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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4호

교육계의 연암 선생, 성프란시스대학에 오다

by bremendhk 2021. 1. 3.

                                                                                                                   글, 인터뷰어 /
김연아, 강민수
인터뷰이 / 곽노현 (성프란시스대학 학장)

 

코로나 19로 길었던 한 해가 가고 연말이 되어 올해 새롭게 부임, 1년을 함께하신 곽노현 학장님을 뵈었습니다. 여러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함께한 소감은 어떠셨을까 궁금했습니다.

 

Q: 학장님 안녕하세요. 올해 성프란시스대학이 16주년을 맞이하면서 외부인사로는 처음으로 학장을 맡으셨어요. 전 서울시교육감이셨다는 것은 잘 알지만 자기소개를 해 주신다면 어떻게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A: 갑자기 소개하려니까 영 어색하네요. (웃음) 제가 해 온 일로 소개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해 온 일의 첫 번째는 최강자를 법의 지배 아래 놓는 법치주의 일이었어요. 법 위에 군림해온 국정원, 검찰, 법무부, 삼성 등과 싸우는 거였죠. 두 번째로는 최약자를 법의 보호 아래 두는 인권보장 일을 해왔어요. 한쪽으로는 중대한 인권 침해의 청산되지 않은 과거를 마주하는 5.18 특별법 제정운동 등 과거청산운동을 했고요. 다른 한쪽으로는 인권존중문화를 만들기 위해 국가인권위원회 설립운동을 이끌었지요. 그밖에도 행형분야에서 금치제도 개혁운동, 시설생활인의 탈시설 지역사회 통합운동, 정신장애인 강제입원제도 개선운동 등에 앞장섰습니다. 세 번째로는 모든 사람에게 경제 정의와 경제 기회를 주기 위한 경제민주주의 일을 했어요. 노동이사제㉮ 도입, 종업원지주제㉯ 강화, 몬드라곤 협동조합㉰ 소개, 대기업의 인권·사회책임 추궁, 금융기관의 사회투자책임 평가 등 다양한 경제민주주의 운동의 최전선에 서있었지요. 출소자를 위한 ‘기쁨과 희망 은행’이라는 마이크로 크레딧 은행도 만들어서 운영해봤고요.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모든 사람에게 최상의 공교육을 제공하기 위한 진보적 교육운동 일이에요. 제가 방송통신대학교 교수 출신이라 평생학습사회 교육철학을 갖고 있었는데 거기에 유초중등 교육감 경험이 보태진 거죠. 아시다시피 교내 체벌금지로 학교문화를 바꾸고 학교무상급식을 놓고 오세훈 서울시장과 싸워 이겼지요. 하는 일이 다양하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저를 ‘법치주의의 전사’라고 얘기하고 어떤 이들은 ‘인권주의자’, ‘경제민주주의자’, ‘서울의 첫 진보교육감’이라고 부르더라고요. 분명한 건 제가 ‘활동가 스타일의 법학 교수’ ‘액티비스트 교수’로 시대정신에 부응해서 끊임없이 작은 기동타격팀을 만들어 운영하며 실천적 글쓰기 및 기타 실천적 활동을 해왔다는 겁니다. 공직은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과 서울시교육감을 해봤고요. 근데 지금껏 들은 것 중에 제일 기분 좋은 별칭은 ‘교육계의 연암 선생’이었어요. (웃음) (그게 어떤 뜻이에요?) 연암 박지원은 당시 명분론이 강한 성리학 전통에 대항해서 실사구시적인 실학을 주창했잖아요. 과거에 연암선생이 하셨던 역할을 제가 오늘의 교육계에서 하고 있다는 뜻이겠지만, 물론 과분한 평가지요.

 

Q: 굉장히 광범위한 분야에서 활동가로서 정체성을 갖고 활동하셨던 것 같아요.

