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총선에서 각자의 선택과 이유: 정치에 대한 주문을 돌아가며 이야기하기
곽노현/성프란시스대학 학장
지난 7월 1일 심화강좌 제8강은 성프란시스대학 곽노현 학장님께서 “지난 총선에서 각자의 선택과 이유: 정치에 대한 주문을 돌아가며 이야기하기”란 주제로 진행해 주셨습니다.
곽노현 학장님은 지난 4월 총선에서 강남 3구가 투표율이 가장 높았음을 지적하시고,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그들은 투표의 중요성, 정치의 중요성 그리고 정치 권력의 획득의 중요성을 알고 있다는 사실임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런데 근대 서구 민주주의 전체 역사에서 이토록 중요한 투표권이 여성, 저소득층에 부여된 것은 아주 최근에 이르러서였습니다. 영국에서는 1688년 명예혁명으로 시작한, 권리장전에 기반한 민주주에서도 실제 정치 권력에 참여하는 이들은 귀족, 세금 기준으로 유산 계층으로 한정하였습니다. 그 결과로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한 그들이 사회의 재화와 권력 배분을 마음대로 결정하였습니다. 이런 영국의 정치 현실을 보고 영국 시민들은 투표하는 하루만 주권자이고, 나머지 날은 노예와 마찬가지라고 비꼬았다고 합니다. 그후 100여 년이 지난 뒤인 프랑스대혁명과 미국 독립선언 이후의 두 나라 참정권 실정 또한 영국과 별반 다를 바 없었습니다.
이런 서구 민주주의 역사에서 지속되어 온 제한된 시민 참여의 역사적 뿌리를 알아보기 위하여 학장님은 고대 그리스 정치 제도를 소개해 주셨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제도를 군주정과 선거제에 기반하는 귀족정, 민주정으로 나누었습니다. 당시 아테네 인구가 20만명 정도였는데 이중 정치 참여자인 시민은 2만 5천명 정도이고, 이 시민계층에서 여성과 노예는 제외되었습니다. 즉 그리스 민주정은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는 여성의 가사 노동과 노예의 생산 노동을 토대로 이뤄진 것입니다. 이런 한계를 지니고 있기는 했지만 그리스 민주정의 매우 중요하면서도 긍정적인 특징은 도시국가의 행정, 입법, 사법을 담당하는 공직자를 ‘추첨’에 의해 선정하는 직접 민주주의를 구현했다는 점입니다. 귀족정의 특징인 선거제는 현대사회의 대의민주주의 제도와 비슷하게 당선자에게 국가 업무를 위임하는 반면, 추첨제는 직접 민주주의에서 시행 가능한 제도입니다. 그런데 이런 민주정이 실시되었던 1~2백년이 바로 고대 아테네가 정치, 경제, 문화, 학문 등 모든 영역에서 가장 번성을 누린 시기임을 학장님은 강조하셨습니다.
이어서 그리스 인접한 고대 이탈리아의 정치 제도를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고대 이탈리아 정치 제도는 귀족정에서 시작합니다. 대외적 전쟁 등을 통해 축적된 사회적 부가 귀족정의 토대 위에서 귀족 중심으로 분배되자, 시간이 흐를수록 사회적 빈부 격차가 깊어져 갔습니다. 이런 빈부 격차의 심화는 사회적 갈등을 야기합니다. 이에 계층간의 타협을 통해 귀족정과 민주정을 섞은 혼합정이 생겨나서, 귀족이 왕을 대변하는 집정관과 원로원 중심 귀족 중심제도와 평민들의 귀족 권력을 견제하는 호민관을 내세우는 제도가 함께 성립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이 발전되어 각 계층이 자기 대표를 내세워 공존할 수 있는 정치제도가 생겨났는데 그것이 공화정입니다.
이런 고대 아테네의 민주정과 고대 로마의 공화정이 근대 시민 혁명이후 유럽 각국의 정치 제도에 스며들게 됩니다. 근대 공화정에서 소수의 투표자인 당시 유산 계층의 가장 큰 관심사 절대 대수의 유권자 군을 이루는 무산계층을 어떻게 제어하고 자신의 계층 이익을 보존할 것인가 였습니다. 유산 계층은 이를 위해 법치, 산업 생산물의 사적 소유권 등을 주장했습니다. 급속한 산업화로 1830년대 이래 농민들이 이촌향도하여 공장 노동자가 되었는데 특히 여성과 아동에게 극도록 열악한 노동 환경과 날로 커가는 빈부 격차를 참다 못한 노동자들이 노동 조합을 결성하여 자신의 계급 이익을 주장하고 보편적 참정권을 주장하게 됩니다. 이러 참정권 운동의 결실은 1870년대 와서 부분적으로 확대되었으며 1910년대에 와서는 남성의 보편적 참정권이 허용되었지만 여성 참정권까지 허용되는 진정한 보편적 참정권은 1948년에 와서야 실현되었습니다. 이처럼 1인 1표제라는 보편적 정치참여권 제도의 역사는 아직 백년이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학장님은 한국의 1인1표 참정권의 역사는 1948년 이래 실행되었지만, 친일파 미청산으로 인해 정치 지형이 토지소유 계층 중심으로 형성된데다 박정희 이래 수십년 동안 지속된 군사 독재 정권때문에 참된 의미의 민주주의는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서야 비로소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어 학장님은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문제점도 지적해 주셨습니다. 첫째로, 인구 계층별 국회의석 구성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면서 한 예로 변호인 등 법조인은 35,000 명 정도여서 전체 국민 대비 1%도 안되는데 현재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은 전체 국회의원의 30%를 차지하기에 법조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과도하게 대변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국회의원 가운데 남녀비는 8:1이며, 가장 경제적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는 40세 미만 국회의원 수는 국제적으로 꼴지 수준이라는 사실도 지적하셨습니다. 한국 4인 가구 재산이 5억원인 반면, 국회의원 재산은 공시지가로 20억원이 넘는데, 이 역시 인구대비 균등한 의석수 대표성을 가지지 못합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은 수도권에서 55% 득표로 80% 의석수인 120여석을 얻었고 국민의 힘은 수도권에서 45% 득표로 20% 의석수인 20여석을 얻었다고 지적하시면서, 득표율 대표성을 따르자면 민주당은 55%인 77석, 국민의 힘은 63석 정도를 얻었어야 하는데 선거 결과는 국민 각자의 의석수 대표성을 희석시킨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을 지적하셨습니다. 이렇듯 학장님은 한국 선거제도의 문제점을 지적하시면서 51% 투표율이 51% 의석수를 가지고 49% 투표율은 49% 의석수를 가진 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하셨습니다. 또한 대통령 선거 같은 중요한 선거에서는 사표 방지를 위해 결선 투표 도입을 강조하셨습니다. 국민의 다양한 정치적 이익을 대변하는 정당들에게 각자가 대변하는 이익의 비중에 따라 정확하게 권력(의석수)을 배분하는 다당제 활성화라는 정치 개혁 과제를 실현해야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또 1~2위 당 외에 사표(死票)를 방지하기 위해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나오지 않을 경우 2차 결선 투표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셨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를 살펴보면서 투표 제도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국민의 한 표 한 표가 사표가 되지 않고 의석수 배분에 반영될 수 있도록 하는 방향으로 앞으로 정치 제도가 바뀌어 가도록 감시하고 요구하는 것이 우리 시민의 자세라고 말씀하시면서 강의를 마치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학장님께서 지적하신 한국 정치의 문제점과 제시하신 대안에 대해 꼼꼼히 생각해 보면서, 평소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그런 문제점의 해결을 위해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자문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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