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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19호

[역전 칼럼] 숙제 귀신

by 성프란시스 2023. 11. 15.

숙제 귀신

박경장/성프란시스대학  글쓰기 교수

주말 숙제검사 해주세요. 크흥

 작년 18기로 졸업했는데 아직까지 숙제검사를 요구하는 학생이 있다. 물론 내가 숙제를 내준 것도 아니다. 내주지도 않은 숙제를 검사해 달라고 한밤중과 꼭두새벽에 카톡 문을 두드리는 숙제귀신.’ 이 괴기스런 숙제귀신 이야기를 하려는데 늦은 밤까지 잠 못 이루는 사람은 한번 들어보시라. 다 듣고 나면 당신도 나처럼 이 귀신에 크흥홀려 한밤중 숙제검사를 하지 않고는 잠들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떠돌이 알콜중독자 행패쟁이였다고 소개하는 숙제귀신이 성프란시스대학에 오기 전까지의 이야기보따리를 잠시 일인칭주인공시점으로 풀어보겠다.

 

나처럼 떠돌이였던 아버지는 20대 초에 얼굴도 본 적 없는 엄마에게서 나를 낳아 보성 시골 할머니에게 맡겼어요. 그러곤 영장이 나와 아버지는 입대했지요. 군 제대 후 아버지는 고향으로 내려와 새장가를 들어 8살 때부터 나는 새엄마 밑에서 컸습니다. 처음에는 친자식처럼 잘 돌봐줬던 새엄마도 자신의 자식을 낳은 후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버렸어요. 나를 굶겨 죽일 작정인지 제때 먹을 것도 안 주었지요. 해서 나는 동네 아무 집 부엌에 들어가 솥을 뒤졌고, 남의 밭에서 무나 고구마를 캐먹으면서 허기를 달랬습니다. 하지만 새엄마의 차별보다 더욱 견디기 힘들었던 건 아버지의 무지막지한 폭력이었어요. 그렇게 아버지 폭력에 시달리다 학교를 보내준다는 마을 이장 댁 꼬마머슴으로 들어가게 됐지요. “이 담에 커서 내 손으로 아버지를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며 나는 집을 나섰습니다.

이장 댁 꼬마머슴으로 학교는 다닐 수는 있었지만 도시락 한 번 싸가지 못했어요. 내 삶의 이력을 잘 아시는 담임선생님이 도시락 뚜껑에다 반 아이들 도시락에서 한 숟가락씩 덜어내어 나를 주시곤 했지요. 그렇게 국민학교를 다니던 중, 집안 친척 중에 양복점을 하시는 분이 어린 나에게 일을 가르쳐주겠다며 데려갔어요. 하지만 1년 만에 일을 못한다며 내쫓았습니다. 그 후로 시골에 백씨 아저씨란 분이 대전으로 데려가 중국집에서 배달일과 잡일을 시켰지요. 하지만 3년 동안 죽도록 부려먹고는 먹여주고 재워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라면서 돈 한 푼 주지 않았어요. 십대 중반에 그곳을 나와 부천 신발 깔창 공장으로, 이문동 봉제공장으로, 마침내 이십대에 오징어잡이 원양어선 배를 탔습니다.

배를 타는 동안은 돈 쓸 일이 없어 자연스럽게 돈이 좀 모였어요. 처음 손 안에 목돈을 쥐니 어디선가 첫 월급은 부모님께 드리는 것이란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나면서 이상하게 내손으로 죽이고 싶었던 아버지 생각이 나더군요. 그 길로 십여 년 만에 아버지를 찾아갔어요. 어색한 마주침을 빨리 지우려 제주도라도 다녀오시라고 50만원을 건넸지요. 아무 말 없이 받고는 아버지도 어색했던지 집을 나서더군요. 이복동생과 한 이불에서 자고 있는 밤중에 술 냄새를 피우며 아버지가 들어왔어요. “부모 없이 배 타는 놈 자식도 아니다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마구 집어 던지면서 애꿎은 새엄마와 이복동생에게 화풀이를 해댔어요. 아버지로서 알량한 자존심이 남아있었던 거죠. 한 시간쯤 계속된 아버지의 고성과 폭력이 멈출 기미가 안 보이자 꾹 눌러놨던 내 속 응어리가 터져버리고 말았어요. 눈이 뒤집힌 나는 아버지를 밀쳐 방바닥에 눕히고선 가위를 목에 대고 그만하라고 소리를 질렀어요. “~ 씨발, 이젠 내게 아버지 같은 건 없어하고선 방을 나와버렸죠. 마당을 나서는데, 등 뒤로 가져가 이 새끼야아버지 목소리가 들리면서 만 원짜리 50장이 마당에 뿌려졌어요.