A: 제가 해 온 일은 모두 법치주의, 인권보장, 경제민주주의, 공교육에 관계돼요. 이 네 가지는 사실 실질적 민주주의의 네 기둥이라고 할 수 있어요. 네 기둥은 상호 연결되어 있고 상호 보강하는 관계라 하나만 약해도 다른 것들이 다 흔들거리고 타락하게 돼있어요. 집을 받치는 기둥들이 삐뚤빼뚤 제멋대로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실질적 민주주의를 얘기할 땐 네 기둥의 상태를 늘 살펴봐야 해요. 처음부터 의도한 건 아니지만 스스로 대단히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돌이켜 보니, 실질적 민주주의의 네 기둥을 고르게 발전시키는 이론적, 실천적 역할을 조금씩은 다 선도해봤다는 거예요. 현실적인 역할이 컸건 작았건 나름 자부심이 있지요.

 

Q: 현재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도 맡고 계시는데, 민주시민교육을 위한 단체이더라고요. 그것도 다 연결되는 맥락인가요?

A: 그렇죠. 민주주의를 운영하려면 민주주의자가 있어야 하잖아요. 민주주의 역량 및 덕성을 갖춘 시민들이 있어야 하는 거죠. 그런 민주시민을 기르는 곳이 학교예요. 이론적으론 가정이나 사회에서도 민주시민을 길러내야 하지만 현실적으론 가정은 부모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사회는 이윤 중심으로 돌아가는 시장경제나 다른 목적과 원칙아래 돌아가는 각 전문분야로 구성돼있어서 민주시민의 가치와 태도, 역량과 덕성을 의식적으로 길러주는 데는 학교밖에 없어요. 그래서 민주주의자는 학교교육을 중시할 수밖에 없어요.

 

Q: 민주시민교육에 대해서 조금만 더 설명해 주실 수 있나요?

A: 민주시민성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각자가 세상의 주인이라는 주인의식이에요. 어려운 말로 주권자의식이라고 그러잖아요. 그런데 나만 주인이 아니라 국가공동체에 속한 모든 사람이 주인이라는 거죠. 만약 나만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다, 그러면 오만방자한 사람이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면 모든 타인을 독특하고 존엄한 존재로 존중할 거 아니에요. 그렇기 때문에 민주국가에서 나의 주인의식은 반드시 타인에 대한 존중과 배려로 진화해야 돼요. 더욱이 국가공동체는 다양한 낯선 이들로 구성된 굉장히 큰 공동체예요. 국가공동체는 법과 제도로 유지되는데 공동체구성원 각자의 정체성은 국가의 법과 제도 안에서 형성되지요. 그렇기 때문에 나의 정체성을 가장 인간적으로 바꿔나가려면 국가의 법과 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어요. 민주주의의 특징은 동등하게 1인1표를 갖는 공동체구성원들이 집단지성과 집단의지를 활용해서 평화롭게 국가의 법과 제도를 바꿀 수 있는 데 있잖아요. 이렇게 볼 때 민주시민교육의 핵심은 불합리하고 정의롭지 못한 법과 제도는 주어진 운명이 아니라 집단지성과 집단의지로 바꿀 수 있다는 주인의식과 주인역량을 길러주는 데 있다고 할 수 있을 거 같네요.

 

Q: 얘기 듣다 보니까 인권보장, 탈시설, 평생교육, 민주시민이 모두 다 성프란시스대학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다면 어떻게 선생님께서 성프란시스대학 학장직을 제안받으셨으며 그 후 어떤 생각으로 수락하시게 되었는지 그 생각이나 과정들이 궁금합니다.

A: 뭐 대단한 게 있었겠어요. 그저 인연이 닿았던 거지요. 많은 사람들이 현장이나 비움의 중요성을 얘기하는데요, 사회적 지위가 생기면 현장이나 비움과는 멀어지게 되어있어요. 가급적이면 어려움을 갖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근처에 가 있는 삶이 좋은 삶인데 현실적으로는 어려운 사람들을 높은 데서 내려다보며 정책 대상, 지원 대상, 규율 대상으로 보기가 쉽죠. 근데 이렇게 보는 순간에 사람을 대상화하고 객체화하게 돼요. 사람을 일면적 특성이나 문서상의 숫자로 파악하게 되는 거죠. 그보다는 직접 현장에서 뒹굴며 애환을 함께하는 사이가 되어야 좋아요. 그래서 저는 노숙인대학 학장 자리를 제안 받았을 때 ‘아, 나더러 이제 하방 하라나 보다’ 생각했죠. (웃음) 무슨 뜻이냐고요? 밑으로 내려가라는 거지. 1970년대 중국에서 문화혁명을 할 때 지식인들과 고위관료들을 현장에서 멀어졌다는 이유로 시골로 막 내쫓았어요. 현장에서 보통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서 뒹굴라는 거였지요. 그걸 하방(下放)이라고 했거든요.

