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프란시스대학 20년 회고와 전망 - 우리에게 성프란시스대학은?> 연속 강연 기획을 마치고 / 안성찬(성프란시스대학 철학 교수)
2023년 성프란시스대학이 19기 선생님들을 신입생으로 맞아들이는 시점을 전후하여 이제 20주년을 뜻 깊게 기념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의견이 자연스럽게 대두되었다. 여러 의욕적인 계획들이 제안되어 논의되는 과정에서 무엇보다 우리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향후 나아갈 길을 모색하여 공동체 의식을 함께 나누는 일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데 뜻이 모아졌다. 이에 따라 2023년 2학기 심화 강좌는 성프란시스대학이 설립되어 지금까지 운영되어 온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분들을 모셔 경험과 제언을 경청하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로 기획되었다. 이 기획의 취지는 다음과 같다.
“성프란시스대학이 내년이면 20기 선생님들을 맞아들이고 후년에는 20주년을 맞습니다. 성프란시스대학은 개인적 불운이나 국가적 환란으로 인해 사회적 고립과 경제적 궁핍의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 먹거리, 잠자리,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다시서기’를 이루어내는 데 한계가 있다는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의 경험과 통찰을 기반으로 2005년 설립되었습니다. 인문학 강좌를 통해 이분들의 마음에 인간다운 삶을 향한 희망을 다시 일구어내자는 취지와 목표에 공감해 함께 모인 인문학 교수진, 다시서기센터 사회복지 전문가, 우리 사회의 빛과 소금이 되고자 하는 자원활동가, 이러한 뜻에 공감하여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은 후원자들이 합심해 노력해온 결과 성프란시스대학은 그동안 많은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어냈습니다. 안으로 우리는 인간의 실존방식인 ‘접속’이 단절되는 쓰라린 경험을 안고 성프란시스대학을 찾아온 분들이 문학, 철학, 한국사, 예술사, 글쓰기 강의와 다양한 공동체 활동에 참여하면서 생존을 위한 접속을 넘어서서 인간다운 삶을 다시 꿈꾸게 되는 소중한 체험을 함께 나누어 왔습니다. 그리고 밖으로는 우리 공동체의 경험과 글쓰기 성과를 담은 단행본 발간, EBS를 비롯한 국내 주요 언론매체의 취재 보도, 두드림 공연, 국회 의원회관까지 진출한 시화전 개최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소위 ‘노숙인’을 향한 일반인의 사회적 편견과 왜곡된 시선을 교정해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함께 걸어온 먼 길을 뿌듯한 보람과 아름다운 기억으로만 돌아볼 수 없을 만큼 지금 성프란시스대학은 풀어야 할 여러 가지 어려운 숙제를 안고 있습니다. 첫째로, 센터의 노력과 뜻있는 분들의 도움을 통해 마련했던 성프란시스대학 독립 공간이 꿈처럼 사라져 버리고 이제 성프란시스대학 강의는 좁고 불편한 공간을 빌려 쓰면서 어렵게 운영되고 있습니다. 성프란시스대학 강의와 운영에 적합한 공간을 다시 마련해야 한다는 과제를 놓고 우리 공동체는 지난 수년간 실행 가능한 적절한 방안을 논의해 왔지만 아직 아무런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서울역 홈리스의 상황 변화로 인해 성프란시스대학은 지난 수년간 신입생 모집에 어려움을 겪어 왔고 이러한 어려움은 앞으로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처럼 변화된 상황에 맞춰 강의 프로그램 운영에 새로운 구상과 변화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셋째로, 2학기 말이 다가오면 우리 선생님들이 다시 사회적 고립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는 불안과 우울증을 하소연하는 일을 우리는 지금까지 매년 반복하여 경험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의 해결책으로 심화과정 강좌를 개설하고 동문회를 결성했지만 이것만으로 인문적 접속의 관계망이 지속되기를 바라는 우리 선생님들의 갈망을 채워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는 아직 적절한 해결방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위의 세 가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성프란시스대학 20주년을 잎둔 시점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취지에서 지금까지 성프란시스대학의 운영에 참여해온 교수진, 센터 실무진, 자원활동가, 졸업생 선생님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가 걸어온 길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이 자리에 성프란시스대학이라는 이름을 소중하게 여기는 많은 분들이 함께 모여 지난 세월 우리가 공유한 경험을 돌아보고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 우리 공동체에 새로운 전망이 열리게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성프란시스대학 20년 회고와 전망 – 우리에게 성프란시스대학은?>이라는 제목 아래 성프란시스인들이 열 차례에 걸쳐 모이는 자리를 가지고자 합니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2023년 10월 16일부터 12월 18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시간에 성프란시스대학 졸업생, 다시서기센터 실무진, 자원활동가, 인문학 교수진들이 용산지역자활센터 2층 강의실에 모여 지난 세월을 회고하고 새로운 전망을 그려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 기획 강연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이 진행되었다.