그 뒤로 살려고 인력회사에서 보내주는 곳이면 어디든 갔습니다. 광주아시아자동차 하청, 여수양식장, 목포조선소, 심지어 1년 동안 조직폭력에도 몸담았지요. 그러다가 201550세 되던 해, 막일 나갔다가 큰 돌이 왼손 손목을 덮치는 사고를 당했어요. 그 사고로 장애 6급 판정 받고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됐습니다. 반병신이 된 자신을 보니 불안하고 우울해지고 병적으로 예민해져 매일 술독에 빠져 주위사람과 싸움질만 해댔습니다. 고시원에서도 쫓겨나고 쪽방에서 술에 절어 기초수급자로 살아갔어요. 관할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의 집중관리 대상자로 하루하루 아무 의미 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던 2022년 봄, 복지사님이 성프란시스대학을 소개해주셨답니다.

복지사님의 소개로 마음의 준비도 안 된 채 입학하기는 했는데, 학력이라곤 초등학교 4년이 전부여서, 한글도 잘 모르고 말도 서툴러 그 어려운 대학과정의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게 말이 안됐어요. 도저히 적응이 안 돼, 입학하자마자 학교를 가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외톨이로 지냈습니다. 한 달쯤 지나니 자동 퇴학처리 됐다고 연락이 오더군요. 그런데 나도 모르게 속에서 부아가 치미는 거예요. 내게 한 마디 묻지도 않고 퇴학을 시키다니! 술 먹고 실무자에게 전화 걸어 다짜고짜 따졌습니다. “그러면, 수업 전에는 절대로 술 안 드시고 올 수 있으세요?” 그러겠다고 다짐하고 조건부 재입학을 했지요.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순철이가 대학생이 되더니 세상이 놀라고 나도 놀랄 일이 벌어졌어요. 순철이가 해까닥 뒤집힌 겁니다. 크흥~~

오전에는 중구 복지센터에서 단주교육과 컬러링북 색칠하기와 일기쓰기 프로그램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인문학수업에 참석했어요. 순철이의 하루가 싹 다 바뀐 겁니다. 특히 처음해보는 색칠하기가 재밌었어요. 처음엔 바탕그림에 채색만 하다가 신문지 바닥에 도화지를 올려놓고는 물감으로 아무 그림이나 막 그리기 시작했지요. 주로 나무나 꽃부터 그리기 시작했어요. 내가 봐도 꼭 초등학교 4학년생이 그린 것 같더라고요. 잠도 오지 않아 그 중에 조금 괜찮다 싶은 걸 용기를 내 오밤중에 성프란시스대학 인문학 온라인 카페에 올렸어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카페에 들어갔더니, 이런! 동기들과 자원활동가 그리고 교수님의 칭찬 댓글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태어나서 처음 받아보는 칭찬에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 후로 시도 때도 없이, 맨 정신이든 술에 취해서든 마구마구 그림을 그려댔습니다. 어쭙잖게 제목도 부쳤지요. ‘루카친구 문순이’ ‘민들레 꽃말 변함없는’ ‘6월 크리스마스’ ‘용암 이글거림’ ‘뜨거운 흐름’ ‘오만’ ‘사랑하라’ ‘소나기 가옥’ ‘방향’ ‘시도 때도 없이 피고 싶은’ ‘여의도나루공원에서 카메라 들고 폼 잡는 그녀’ ‘그리운 눈동자’ ‘카멜레온’ ‘반짝이 하늘별만큼 빛나길’ ‘흑막걸리 반죽 연산홍 보조출연  우울한 마음 달래기’ ‘용건만 간단히’ ‘연인’ ‘입학식’. . . 어느 샌가 하루 이틀 카페에 그림을 안 올리면 왜 안 올리느냐고 야단이 났습니다. 글쓰기 교수님은 한술 더 떠 그림에 대한 간단한 감상까지 글로 써보라고 채근까지 했어요. 과분한 관심과 칭찬에다 내 그림을 기다린다는 부담감까지, 난생 처음 느껴보는 이상야릇한 흥분과 설렘으로 가뜩이나 불면증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하얗게 새는 날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그래도 신이 나 마구마구 그림을 카페에 올렸어요. “숙제 검사해주세요. 크흥~~”