 

Q: 탈시설과 인권위원회 활동을 하시긴 했지만, 노숙인, 홈리스 관련해서 직접 활동하시는 건 처음 아니신가요?

A: 그렇죠. 법적으로는 노숙인 주거시설이나 장애인 주거시설 등을 다중보호시설이라고 하는데, 국가인권위는 다중보호시설을 아무 때나 직권 방문조사를 할 수 있어요. 이게 엄청나게 큰일이었죠. 왜냐면 복지시설 자체가 워낙 담장이 높아서 그때까지 감독기관이 아니면 아무도 못 들어갔거든요. 근데 복지시설이 감독기관을 구워삶은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국가인권위원회라는 제3의 독립기관이 아무 때나 그 담장을 넘어갈 수 있는 법적 권한을 가져야 된다고 믿었고 그게 법으로 관철된 거죠. 제가 사무총장 할 때에 다중보호시설 방문조사를 아주 강화했는데 노숙인시설도 예외가 아니었어요. (직접 시설에 가서 조사도 하신 건가요?) 내가 직접 가진 않고 보고를 받았죠. (웃음) 그때와 달리 성프란시스대학은 직접 경험이 제법 많은 편이에요. 한 스무 분 정도 면접하는 일부터 함께 참여했죠. 소풍도 따라가서 함께 어울렸고, 특강으로 직접 두세 번 만나보고, 수업 시간에도 한두 번 앉아있어 보고, 그랬어요. 매달 한 번씩 운영위원회를 하니까 꾸준히 얘기를 들을 수 있죠. 지금 우리 수강생 선생님들의 상태가 어떤지, 문제 상황이 무엇인지, 이것이 해결 중에 있는지, 아니면 어떤 이유로든 지연되고 있는지, 매달 정보를 공유하며 머리를 맞대고 의논하니까 제가 훨씬 더 가까이서 보게 됐죠. 어떤 분야든 전문적으로 깊이 들어가면, 나름대로의 도(道)가 형성돼 있잖아요. 거기에 조금씩 조심스레 들어가고 있는 중이죠.

 

Q: 성프란시스대학 학장으로서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A: 어디서든지 리더는 최우선적으로 지속가능성을 확보해줘야 해요. 지금까지 비교적 넉넉하게 15년을 해 왔는데 2020년부터는 대기업 후원이 끊겨서 매우 빠듯할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후원 목표금액을 정하고 웹진 소식지를 만들어 홍보를 강화했어요. 고민을 너무 많이 하면 좀처럼 앞으로 나가지 못하기 때문에 일단 뭐든지 해보는 편이에요. 김동훈 교수님과 박경장 교수님이 애쓰셔서 텀블벅 모금도 성공시키고 책도 내고 출판기념회도 폼 나게 했습니다. 후원모금액도 목표에는 미달했어도 제법 늘어났어요. 2020년 위기상황에서 교수님들, 스태프들, 자원봉사자들, 재학생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움직여서 만들어낸 성과지요. 역시 성프란시스대학을 떠받쳐온 건 지원금이 아니고 좋은 뜻이었다, 특히 좋은 뜻을 함께 해온 좋은 분들의 정성이었다는 게 입증됐다고 봐요. 눈앞에 있는 자원활동가 두 분을 포함해서요.

 

Q: 1년 동안 함께하시면서 특히 기억에 남는 장면, 소감이 있으실까요?

A: 저는 면접 때부터 재미도 있고 감동도 받고 그랬어요. 해피엔딩은 아니었는데 면접에서 모든 심사위원의 가슴을 촉촉하게 만든 아주 감동적인 스토리가 있었어요. 면접생 중 한 분이 나훈아 노래 중 ‘내게 애인이 생겼어요’를 부르는 것 같았어요. 다른 어떤 분 때문에 삶에 이유가 생기고 희망이 생겼다고 하니 다들 그렇게 이해했지요. 다들 침을 꼴깍꼴깍 삼키면서 상대가 누굴까 궁금해 했는데, 옆에 앉아계신 동성 면접생을 가리키며 그분이라는 거예요. 고시원에서 같이 생활하신다는. 완전 반전이었죠. 거의 드라마작가 수준으로 얘기를 풀더라고요.

