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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9호

[길벗 광장] 수치의 구조를 넘어

by vie 2021. 11. 2.

김응교 (시인, 문학평론가,
성프란시스대학 문학 교수)

반드시 넘겨야 할 원고들이 있어 낮밤 없이 글을 쓰고, 도저히 할 수 없는 상황인데 강권에 따라 가까스로 첫 시간을 마쳤다. 화요일에 학교 수업과 늘 있는 다른 강연들, 집필 약속들에 밀려서 귀한 분들을 만났는데, 이상하다, 다시 뵈면 힘이 난다. 매주 화요일 저녁 조금만 아주 조금만 힘을 내자.

열댓 분과 줌으로 대화했다. 핸드폰이든 쉼터 사무실이든 이런 상황에도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이다. 예전에 3년간 진행했던 민들레 문학교실과 성프란시스대학 과정은 다르다. 민들레 문학교실은 성프란시스대학 과정에 비하면 체계가 덜 잡힌 듯하다. 그래도 의미 있는 3년이었다.

4년 차로 이제는 성프란시스대학에서 만난다. 도쿄에서 노숙인 나눔 활동을 하던 때가 십여 년이 지났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노숙인을 위한 사회보장 시스템을 많이 정비했다. 우리보다 인터넷 체계가 낙후되어 있는 일본에서는 노숙인 인문학 교실을 컴퓨터로 하기는 요원하지 않을까.

오늘 만난 분들 중에 젊은 분이 두 분 계셔서 놀랐다. 코로나 바이러스 기간에 거리로 나설 수밖에 없었던 삼십대 분이 생각났다. 돈을 대출받아 카페를 개업했는데 코로나 바이러스로 망해서 갚지 못하고 거리에서 산다는 한 청년이 떠올랐다. 서울역 앞 다시서기센터, 영등포 성문밖교회 등 노숙인 인문학 강연하는 자리에서 저렇게 젊은 분은 있었나 싶다. 마음이 쓰리다. 나중에 식사라도 함께 하고 서로 대화할 기회가 있을까. 돌이켜 보니 나도 30대에 도쿄에서 홈리스 신세였다.

1997년 그해였다. IMF가 닥치고 장학금이 끊겼고, 편집주간으로 일했던 출판사에서 송금도 일시 중단되던 그해 봄날, 나는 고마바 도쿄대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나츠메 소세키 귀신이 나온다는 8호관 그 더운 날 복도 끝 화장실에서 커피잔에 물을 담아 몸에 붓던 그야말로 어처구니 없는 날이었다. 그때 많은 유학생들이 연구비가 끊기면서 어려운 생활을 했다. 그때 지하철 공사장에서 삽질했던 다일이는 동대문 옷매장의 사장이다. 그때 새벽에 요미우리 신문을 돌리던 친구와 자판기에서 백엔짜리 빵을 내려 함께 먹었다. 이제는 한 대학의 일문과 교수로 있는 그의 이름도 가물가물하다.

수업 첫 시간 일정표를 설명했더니, 환갑은 넘어 보이는 한 분이 반가워 하며 아주 천천히 말씀하셨다.

"반찬이 많고, 어느 것을 먹어야 할지 고민해야 할만치 일정표가 좋습니다. 준비해주신 내용 그대로 해도 좋겠습니다. 보기만 해도 배부릅니다."

말하시는 투가 뭔가 맛있는 음식을 다시고 난 뒤 하는 표정 같아 고마웠다. 돌아가면서 한 분 한 분 의견을 물었는데 한 분은 독특했다.

"신동엽 시인을 해주실 수 있으신지요?"

"어떻게 신동엽 시인을 아세요?"

"신동엽 시인이 좋아서 시집(전집일까?)을 여러 번 읽었어요. <금강>이 좋았어요. 더 자세히 알고 싶어요."

<금강>까지 읽으신 분이었다. 내가 신동엽 시인을 연구해 왔다고 하니, 반가워 하셨다.

내 나이또래로 보이는 한 분은 진취적으로 가르쳐 달라고 했다. 진취적이란 무슨 뜻인지요. 물으려다 말았다. 아마 어두운 이야기보다는 밝은 이야기를 진취적이라고 생각하시는 거 아닐까. 다음주에 물어봐야겠다. 젊어 보이는 분은 BTS가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BTS 노래는 계급과 상관없이 힘이 될 가사가 많다.

길에서 지내는 신세라고 우습게 보면 안 된다. 게을러서 혹은 못 배워서 노숙인이 된 경우보다는 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구조적 리스트라* 과정에서 노숙인이 된 분이 적지 않다. 큰 회사에서 구조 재조정 되면서, 비정규직에서 일시적 노숙인이 된 분들이 있다.

