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는 "사지가 멀쩡한 사람들이 스스로 자포자기하고 거리에서 뒹구는데 그걸 도와준들 무슨 효과가 있겠느냐"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사지가 멀쩡한데 일하지 않고 거리에 '뒹구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만일 당신의 자녀가 직장을 구해 줘도 적응을 못해 곧 그만두고 거리로 다시 나선다면, 그 이유가 궁금하지 않은가? 직장을 구하라고? 노숙인의 상당수는 주민등록이 말소되거나, 파산에 의한 채무 등으로 신분이 불안정해 정상 취업이 불가능하다. 물론 노숙인 출신을 직장에서 정규직으로 받는 경우도 거의 없을 만큼 우리 사회의 노숙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이 더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사지가 멀쩡하다'고? 결코 아니다. 대부분 사지는 멀쩡해 보여도 걸어 다니는 종합병동이라고 할 만큼 병들고 약해져 있다. 한뎃잠과 비위생적인 상태, 절대적인 영양 부족 등으로 대부분 호흡기나 신경통은 기본이고 암 환자도 적지 않다. 특히 서울역 앞의 노숙인들이 대낮에도 술을 마시고 휘청대는 모습을 보고 이것이 노숙인의 실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태생이 노숙인인 경우는 없다. 알코올이 원인이 되어 노숙인 처지로 전락한 경우는 사실 많지 않다. 오히려 노숙인 생활을 하면서 알코올에 의존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 추운 겨울 서울역에서 밤을 지새우자면 고통을 이길 방법이 사실상 없다. 결국 술에 의존하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알코올중독으로 내몰리게 되는 것이 실체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취업난에 노숙인은 언제나 취업 기회에서 배제되어 있다. 임시직이나 일당 근로라도 하려고 해도 고용주는 노숙인을 마치 범죄자인 양 불편하게 여기며 채용을 꺼린다. ... 가장 그립고 의지하고 싶은 존재가 가족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에게는 가정마저 파괴되어 돌아갈 곳조차 없다. 한마디로 노숙인은 시민사회의 멤버십 카드를 박탈당한 자들이다. 서울역을 걸어가도 그들은 서울 시민이 아닌 것이다. 그 결과 정신적 황폐로 이어지는 삶, 그것이 노숙인의 삶이다.
<거리의 인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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