 전공한데다, 훤칠한 키에 당당한 체형 부리부리한 눈과 큰 코, 카키색 버버리 차림의 모습을 60세 이상 분들이 보았다면 ! 누구더라, 그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에서 로버트 조던 역으로 열연했던 게리 쿠퍼네!” 하며 첫눈에 감탄할 외모다. 이성과 지성으로 제련된 중후한 톤의 말을 받아 적으면 그대로 글이 되는 안 교수는 16년 째 문학 · 철학 교수로 성프란시스와 함께 하고 있다.

한국사 담당 박한용 교수는 한국 독립운동사 전공자로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실장으로 재직 시 친일 인명사전편찬을 주관했다. 전공과 경력에서 느껴지듯, 차돌멩이같이 단단한 사람이다. 하지만 이런 지사적 면모 뒤에 그는 타고난 풍류객이다. 한시, 한국시, 영시를 줄줄 암송하고, 장소와 때를 불문하고 전통 트로트 두 세곡쯤은 그냥 불어 재낀다. 몇 잔술에 얼근해지면 여인네 한 서린 <진주난봉가> 그 긴 사설이 분틀처럼 끊김 없이 줄줄 나오고, <창부타령> 낭창한 가락을 엿가락처럼 늘였다 꼬았다 마음 내키는 대로 불어 재끼는 멋쟁이다. 성프란시스 인문학 1기부터 참여해 19년째 함께 하고 있는 창립 멤버로, 80년대엔 야학교사로 20대 푸른 시절을 보낸 행동하는 역사학자다.

예술사 담당 김동훈 교수는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말이 떠오를 만큼, 공부가 취미요, 공부가 특기이며, 공부가 일상의 행복인 사람이다. 서울대에서 법학으로 학사를, 총신대학교에서 신학석사를, 다시 서울대에서 미학학사를, 독일에서 하이데거로 철학박사를 취득한 공부 박사다. 영어, 독일어, 불어, 라틴어, 이태리어, 스페인어 등 유럽어에 능통한 언어 천재다. 지독한 공부 벌레인 건 맞지만, 그는 20대부터 우리 사회 소외된 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청춘을 불사른 순열 행동주의자다. 독일 유학 시절엔 분데스리가 축구 칼럼을 쓸 정도로 전공 불문(不問) 미학자 김 교수는 17년째 성프란시스와 함께 하고 있다.

김응교 문학 담당 교수는 시인이자 비평가이며 숙명여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성프란시스와 함께 한 지는 3년밖에 안 됐으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노숙인을 위한 민들레문학교실4년 동안 참여했으며, 삼십 대 일본 유학 시절과 와세다대학 객원교수 시절엔 오사카와 도쿄 등지의 공원 홈리스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했다. 그 외에도 우리 사회 소수자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온 터라, 성프란시스와의 만남은 예견된 운명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시 냄비처럼 김 교수는 수명 다할 때까지 군소리 없이 모든 것을 담아 끓여내는냄비 같은 사람이다.

 

이분들과 나는 인생에서 가장 여물었던 50대를 온전히 함께 보냈다. 매월 1회 인문학회의를 마치면 우린 함께 저녁을 먹고 간단하게 호프 한잔을 나눈다. 두어 시간 가벼운 담소 자리인데도, 대화가 시작된 지 이삼십 분 지나면 어김없이 주제는 문··철 중 하나로 모아진다. 한 잔이 두 잔 되고 두 잔이 석 잔 될 즈음, 대화는 어느새 동서 문명사로 확대돼 있다. 머리와 가슴이 벌게질 무렵 미안하지만, 막차 시간 때문에 저는 일어서야 할 것 같습니다라고 나는 찬물을 끼얹는다. “그러면 우리도 일어서지요,” 여느 때처럼 백과사전 어느 장에 갈피를 접고 우린 헤어진다. 그런데 그날은 그것으로 식을 대화 향연이 아니었던가 보다. 안성찬 교수와 박한용 교수는 어느 심야 카페를 찾아 다시 자리를 잡았고, 귀가 중이던 김동훈 교수에게 전화해 당장 택시 타고 돌아오도록 명을 내렸다. 그렇게 소크라테스, 크리톤, 파이돈은 재회를 하고 밤을 새워 동서 문명사 대화 향연을 이어갔다. 우리는 그 사건을 위화도 회군이라 명명했다. 이들이 내가 존경하는 친구요 동지다. “쫓아낼 때까지 이 학교를 떠나지 않을 겁니다김동훈 교수가 말했고, “저도요성프란시스 17년 차인 내가 맞장구쳤다. ‘어떻게 사는 길이 올바른 길인가?’ 생각의 끝은 늘 길에 닿아 있는 이들은 나의 도반(道伴)’이다.