몇 해전에는 양복에 넥타이 매고 수업 들으러 오시는 분이 계셨다. 중견 기업에서 해고됐는데 가족들에게는 일터에 나간다 하면서 양복 입고 종일 떠돌다가 점점 노숙인이 됐다고 한다. 그분은 다행히 내 수업을 듣고 얼마 후 경비일을 맡아 집으로 귀가하셨다. 그 무렵 열심히 참여하시는 40대 정도 되는 분이 있었는데, 몇 주 지나 중앙대 문창과를 졸업했다고 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미국에서 온 교포도 있었다. 한국에 오면 잘 살 줄 알고 여자 따라 왔는데, 여자한테 사기당하고 거지가 됐다는 분이었다. 또 몇 년 전에는 <장자>를 거의 입에 달고 달달 외우시던 분이 계셨다. 서울역에서 노숙하다가 누군가 두고 간 <장자> 책을 7년 동안 매일 읽었더니 거의 암기가 되더라 한다. 내가 <대학>이나 <맹자>나 <논어>를 말하면 그는 즉시 "장자식으로 말하면" 하고 운을 뗐다.

오늘 첫 시간에는 백석의 <가무래기의 락>을 했다. 한두 분이 자신도 빚이 있다, 빚을 얻으러 다닌 적이 있다고 하셨다. 그냥 웃기만 하고 묻지는 않았다. 다음에 함께 삼겹살이라도 먹으며, 짜장면이라도 나누며 왜 빚을 졌는지, 말씀 듣고 싶다. 나도 빚이 아직 많으니 함께 해결해야겠다.

발터 벤야민이 말한 '수치의 구조'를 말씀 드렸다.

"권력은 계급을 위해서 낙오자와 차별을 만들어 내지요. 어떡하든 낙오자들을 차별하기 위한 인식을 사회에 퍼뜨려야 합니다. 가령 식민지 사람들은 더럽고 머리가 나쁘고 게으르다는 식이지요. 노숙인은 자기관리를 못하고, 더럽고, 머리가 나쁘다, 위험하다고 세뇌시키고 퍼뜨립니다. 자기관리를 못하고, 더럽고, 머리가 나쁘고 위험한 것은 마약먹는 재벌의 아들 딸놈이야말로 그렇죠. 일본이나 전 세계에서는 구조 재조정에 의한 빈자들이 많이 발생해요. 쓰나미나 지진이 오면 가족 전체가 홈리스가 됩니다. 도요타 자동차 같은 그룹에서 해고시키면 잡리스는 동시에 올리스가 됩니다. 홈리스 정도가 아니라, 가족 전체가 교육비, 병원보험, 교통비 모두 올 스톱되어 올리스가 됩니다. 아프가니스탄처럼 나라가 잘못되면 거의 모든 국민이 홈리스 혹은 잡리스가 됩니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사람이 있었어요. 히틀러 나치에 저항하는 글을 쓰곤 했던 사상가이고 작가에요. 벤야민은 히틀러 정권이 유대인이나 노숙인 등을 인종청소 하면서 그런 이미지로 독일인을 세뇌시키고 학살했다고 하지요. 벤야민은 히틀러 정권이 씌우려 했던 '수치의 구조'에서 제일 먼저 탈출해야 한다고 했어요. 사실이 아니니까요. '수치의 구조'에 세뇌되지 말고, 긍지와 명랑성으로 지금 어려운 시기를 극복해야 합니다."

월요일 저녁엔 대학원 수업, 화요일에는 성프란시스대학 수업, 수요일, 목요일 저녁에도 늘 강의해야 한다. 저녁에도 쉴 수 없으니 올해는 더 이상 못한다. 다만 성프란시스대학 수업은 나를 위한 수업이다. "이젠 매주 화요일 저녁을 기다릴 거 같아요." 수업을 마치려고 할 때 한 분의 말이 고마웠다. 나의 삶을 정리하는 수업이다. 함민복, 묵자, 맹자도 하고 싶은데 다음에 하자.

아픈 척 꾀병 부리며 도망가려는 게으른 비계덩어리를 흔들어 깨우신 곽노현 성프란시스 대학 학장님과 진행해주시는 마명철 국장님께 감사드린다. 수업을 하고, 또 강연하고, 힘주어 강연하면 왼쪽 옆구리가 좀 쑤신다. 말보따리는 왼쪽 옆구리에 있나보다. 힘주어 말하면 꼭 거기 텅 빈 곳간에 시린 바람이 지나간다. 이제 새벽에 일어나 출판사에 보낼 글을 끄적인다. 지난 세월 동안 해온 '빈자의 문학' 언젠간 책으로 내야겠다. 기록해 놓으면 이후에 참고하실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다.


<편집자 주>

*리스트라: 리스트럭쳐링. 즉, 구조 조정을 뜻한다. 처음에는 기업인수나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사업단위를 재구축하는 전략을 의미하였지만, 일본에서 '리스트라'라는 용어로 변형되어 노동자를 해고하기 위한 기업의 명분으로 사용되었다.

*함께 보면 좋은 글
- 김응교 교수님이 2012년 민들레 문학교실에 참여하며 쓰신 글.
http://www.redian.org/archive/43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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