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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하나재단 블로그에 소개된 9기 전원조 선생님 인터뷰 기사입니다. ^^
북한에 있을 때 전원조 씨는 배우이자 극작가였다. 두만강을 건너 중국에서 생활할 때 그는 노숙인과 제판기술자 생활을 번갈아 했고, 한국에 들어온 후에는 노숙인 아니면 일용직 노동자였다. 자신이 연극인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기 힘들 만큼 척박한 일상이었다. 그러다 변화가 왔다. ‘노숙인 전원조’였던 그가 연극영화과 졸업생들을 만난 후 ‘연극인 전원조’가 되기 위해 오디션 연습에 돌입했다. 그러나 집도 절도 없는 처지에 연습할 공간이 없었다. 그때 노숙인 재활을 돕는 종교 단체를 만났다. 담당자는 전원조 씨의 의지를 보고 긴급주거지원비 석 달 치를 지원해줬다. 쪽방을 얻어 연극 연습을 하면서 종교 단체에서 지원하는 커뮤니티 활동도 시작했다.
“노숙자들과 함께 ‘연극으로 필이 통하는 사람들’ 줄여서 ‘연필통’이란 극단을 만들었어요. 조그만 극단이지만 스스로 연기하고 공연하는 게 아주 즐거웠어요.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에 몰입한다는 점도 보람이 있었고요.” 그리고 2013년 그는 같은 종교단체에서 운영하는 인문학 대학 과정에 입학해 인문학 강의를 들었다. 연극과는 또 다른, 새로운 세계로 눈이 열렸다. 인문학은 단순히 교양, 지식만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의 중심을 찾게 해줬다. 인문학 과정을 공부하면서 전원조 씨는 스스로 ‘대학 4년’을 나왔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인문학은 단순히 지식만을 배우는 게 아닙니다. 자신의 장점을 찾는 계기가 될 수 있어요. 남한 사회에 적응하기 어렵고 두려운 탈북자들에게 저는 인문학 강좌를 꼭 들어 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요. 자신과 사회에 대해 스스로 깨달아 가면서 더 이상 남한 사회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고 두려움도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연극과 인문학으로 대학 4년을 마친 전원조 씨는 더 이상 한국 생활이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다. 연필통 대표로 서울시 마을공동체 지원사업 지원금을 받은 후 자신감과 용기도 생겼다. “서울시에 가서 당당하게 면접을 보고 156개 팀 중 2.7대1의 경쟁률을 뚫고 지원금을 땄습니다. 탈북민인 제가 말이죠. 스스로 대견하다고 생각합니다. 단원들 사기를 높이기 위해 최근 MT도 다녀왔습니다. 조만간 작은 공연도 할 예정이어서 현재 준비하고 있습니다.”
[출처] 정착은 고생·시행착오 줄이고 더불어 사는 것 - 연극인 전원조 씨|작성자 남북하나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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