하나만 더할게요. 소풍 때였는데요, 이야, 우리 김동훈, 박경장 교수, 안재금 실장 세 분이 운동을 그렇게 잘 하실 줄 몰랐어요. 조그만 종이컵 있잖아요. 그걸 가지고 재기를 차는데 무려 쉰여덟 번을 왔다 갔다 하더라고. 내가 세어 봤어요. 처음엔 ‘어, 이 사람들 봐라. 열 번, 스무 번도 더 하네?’ 했는데, 어느 순간 쉰여덟 번을 차더라고. 우유팩도 아니고 종이컵 그 가볍디가벼운 걸로. 도무지 감탄을 금할 수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대망의 족구 시간이 왔는데, 세 양반이 훨훨 날아요. 볼 트래핑이나 내리꽂는 솜씨나 기예가 모두 출중해. 거기다 박경장 교수는 보면 볼수록 호인, 기인, 예인, 학인 성격을 다 갖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과더라고. 우리 김동훈 교수도 목사님에 철학자라 아주 독특하게 실력과 품성이 좋은 분이고. 내가 가장 놀란 건 교수님들이 성프란시스대학이 주는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기쁨과 보람 때문에 성프란시스대학을 떠날 수 없다고 고백하는 거였어요. 교사와 학생이 함께 성장하는 교학상장의 기쁨과 보람을 성프란시스대학만큼 주는 데가 없다는 거죠. 저한테는 이 대목이 굉장히 감동적이에요. 저분들이 진짜구나, 진국들이구나 싶었어요. 벌써 15년 넘게 해 오면서 노숙인 선생님들의 특성과 한계를 어지간히 알고 있는데도 아직도 어떤 강의에서보다도 많이 배운다고 고백하는, 그 부분이 참 감동적이에요.

 

Q: 이번에 심화강좌 기획도 하셨어요.

A: 그랬어요. 성프란시스대학이 인문학과정이잖아요. 인문학이 좋은 이유는 내면의 힘을 길러주기 때문이잖아요. 우리 노숙인 선생님들한테 제일 필요한 게 뭐예요? 자존감의 회복 아닐까요? 건강한 내면의 힘만 길러지면 자기연민, 자기파괴를 안 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인문학 과정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사람은 자기의 주인일 뿐만 아니라 세상의 주인이잖아요. 이 세상은 우리가 정치를 통해 만든 것이고, 정치를 통해 만들어낸 법과 제도가 이 세상의 구조와 틀을 구성하고 있어요. 우리선생님들도 세상의 주인으로 돌아와서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게 필요해요. 남들이 못 본 세상의 바닥을 본 분들이라 이점도 없지 않아요. 그래서 저는 매학기 심화강좌 10회 중 5회는 사회특강으로 하자고 제안했죠. 심화강좌의 목적 중 하나는 졸업생 선생님들이 교수님들하고 인연의 끈을 계속 이어나가는 데 있잖아요. 그러니 다섯 교수님들이 한 강좌씩은 하셔야 하고 남은 다섯 강좌를 사회현안을 이해할 수 있는 자리로 진행해 보자는 거였지요. 교수님들과 스태프들이 다들 동의해주셔서 2학기에 처음으로 그렇게 짜봤는데 코로나 때문에 두 차례만 진행하고 나머지 수업은 취소할 수밖에 없었죠. 이번에 제대로 해봤어야 노숙인 선생님들의 반응과 평가를 받아볼 수 있었는데 아쉽죠. 어떤 경우에도 성프란시스대학의 인문학 중심성에는 변화가 없을 겁니다. 저의 제안은 인문학을 중심에 놓고 시민교육차원을 가미하자는 정도예요.