·외빈 소개에 이어 성프란시스 명예총장 김성수 주교님이 축사를 위해 단상에 오르신다. 십 수 년 동안 한 번도 거르지 않은 졸업식 축사. 시간에 맞추려고 강화 집에서 새벽에 나섰단다. 94세 노구의 몸을 끌고 단상에 오르는 몇 걸음의 길이 그가 걸어온 인생길 - My Way -의 축소판처럼 보였다. 작년엔 지팡이 짚고 오르셨는데, 올핸 더디지만, 누구의 도움 없이 자신의 두 발로 오르신다. 총장님 축사엔 언제나 빠지지 않는 말씀이 있다. “여러분, 일 년 동안 훌륭한 교수님들로부터 잘 배웠지요. 이젠 배운 걸 남 주세요.” 주교님은 성공회대학교 총장 외에도, 1974년 국내 첫 발달장애인 특수학교인 성베드로학교 초대 교장을 지내셨다. 이 학교를 졸업해도 살길이 막막한 발달장애인들의 현실을 보고선 1999년 강화군 길상면 선조에게 물려받은 땅을 기부해 발달장애인 직업재활 겸 요양 공동체 우리마을을 설립했다. 그러고선 지금까지 우리마을 촌장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가난한 이들 곁에 자신의 한 생을 내어준 그는 살아있는 프란체스코다.

 

총장님 축사에 이어 학장님이 씩씩하게 단상에 오른다. 4년 전까지는 다시서기 센터장이 성프란시스대학 학장을 겸임했다. 하지만 10여 년 이어오던 기업후원이 끊기면서 닥친 재정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외연 확장과 더불어, 운영 면에서도 전문 행정인의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그리하여 모시게 된 분이 곽노현 학장이다. 곽 학장은 두 번째 서울시 민선 교육감으로 선출돼 학생인권조례를 제정하고 교내 체벌 금지에 앞장선 진보 교육감이다. 지금도 재야의 여러 시민 교육단체들의 장으로, 일원으로 교육 제반 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고 개혁방안을 모색하며 행동으로 실천하는 진보 교육자다. 칠십 나이가 무색하게 청년 정신으로 무장된 그는 거리 노숙인 인문학 과정의 존재 의미와 발전 방향에 대해 쉼 없이 생각하고 기획하며 열정적으로 추진한다. 밝고 활달한 기운으로 충만한 그의 축사는 처진 우리 어깨를 단박에 북돋운다. 곽노현 학장은 성프란시스 Cheerleader.

축사에 이어 오늘의 하이라이트 수료증 증정식이다. 졸업생은 20대부터 60십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하나 모두 태어나 처음 입어본 학사 가운에 낯설어 설레긴 한가지다. 안 교수님이 대독한 수료증을 김성수 총장님이 수여하고, 곽노현 학장님은 꽃다발을 안겨주며, 여재훈 신부님은 선물을 준다. 그러곤 일렬로 도열한 네 분 교수님과 포옹을 한다. 이 순간들을 놓칠세라 자원활동가들은 사방에서 셔터를 누른다. 박수소리 잦아들 즈음, 19기 대표 한상규 회장이 단상에 올라 졸업생 답사를 한다. “일 년이 이렇게 후딱 갈 줄 알았다면. . . .”

졸업식 전 마지막 운영위원회 때, “박 교수, 공로상, 개근상, 이런 뻔한 상장명 말고 이참에 참신한 걸로 한번 지어 봐요. 문구도 함께학장님 명이 떨어졌다. 명을 받들어 나는 출석률이 우수하고 학업과 교내외 활동에 참여도가 높은 여덟 분을 선정해, 각각 기여한 성격에 맞는 상장명과 문구를 지었다. 그리하여 간단한 상품과 함께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상장수여식이 열렸다.

 

꼬박꼬박 상

김 인 섭

위 사람은 2023년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과정 일 년 동안 시행된 6과목 90180시간을 한 번도 빠짐없이 꼬박꼬박 참석하였습니다. 그 성실함을 기리어 이 상을 수여합니다.

