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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25호

[길벗 광장] 가난과 깃들임에 대하여(4)

by 성프란시스 2024. 11. 25.

가난과 깃들임에 대하여 (4)

- 깃들임 터전으로서의 성프란시스대학

김동훈 / 성프란시스대학 예술사 교수

 

넓게는 이웃과 함께 도시 공간에 깃들이는 인간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을지, 좁게는 이 행복이 그동안 우리가 살펴본 가난과 노숙과는 어떤 관계를 맺을지에 관한 물음으로 지난 호 글을 끝맺었었다. 그러면서 나는 과연 행복한가라고 자문해 보았다. 결론은 그렇다였다. 물론 살면서 숱한 잘못을 저지르기도 했고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앞선 글들에서 행복의 조건으로 제시됐던 물질적, 사회적 조건들 역시 거의 충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동안의 여러 글을 통해 이미 밝힌 것처럼 서울역 성자들과의 만남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근원적 동력이어서 나를 불행하게 만들 수도 있을 여러 상황의 무게에서 벗어날 수 있기에 감히 나는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다.

어느 날 18기 회장이신 이승복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웬일인가 해서 받았더니 18기 모임에 교수님들을 초대하고 싶으시단다. 너무 감사해서 당장 그러겠다고 대답해놓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약속된 날 저녁 모임 장소에 가보니 2년 전에 졸업하신 18기 선생님들 거의 전원이 참석하셨다. 한 선생님께서 교수님들이 오신다니까 그동안 참석 안 하시던 선생님들도 모두 오셨네요.” 하신다. 박경장 교수님은 수업도 인터넷을 통한 수업으로 바꿔 우리 선생님들을 보러 오셨단다. 박한용 교수님, 안성찬 교수님까지 오셔서 오랜만에 역전의 용사들(?)이 다시 뭉쳤다. 선생님들과 정겨운 이야기를 나누다 막차 시간에 쫓겨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나는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노숙과 자유>라는 글을 길벗 광장에 올린 적이 있다. 거기서 나는 천형으로서의 노숙과 모든 억압과 간섭에서 벗어난 영혼의 자유로서의 노숙을 구분하고 고향을 떠나 벌이는 존재의 모험에 관해 말했다. 물론 고향이라는 말은 내가 애착을 느끼고 그 안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삶의 터전과 정든 집을 말한다. 그곳을 떠나는 일은 두 가지 경우에만 발생한다. 하나는 경제적, 정치적으로 위급한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내가 추구하고 성취하고픈 것을 고향에서는 이룰 수 없기에 떠나고자 하는 경우다.

서울역 노숙인들의 상황은 대부분 전자에 해당할 것이다. 그렇기에 노숙은 천형처럼 여겨진다. 적어도 물리적 상황으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다. 겨울밤 차디찬 길바닥에 누워 잠을 청해야 하는 신세 자체가 행복의 원천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안성찬 교수님의 지적처럼 물리적 노숙에서는 이미 벗어난 많은 이들도 접속의 단절’(길벗 광장 14호 칼럼에서 인용)에서는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행복을 느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은 무얼까? 나는 그 유일한 길이 새로운 접속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스스로 그 접속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치인 상처 때문에 망설이는 이들이 주위에 있다면 그들에게도 새로운 존재의 모험을 감행할 용기를 북돋아 주는 길벗이 되는 것도 능동적으로 접속을 실행하는 방법일 것이다.