 

Q: 시민으로서 다시 서는 게 우리 인문학과정의 목적이니까 말씀하신 민주시민교육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A: 그래요. 인간은 사회 밖에서는 살 수 없는 사회적 존재예요. 인문학이 보는 사람과 사회학이 보는 사람이 그 점에서 다르지 않아요. 인문학이 어떤 사회구조도 사람을 온전히 규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드러낸다면 사회학은 어떤 사람도 사회구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드러내죠. 인문학이 공동체와 집단의 정체성을 극복하며 개개인이 주체적인 행위주체로 발전하는 과정에 도움을 준다면 사회학은 그 행위주체들이 현실의 사회구조를 극복하며 바람직한 사회를 만들어내는 과정에 도움을 준다고 생각해요. 둘 다 필요한 거죠. 사회적 존재로서 좋은 인간을 지향하는 개별화와 사회적 존재로서 좋은 사회를 지향하는 재사회화, 이 둘이 같이 가면서 선순환을 이룰 때 비로소 온전한 개인이 되겠죠. 이렇게 볼 때 성프란시스대학이 인문학에만 머물 건 아닌 것 같습니다.

 

Q: 인문학과정에 민주시민교육이 더해질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A: 아직 구성원들 간에 합의가 된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제가 이 자리에서 얘기하는 건 조심스럽고요, 앞으로 토론과제겠죠. 다만 한 가지 예를 들자면, 노숙인 선생님들에게 노숙인 정책을 강의하는 거예요. 노숙인 정책의 목적은 무엇이며 어떻게 변화했나. 노숙인에게 주어지는 행재정적 지원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사회적 각성과 투쟁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나, 한계는 무엇인가, 이 한계를 지탱하는 힘은 무엇이며 그것을 넘어서는 건 어떻게 가능한가, 이런 것을 학습하고 토론해보는 거죠. 노숙인정책의 한계는 그냥 만들어진 게 아니고 이념적 힘과 제도적 힘이 뒷받침하고 있거든. 이 한계를 돌파하려면 뒷받침하고 있는 논리적, 이데올로기적, 이해관계적 차원을 깨야 돼요. 그걸 깨는 주체는 일차적으로 당사자여야 하고요. 안 그러면 정책과 제도도 늘 시혜적으로 올 뿐이에요. 그러니까 당사자가 주체적으로 자각해서 요구할 것을 정하고 그 요구를 단일대오를 형성해서 관철해나가야 하는 거죠. 그래야 시민의 힘을 체감할 수 있죠. 민주시민교육이라고 해서 추상적으로 시작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요. 노숙인 정책만 가지고도 얼마든지 사회과학을 할 수 있죠. 당사자를 시민주체로 세워서 법과 제도에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가게 하는 것, 그게 바로 민주시민교육이죠.

 

Q: 그런데 사실 정부에서 시행하고 있는 노숙인 정책을 보면 1인당 많은 예산을 들이지 못해요. 그에 비하자면 성프란시스대학은 그 예산이 너무 많이 투여되는 것이 아니냐는 시선도 있거든요. 의식주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부분이나 청소년 교육은 인권 측면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빈곤계층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것도 인권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A: 비용효과성이라는 것이 효율성이죠. 근데 효율성을 넘어서야 하는 부분이 있어요. 대체로 실험적이고 선도적이며 상징성을 띠는 분야가 그렇죠. 저는 우리 성프란시스대학이 그런 사례라고 봐요. 우리 노숙인 선생님들을 보면 유서를 들고 다닌다든가 자살시도 경험이 있다든가, 일단 삶의 의지가 꺾이고 세상과 단절된 분들이거든요. 당연히 자존감을 회복하고 세상과 접속하는 게 필요하지요. 이런 분들한테 성프란시스대학의 인문학과정은 사치재가 아니고 필수재예요. 우선 글쓰기 수업만 봐도, 자기성찰의 힘을 주고 내면을 들여다볼 계기를 마련해 주잖아요. 이번에 출간된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에 실린 글을 읽어보면 노숙인 역시, 우리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실은 누구든지 가까이서 오래 보면 그런 생각이 들게 돼있어요. 노숙인, 시설생활인, 정신장애인, 심지어는 중범죄인도 예외가 아니지요. 멀리서 짐작하는 것보다 흉하지 않아요. 편견을 버리고 가까이서 어울리면 사람의 좋은 점이 보이기 시작해요. 그걸 서로 인정해줘야 모자란 점, 나쁜 점도 변화할 수 있어요. 저는 성프란시스대학이 그런 변화의 장으로 역할하고 있다고 봐요. 그래서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은 전국에 우리 하나만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성프란시스대학은 노숙인 정책패키지의 하나로 노숙인이 있는 모든 시군구에 있어야 해요. 노숙인들에게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은 없어도 그만, 있으면 좋은 사치재가 아니라 없으면 안 되는 필수공공재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생각해봅시다. 제대로 재활이 안 되면 노숙인은 1, 2년 반짝 제기하는 것처럼 보이다가도 다시 노숙으로 돌아가는 악순환의 회전문을 타게 돼있어요. 그 악순환에서 빠져나오게 하려면 초강력 ‘존중’ 부스트 장치가 필요해요. 상처가 그만큼 크기 때문이죠. 뭐든지 초강력으로 하려면 비용이 들게 돼있어요. 침대 하나 내주고 삼시세끼 마련해 주는 건 생존을 위해서 돕는 시늉을 하는 것일 뿐, 자립이나 재기를 위한 것으론 턱없이 부족한 거예요. 제가 보기에 노숙인을 회전문의 악순환에서 벗어나게 하려면 주거복지, 내면강화, 의료처치, 일자리제공이 유기적으로 결합해야만 해요. 특히 내면강화와 의료처치로 심신의 건강이 회복되지 않는 이상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게 불가능해요. 당연히 재활에 필요한 사회적 비용지출이 지금보다 엄청 늘어나야 해요. 그렇지만 비용효과성은 재활효과가 몇 년간 지속되는지에 따라 달라져요. 재기에 실패해서 국가가 보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100세까지 계속되면 사회적비용이 급증하는 반면 성프란시스대학을 통해 재기에 성공하면 수십 년간 효과가 지속되기 때문에 비용효과성이 급증하게 되죠. 요컨대, 생존 차원을 넘어 재기 차원에서 본다면 성프란시스대학과 같은 노숙인의 내면강화 지원 시스템을 전국적으로 보편화해야 한다고 봐요.

