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장 (성프란시스대학 글쓰기 교수)
“큰 소리로 따라해 보세요. 以文會友(이문회우)하고 以友輔仁(이우보인)하라, 글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어진 사람이 되는 걸 도와라.” 글쓰기 첫 시간에 흑판에 써서 함께 낭독하는 공자님 말씀이다. “이제부터 선생님들은 글로써 그러니까 인문학을 매개로 글벗이 되는 겁니다. 이 글벗들을 통해 어진 사람이 되도록 도우십시오. 성프란시스 대학은 서로에게서 배우는 선생님의 학교입니다.”
인간 관계의 시작이자 끝인 가족 관계의 단절이 단초가 돼 결국 거리까지 내몰려 홈리스(Homeless)가 된 분들이, 자신을 성찰하고 관계 회복을 모색하는 과정이 성프란시스 인문학과정이다. 교실 내에서는 호칭을 선생님으로 통일해 평등한 글벗 인격체로 서로 존중하도록 했다. 하지만 20대에서 70대까지 연령층이 다양해 시간이 지날수록 동문과 사제 관계에서 자연스럽게 형, 동생, 누나, 오빠, 아버지까지 암묵적인 가족 같은 관계가 형성된다. 게다가 일 년 인문학과정을 수료하면 동문이 되니, 이들에게 성프란시스 대학은 어머니학교 모교(母校)가 되는 것이다.
흔히 홈리스란 집이 없어 거리잠을 자거나, 쉼터를 전전하며, 직업이 없어 자선구호단체들의 도움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이라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홈리스의 현상일 뿐 본질이 아니다. 홈리스의 본질은 가족해체로 시작된 관계 단절이다. 홈리스는 모든 인간관계가 단절돼 철저히 홀로된 사람이다. 그 홀로됨은 종교인이나 구도자가 참 나를 찾기 위해 마주하는 절대 고독이 아니다. 홈리스의 홀로 됨은 선택이 아니라 내몰려 피할 수 없이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지독한 외로움이다. 지하도 사각 박스 속에서, 1.5평 쪽방이나 고시원에서 시체같이 잠들어야만 하는 외로움. 그 외로움의 공포를 견디지 못해 술에 의지하게 되고, 정도가 심해지면 인간성 자체를 놓아버리고 말게 된다.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인간 존재이유를 상실해 부끄러움도 수치도 느껴지지 않아 거리에 널브러진 노숙인, 그들이 홈리스다.
홈리스들에게 당장의 의식주를 제공하는 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충분하진 않다. 그들이 한 인간으로 온전히 회복하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단절된, 잃었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고, 동시에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일이다. 그걸 돕기 위해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이 설립됐다. 일 년,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고, 글을 쓰며, 영화, 연극, 뮤지컬을 관람하고, 박물관, 고궁, 사찰 답사를 하며, 봄, 가을소풍, 여름수련회, 겨울졸업여행을 간다. 그리고 매일 한 끼 저녁을 함께 나눈다. 이렇게 입학해서 학우가 되고 수료해 동문이 되어 형 동생으로 스승과 제자로 단절된 인간 관계를 하나씩 회복해가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이유와 자존감을, 그러니까 인간을 회복해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홈리스 관계회복의 궁극적 목표는 단절된 가족 관계를 회복하는 것일까. 처한 상황, 사례마다 다르겠지만, 꼭 그렇진 않다는 게 내 생각이다. 거리 노숙인이 사망하면 경찰에서 신원조회를 하고 가족을 찾아 연락을 한다. 그러나 열에 아홉은 시신 인도를 거부한다. 그렇게 되면 소속 지자체에서 무연고 사망자로 처리해 문상객 하나 없이 공영 장례로 처리된다.
올해는 제발 무사하기를, 간절한 바람이 무상하게도 16기 최인택 선생님이 65세 나이로 지난 7월 23일 사망하셨다. 사망하기 두 달 전 동기들과 센터 실무진들이 병문안 갔을 때엔 이미 온 몸에 암이 퍼져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최 선생님이 병원에 계신 두 달 동안 찾아온 가족이나 친인척은 한 명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선생님의 곁을 지킨 건 성프란시스 동문들과 자원활동가, 실무진들과 최 선생님 병자성사를 해주신 센터 신부님이셨다.
최 선생님이 사망하자 경찰서에서 가족을 찾아 시신 인도를 요청했으나 거부해 결국 서울시 무연고사망자로 판정해 공영장례로 치러졌다. 화장장에서 선생님의 마지막 넋을 위로한 것도 성프란시스 동문, 실무진 그리고 교수님이었다.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았다고 시신 인도와 장례 권한이 우리에게 없다는 게 현행법이란다. 최 선생님이 어떤 연유로 어떤 모양으로 얼마 동안이나 가족·친인척과 관계 단절이 됐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물보다 진한 피를 나눈 사람이 마지막 이승을 떠나는데 어찌 이럴 수가 있단 말인가. 최 선생님의 모교인 성프란시스대학에서는 선생님과 막역한 연을 쌓은 동문, 실무진, 교수, 자원활동가들이 문상하도록 교사 한켠에 빈소를 마련했다. 이렇게 두터운 연을 쌓았는데 최 선생님이 왜 무연고자인가. ‘가까운 이웃이 먼 사촌보다 낫다’고 우리는 피보다 진한 물벗이며, 물동문이다.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성프란시스 물가족이다.
2학기 글쓰기 수업은 ‘시 읽고 시 쓰기’이다. 시의 리듬과 형식에 대해 공부하면서 한, 중, 일 전통 정형시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한 날이었다. 그날 저녁. 눈썹이 유난히 짙고 평소에도 말씀이 거의 없으신 최 선생님이 카페에 글을 하나 올렸는데, 보고는 깜짝 놀랐다. ‘짠하네’란 제목을 달아 5 7 5 음률의 일본 정형시 하이쿠를 지어 올려놓은 것이다. 나는 선생님의 시를 붓글씨로 써서 영정사진 옆에 붙여놓고 절을 올렸다.
짠하네 / 최인택
툭, 은행열매
바닥에 짓뭉개져
엉망이된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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