2024221일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곽노현

 

어머니 밥상

김 성 진

위 사람은 2023년 인문학 19기 총무로서 맡은 소임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같은 손길로 저녁 한 끼를 지어 우리 모두를 밥상으로 모았습니다. 덕분에 우리는 한 식구처럼 느껴졌고, 몸과 마음이 더욱 건강해졌기에 이 상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합니다.

2024221일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곽노현

 

상상(想賞)

원 재 희

위 사람은 좁은 방 · 좁은 교실 · 열악한 일상 환경 속에서도 우주적 상상으로 자유와 해방을 향한 꿈의 나래를 펼쳐 보여, 움츠렸던 우리의 어깨가 펴지도록 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이 상에 담아 전합니다.

2024221일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곽노현

 

문재(文才) 있는 상

김 성 겸

위 사람은 글의 형식과 내용에 구애됨 없는 마구쓰기를 통해 자신 안에 잠재된 문재를 발견하고 이를 발현시켰습니다. 그의 글로 우리의 마음이 한결 맑아지고 자유로워졌기에, 감사의 마음을 이 상에 담아 전합니다.

2024221일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곽노현

 

진실 상

강 정 문

위 사람은 인문학 일 년 동안 학업과 동기를 대하는 데 있어서 모든 언행이 진중하고 신실해 우리 모두의 마음을 고요하게 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담아 이 상을 수여합니다.

2024221일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곽노현

 

뒷바라지 상

한 상 규

위 사람은 202319기 회장으로 우리들의 손발이 되어 좋은 면학 분위기와 동기 간 친교와 단합을 위해 몸과 마음을 다해 봉사하였습니다. 감사의 마음을 이 상에 담아 전합니다.

2024221일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곽노현

 

빵과 장미 상

김 성 구

위 사람은 빵보다는 장미의 소중함만을 가르쳐온 인문학을 향해, 빵에 대한 기본 인권의 간절함을 외쳐 우리의 편협함을 깨우쳐주었습니다. 감사한 마음을 이 상에 담아 전합니다.

2024221일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곽노현

 

해맑은 상

조 명 재

위 사람은 어려운 생활환경 속에서도 항상 맑고 밝은 표정으로 수업에 임하고 동기를 맞이해, 저녁 교실이 낮처럼 환해지도록 했습니다. 그의 앞날이 그의 얼굴표정처럼 해맑게 빛나기를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이 상을 수여합니다.

2024221일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곽노현

 

박수와 웃음이 뒤섞인 상장수여식으로 흥분이 채 가라앉기 전 성프란시스대학의 자랑 두드림(Do Dream)’ 풍물패의 축하공연 마당이 펼쳐진다. 올해로 무려 17년째 이어지고 있는 전 세계 유일무이한 노숙인 연희패다. 이젠 졸업생과 실무 그리고 이웃 주민이 한패로 어우러져, 성프란시스대학의 과거~현재~미래 걸어온 길과 걸어가야 할 방향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대견하다. 객석의 흥분을 이어가려는 듯 흥겨운 민요로 앞머리를 열더니만 삼도(영남, 호남좌우도, 충청경기웃다리) 가락 중에서 부분 부분을 뽑아 새롭게 짠 일명 서울역 가락을 신바람 나게 연주한다. ‘거리의 인문학꿈을 두드리는지 연주 내내 우리 모두의 엉덩이가 들썩들썩거렸다.

 

마지막으로 모두 일어나 교가를 부른다. 교가는 인문학 3기 때 철학 과목을 가르쳤던 서울대학교 김문환 교수가 젊은 시절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일할 때 지은 가사에 곡을 붙인 노래다.

모두 한 걸음 더 나가자, 모두 한 걸음 더 나가자

낡은 것은 버리고 손에 손을 잡고 나가자.

온 세상을 두루 다니며 더욱 많은 것을 배운다.

새로 만난 많은 것 마음으로 함께 배운다.

세상 냉정하고 거치나 내게 힘과 사랑 주소서

노래하며 춤추며 이 길 따라 가게 하소서

(후렴) 낡은 것은 모두 벗어 버리고 손에 손을 잡고 나가자.

 

낡은 것은 모두 벗어 버리고 손에 손을 잡고 나가기 위해 1913분 졸업생들은 머리 위로학사모를 힘차게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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