 

Q: 현재 코로나 때문에 정규강좌도 온라인으로 변경이 되어있는 상태인데요, 내년에도 입학이 미뤄질 수도 있고, 여러 어려움이 있어요.

A: 그렇죠. 그러나 코로나에도 불구하고 노숙 현상이 계속되고 노숙인의 재활의지도 계속되겠죠. 그렇기 때문에 다시서기센터도, 성프란시스대학도 계속되어야 한다는 것이 대전제겠죠. 다만 새로운 상황에 맞추어서 가장 효과적으로 성프란시스대학의 인문학과정이 제공되어야한다는 건 틀림없는 거죠. 그게 우리의 창의적인 문제해결력을 요구하고 있는 거고요. 저는 우리가 집단지성을 모아 나가면 지금의 기술수준과 상황, 여건 속에서 가장 최적화된 솔루션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는 거니까요. 다행히 코로나 백신과 치료제가 나와서 코로나 사태는 2021년 중으로 극복가능할 거 같네요.

 

Q. 마지막으로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에서 인상 깊었던 글을 하나 추천해주시겠어요?

A: 이0원님의 '만남'이란 시예요. 수강생 선생님들이 갖고 있는 성프란시스대학에 대한 사랑과 추억을 가장 잘 표현한 시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프대에 가면
오래 잊은 듯한 좋은 일이 있을 듯하네.
꽃을 사랑하는 디디미
스포츠맨 아도니스
식단 차려주는 거북이
분위기 띄우는 봉노선생
한마음으로 만난 도반선생들.

서로 만나 악수하면 외로움은 저만치 달아나네.

오고 가는 정담 속에 사랑은 피어나고
세월이 흘러
모든 것이 안개처럼 사라져도
이 순간 보석 상자에 담아두고 싶네.

사랑하는 이들이여,
우리가 함께했던 시간
지리산 둘레길 떠도는 바람은 알고 있으리.

 

 

(용어 해설)

노동이사제: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여 기업 경영자 중심 의사결정을 견제하고 경영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해 독일 등 유럽 각국에서 도입 운영중인 제도

종업원지주제: 종업원이 자기 회사의 주식을 특별한 목적과 방법으로 소유하는 제도

몬드라곤 협동조합: 스페인 바스크 지역 몬드라곤시에서 1940년대부터 성당 주임신부 호세 마리아 아리스멘디 아리에타 주도로 시작된 노동자 생산협동조합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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