10회에 걸쳐 진행된 이 기획 강연에 참여한 모든 분들은 이 자리가 성프란시스라는 터전의 소중한 의미를 마음에 되새기는 뜻깊은 계기가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 기획 강연이 맺음하는 자리를 곽노현 학장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인사말로 시작했다.
"노숙인을 위한 성프란시스대 1년 인문학과정은 우리 모두의 축제이자 희년, 또 하나의 가정입니다. 성프대는 인간존엄성 충전기지이자 서로 배우는 교학상장의 배움터입니다. 만약 프란치스코 (프란시스는 영어명) 성인께서 부활해서 한국에 오시면 제일 먼저 성프대에 오셔서 수고했다고 치하해주실 겁니다. 틀림없이 그렇게 되도록 우리 모두가 노력하십시다."
그리고 좌담회를 끝맺음하면서 성프란시스대학이라는 터전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가 해온 일의 의미와 가치를 곽노현 학장님은 다음과 같이 명료하면서도 깊이 있는 말로 요약했다.
“내가 4년째 경험한 길위의 인문대학, 성프대는 1년 과정 내내 상호존엄성을 확인하는 기쁨의 축제이자 과거의 속박에서 벗어나는 해방의 희년이며 밥상공동체를 경험하는 큰 가정이었다. 수강선생님들은 물론이고 관계자 모두의 삶의 존엄성을 회복하고 고양하기 위해 끊임없이 서로를 믿고 희망하며 사랑하는 인간성 충전기지다. 성프대는 구성원이 다양하다. 수강생들은 물론이고 이분들의 회복과 통합을 위해 관리자, 실무자, 교수, 자원활동가, 후원회원들이 유기적으로 존재한다. 각자의 역할은 달라도 공통으로 묶어주는 것은 인간에 대한 신망애의 끈이다. 누가 네 이웃이냐? 특히 홈리스상태에 빠진 네 이웃을 어떻게 돌볼 것이냐?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관심과 책임, 동행과 도움이다. 삶의 관심을 갖가지 이권네트워크를 넘어 다양한 인권네트워크로 확장하는 게 필요하다. 이권과 이익네트워크보다 인권과 존엄네트워크가 강한 세상이 인간답고 정의로운 세상이다. 인권과 정의 없는 사랑은 기만이고 환상이다. 인권과 정의를 따르는 것은 사랑의 최소한이기 때문이다. 성프대는 '가짜사랑을 권하는 사회'에서 넘쳐나는 '나부터 웰빙, 나부터 힐링' 구호가 틀렸다고 말없이 얘기해주는 오아시스 역할을 한다. 힘든 이웃과 함께하며 절로 기도하고 절로 감사가 넘치고 절로 기쁨이 배어들 때 웰빙도 힐링도 가능하고 세상도 정의로워진다고 말해준다.”
그렇다. 삶의 존엄성이 인간 세상의 가장 근본적인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 참된 인권과 정의를 세상에 실현하려는 소망, 소외된 이웃을 향한 따스한 사랑이 우리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을 묶어주는 끈이다. 이러한 사실을 확증해주는 소중한 사례를 우리는 이 강연 기획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체험했다. 강연 모임에서 성프란시스대학이 재정적 문제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졸업생들이 후원회원으로 속속 등록하고 있다는 감동적인 소식이 연이어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사랑에 바탕을 둔 참된 인간관계의 체험을 나눈 사람들이 함께 하는 한 성프란시스대학은 20주년을 커다란 보람으로 회고하고 새로운 전망을 벅찬 희망으로 열어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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