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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4호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를 읽고

by 성프란시스 2021. 1. 1.

이창국(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 책은 제목은 진부하게 달렸지만 한번 집어들면 내려놓기 어려울 만큼 흥미진진하고 때때로 울컥울컥합니다. 제가 금년부터 학장을 맡아온 성프란시스대학은 노숙인을 위한 1년짜리 인문학과정을 16년째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그 졸업생들이 매주 글쓰기시간에 써낸 글과 매년 졸업문집에 실린 글 가운데 선별해서 국내 최초의 노숙인 문집을 1달 전에 냈습니다. 이오덕 선생이 내셨던 산촌아이들 문집을 잇는 삶의 현장 문집으로 손색 없습니다. 감동적이고 재밌고 유익합니다. 삼인출판사가 책도 잘 만들었습니다. 제가 오늘하루 동안 회원님들의 신청을 받아 40권을 배송비 착불조건으로 보내드리겠습니다.”라는 징검다리교육공동체 회원 대화방에 올라온 글을 보고 신청하여 책을 만났다.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노숙인들에 대한 나의 불편한 감정과 나의 오류들을 벗겨내는 과정이었다.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과정이 있으며, 노숙인들이 인문학을 통해서 새로운 삶의 동기를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거리에서 빅이슈라는 잡지를 파는 이들이 노숙인이라는 것, 그들의 재활에 필요한 수익 사업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몇 번은 읽지도 않을 빅이슈를 산 적도 있다. 노숙인의 삶이 나와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성프란시스대학 학장인 곽노현 징검다리교육공동체 이사장이 연결고리가 되었다.

서울역에서 하늘을 지붕삼고, 골판지를 요삼아 잠을 자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노숙하면서 겪는 어려움을 읽으면서 단 한번도 그들의 생활의 어려움을 생각해본 적도 없었던 나에게 ‘공감’이 일어났다. ‘노숙인 선생’들이 노숙생활을 하기 전의 삶의 진솔한 이야기는 내 주위에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것들이었음을 확인했다.

그들이 힘든 시간을 겪으며 서울역에서 노숙을 할 때까지 그들의 곁에 그들을 붙들어 줄 힘, 사회적 돌봄이 없었기에 노숙에 이르렀음을 보았다.

인문학 과정에서 ‘거울’을 통해서 자신을 살펴보는 활동은 자신이 겪은 고통스런 과거를 돌아보는 일이었기에 쉽지 않은 일이었고, 그 시간들을 통해서 자신을 타자화하면서 노숙인이 아닌 한 인간으로 다시 볼 수 있게 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은 혁신의 과정이었다. 가죽을 벗겨 새롭게 태어나는 고통의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견뎌내며 새롭게 태어난 인생이었다. 책 속에 담긴 시 세 편을 옮겨 본다.

<그래도>

사시사철 어두침침,
다닥다닥 붙어 소리도 낼 수 없는
반 평도 되지 않는
4층 구석방

그래도
숨을 붙이고 누워
빛 가닥 꼬리라도 잡아볼 수 있는
보금자리

〈사모思母>

고개 숙여
눈물 꽃을 바치옵니다.
할 일 없이 지내던 젊은 어느 날

슬며시 불러 술 한 잔 주시며 건네던 당신의 말씀
훗날 처자식이나 먹여 살리겠느냐?
그 말씀에 화가 치밀어 얼굴을 붉히며 반항하던 지난날
자신만만하게 살 수 있다 믿었던 미래는 당신의 걱정 그대로

정말 부끄럽습니다.

무덤도 찾지 못하고 불효를 용서해 달라고
무릎 꿇고
눈물 잔으로 올리옵니다

<할매의 술국>

저녁이 익던 굴뚝에 연기가 끊기고,
찾는 이 없는 촌 가게,
할매의 술국만이
읍내 장 보러 간 할배를 기다리며
난로에서 졸음을 태우며 익어간다.

신작로 끝자락으로 멀어져 간 자식,
그 손잡고 콧노래 부르며 같이 올까
고개 넘는 발길에 손주 얘기 묻어올까
할매의 술국만이
읍내 장 보러 간 할배를 기다리며
보고픔에 젖어 꿈길을 서성인다.

노숙인 선생들의 시와 산문이 실린 맨 뒤에는 부록으로 대본 <두드림>을 담고 있다. ‘거울’을 통해 노숙인들이 과거의 삶을 드러내고, 그들이 겪었을 고통과 아픔을 벗겨내어 새살을 돋우는 씻김굿이고 비나리였다.

책을 읽고 책의 표지 뒷장을 본다.
성프란시스대학
https://stfrancishumanities.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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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새롭게 알게된 단어가 있다. ‘사회적’이라는 표현이다. 김누리 교수가 쓴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에서 사회적이라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새롭게 보게 되었다. 자본주의가 유지되기 위해서 필수불가결한 5~8%의 실업(불황기에는 이 비율은 엄청 높아질 것이다)에 의해서 생길 수밖에 없는데 자유시장경제는 실업의 문제를 개인의 능력없음으로 간주하고 개인이 각자 도생하게 하게 한다는 것, 사회적 시장경제는 이 문제를 정책으로 정부, 국가의 책임에 놓고 해결하려 한다는 것을 통해서 ‘사회적’이라는 의미를 새롭게 했다. 육십이 넘어서 계속되는 공부를 통해서 계속 달라지지 않으면 나의 무지가 나를 가둘 것이다. 그리고, 꼰대처럼 살게될 것이다. 그래서 계속 공부는 이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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