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알코올중독의 노숙인은 '보통 시민'들이 가장 꺼리고 경원시하는 존재이다. '노숙의 세계'에서 알코올중독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알코올중독이 원인이 되어 노숙의 삶으로 전락한 경우, 사업에 실패하거나 억울하고 원망스런 일을 당해 술로 달래다 알코올중독이 되고 급기야 노숙으로 간 경우, 노숙 생활을 하다가 알코올에 빠진 경우가 그것이다. 원인과 결과의 순서가 어찌 됐건, 결과로서의 알코올중독은 노숙인의 자활을 가장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나는 지극히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서 '보통사람들'과 같이 일상적인 과정들을 거치며 살아왔다. 그러나 과도한 술이 문제였다. 살면서 술에 대한 문제를 조금씩 느끼고는 있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 보아도 이렇게까지 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그러함에도 세월의 흐름에 맞춰 군대에도 가게 됐고, 결혼도 하게 됐다. 하지만 그러한 과정들 속에서 술에 대한 문제가 하나둘씩 불거져 나오기 시작했고 술로 세월을 보내는 날도 많아졌다. 술을 먹고는 싸움질을 하거나 길거리에서 자는 일이 허다했고 결국 이혼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니 노숙의 삶은 이혼을 하기 전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아이들이 하던 소리가 지금도 귀에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다. "아빠, 제발 친구들한테 너희 아빠 술 먹고 어디에 누워 있더라는 소리 듣지 않게 해줘. 창피해서 죽어버리고 싶어"라는 수없는 소리들, 아이들이 그때 했던 소리가 지금도 나의 귀에 들리는 듯하다. 이혼을 하게 되니 인생은 막판으로 접어들면서 자포자기 상태가 됐다. 일상적인 사회인들의 모습은 물론이고 사람다운 모습을 찾아볼 수가 없게 돼 버린 것이다.
아내와 자식, 부모, 형제, 친구, 이 세상 모든 이에게 처절하게 버림을 받게 되고 혼자 거리로 나뒹굴게 됐다. 시쳇말로 '쪽팔리는' 이야기지만 알코올중독에 노숙자가 아닌 노숙자가 돼 술에 취해 험한 몰골로 거리를 누비고 다녔다. 그러다가 쓰러져 119에 실려 가기를 수차례, 몸은 망가질대로 망가졌다. 결국 목에 넘어가는 것이라고는 술밖에 없는데 나중에는 그 술마저도 가지러 갈 힘이 없어 바라만 보는 지경에 이르러, 병원에 입원을 하게 됐다.
급성간염에 복수가 차서 올챙이배와 같이 배가 볼록 나왔다. 숨이 가쁘고 부황으로 온몸이 부어오르고 담낭을 떼어 냈다. 이러한 상황에 더해 급성저혈압, 악성빈혈, 평소에는 없었던 알코올성 당뇨까지 찾아왔다. 그러나 알코올중독자인 나에게는 한 잔의 술 외에는 어떤 것도 소용이 없었으며 앓던 와중에도 술 한 잔이 나에게는 신이요, 부모요, 부인이요, 자식이요, 친구요, 애인이었다.
그러한 술을 마시기 위해 구멍가게에 들어가면 물과 소금에 얻어맞는 것이 다반사였다. 그래도 그 술을 마셔야 살 수 있었다. 이렇게 반복되는 것이 바로 지독하고 악질적인 '알코올중독'이라는 병이다.
나는 이렇게 지독하고 악질적인 알코올중독자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너무나 행운아였다. 병원에 입원을 하게 돼고 치료공동체라는 치료시설로 입소를 하게 돼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내게 찾아온 큰 행운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새로운 삶에 대한 눈을 뜨는 계기도 찾았다.
내게 더 큰 행운은 그렇게 무엇인가를 찾고 있던 중에 인문학을 만났다는 것이다. 나는 소위 새로운 삶을 위한 '굳히기'로 들어갔다. 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중독과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를 찾게 된 것이다. 또한 노숙과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나려면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중독전문가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이후 다시 사이버대학교를 통해 사회복지사 공부를 시작해 올해 2월 28일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획득했다. 그렇게 전문학사학위를 수여받은 후 학사학위를 연계해 삶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지금도 공부를 계속하고 있다.
그러나 노숙과 알코올중독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할 수 없다. 한번 알코올중독은 영원한 알코올중독이다. 그래서 알코올중독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 회복돼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하는 것이 적절한 표현일지도 모른다. 내 인생에서 이러한 계기가 생길 것이라고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을까.
<거리의 인문학>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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