 

성프란시스대학의 존재 이유는 이렇게 여전히 천형으로서의 노숙상태에 있는 이들이 새로운 접속의 모험을 감행하도록 돕기 위해서다. 많은 분이 신입생 면접 때나 입학식에서는 굳어 있던 우리 선생님들의 얼굴이 점점 변해 가는 모습을 확인한 바 있노라고 말씀해 주신다. 나도 마찬가지다. 1학기 수업 때는 쭈뼛쭈뼛하시던, 심지어는 눈길도 안 마주치려 하시던 선생님들께서 언젠가부터 마음을 열고 자신을 속내를 보여 주실 때 느꼈던 기쁨이 내가 18년 동안 예술사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해준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런 분들이 졸업하고 나서도 심화 강좌 때 오셔서 반갑게 인사해 주실 때 정말 기쁘고, 감사하다. 성프란시스대학은 우리의 보금자리고 우리는 서로에게 접속한 길벗이다. 나는 선생님들과 교수진, 실무진과 자원활동가들이 이럴 때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이 <가난과 깃들임에 대하여 (2)>에서 말한 바 있는 필리아(φιλα)로서의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어떤 유익이나 쾌락도 가져다주지 않지만, 그저 그 사람이 좋다고 말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 물론 누구도 완전할 수 없기에 서로 실수도 하고 언짢은 일도 있고 상대방에게 화를 낼 때도 있겠지만, 이제는 접속의 단절로 고통받는 일에서는 벗어났을 테니까 말이다.

 

누구나 힘들 때 물질적 도움이 될 수 있는 사람을 선호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서로가 그런 능력이 있다고 믿을 때뿐이다. 내게 그런 능력이 사라지고 나면 아무도 날 찾지 않더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여기저기서 숱하게 들어왔다. 성프란시스대학은 그런 물질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의 집합소다. 그런데도 우리가 서로를 좋아하고 계속 함께하기를 원한다면 그것은 힘들 때 옆에서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줄 수 있고, 경제적 도움은 되지 못할지라도 함께 힘들어하면서 해결책이 될 만한 무언가를 함께 고민해줄 수 있는 진짜 친구가 생겼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성프란시스대학이 이렇듯 가난한 사람들이 따뜻하게 깃들일 수 있는 터전이었으면 한다. 그리고 그 가난이 <가난과 깃들임에 대하여 (1)>에서 말한 바 있는 행복한 가난이기를 바란다. 그런 사람들의 보금자리로 마련된 이 터에서 수많은 이들의 접속이 활발하게 일어났으면 좋겠다. 그러면 우리가 터 잡은 이곳이 <가난과 깃들임에 대하여 (3)>에서 말한 바 있는 작은 폴로스(πόλος)가 될 것이고 우리는 거기에 함께 깃들여 살아가며 행복을 누리는 이웃이 될 테니까 말이다.

 

이제 성프란시스대학이 20주년을 맞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20059월에 첫 강의가 시작되었으니까 앞으로 10개월여가 지나면 성프란시스대학이 개교한 지 만으로 20년이 된다. 그동안 우리가 지나온 발자취를 돌이켜 보며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되어 3기 때부터 18년 동안 선생님들과 함께하며 살아온 이 터전의 의미를 나 나름대로 정리해 보았다. 이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시 하나를 나누며 글을 맺도록 하겠다. 우리 각자가 시구에 나오는 담쟁이 잎 하나이기를 바라면서.

 

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잎 하나는 담쟁이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 편집자주: 김동훈 교수님은 웹진 22호 부터 이번 25호 까지 "가난과 깃들임에 대하여" 4차 연재해 주시고, 이번 호에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로 매듭해 주셨습니다. 어찌보면 성프란시스대학 인문과 과정 공동체의 공동 화두인 '가난'과 ' 행복'의 문제를 집약해 고찰해 주시어 우리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과정의 역사에 관통하는 '가난'과 '행복'이라는 성프란시스대학의 바탕 정신을 정리해 주신 것 같습니다. 교수님 고맙습니다. 

웹진 이전 호에 실린 김동훈 교수님 글은 아래 링크를 참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가난과 깃들임에 대하여 3" 

 

[길벗 광장] 가난과 깃들임에 대하여 (3)

가난과 깃들임에 대하여(3)                                                                              - 행복의 조건으로서의 깃들임과 이웃김동훈/성프란시스대학 예술사 교수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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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깃들임에 대하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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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깃들임에 대하여 (2)  -인간다움의 실현과 행복                                                                                                                김동훈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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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과 깃들임에 대하여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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