 

이렇게 해서 숙제귀신이 탄생하게 되었다. 어느 밤 숙제귀신이 자화상을 그려 카페에 올렸는데, 굵은 터치로 이목구비 윤곽만 있는 얼굴에 칼자국 마냥 온통 붉은 선들이 그어져 있었다. 나무와 풀꽃 같은 따듯하고 밝은 그림만 보다가 마주한 이 기괴한 자화상은 충격 그 자체였다. 그 충격으로 우리는 숙제귀신을 서울역 피카소, 서울역 바스키아로 불렀다. 그림이라곤 복지센터에서 단주교육의 일환으로 바탕 그림에 색칠하기밖에 해본 적이 없는 귀신에 우린 모두 홀린 것이다.

숙제귀신에게 홀린 건 그림뿐이 아니다. 한글 맞춤법이 무시된 그의 거침없는 입말체 시에도 신기(神氣)가 흠씬 배어있었다.

 

내동댁/ 김순철(인문학 18기)

봄 하늘 바라보니 꽃구름 몽실몽실 햇빛이 보일듯말듯

갓시집온 새색시 내동댁 못댄서방 주색잡기 버릇에 동네방네 얼굴둘곳없어 치마자락 얼굴을 묻고 밤하늘 바라벼며 시집잘못온죄 이제와서 누굴믿고 한많은 내팔자야 시어머니 시집살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네 봄가고 미운서방 어서죽어라 신령님께 빌어보세

어린 나이에 아버지 둘째 각시가 돼 죽어라 고생만 한 새어머니 내동댁에 빙의한 듯, 숙제귀신의 말글에는 무당의 비손 같은 주술의 힘이 느껴졌다.

 

2020년 성프란시스 졸업 동문들의 글을 모아 펴낸 책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가 그 문학성을 인정받아 2022년 제 70회 서울시문화상(문학부분)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우리는 책에 실린 글 중 55편과 책에 실리지 않은 16-18기 졸업생과 재학생 글 11편을 추려 총 67편 글에, 민예총 소속 화가 5분과 7기 동문 신웅 화백이 재능기부를 한 그림을 입혀, 국회의원 회관에서 2022926일에서 30일까지 <거리에서 움튼 글, 그림으로 피어나다>라는 제목으로 시화전을 열었다. 개막식 때 7명 여야의원들이 참석했는데, 사이좋게 나란히 앉아 끝날 때가지 한 분도 자리를 뜨지 않는 국회에선 보기 드문 장면을 연출했다. 그들을 진중하게 붙들어 맨 건 의미와 감동, 그리고 진실이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뭉클했던 건 전시회장에 들어서는 오른쪽 입구 첫 부스에 숙제귀신의 개인전시공간을 마련했다는 점이다. 중구에서 특별보호관찰 대상으로 숙제귀신을 정성으로 보살펴 주었던 사회복지사 두 분도 꽃다발을 들고 전시장을 찾았다. 개인전 부스 앞에서 맞이한 숙제귀신 손을 꼭 잡고 두 분은 할 말을 잊은 채 한동안 눈물만 흘렸다.

며칠 전 밤에 교수님 칭찬에 마음이 뜨거워 집니다 글을 써야 하는데 글쓰는 게 어설퍼 그림으로 숙제 올려 습니다카톡 문자와 함께 새로 그린 그림 두 점을 보내왔다. 선생님 그림엔 시가 있다고 답글을 보냈더니, “시 숙제는 넘 무서워요 그래서 그날 기분을 글대신 그림으로 전해드립니다고 했다. 숙제귀신이 시 숙제를 무서워한다고? 나는 엄살 떠는 숙제귀신의 진짜 속내를 안다.

 

내가  시인이 될까 무섭다/ 김순철 (인문학 18기)

 

내가 아파할까 두렵고 나는그냥 나였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지켜보는게 부담스럽고 나올 질책을 당하고 싶지않습니다

그저 기다리는 누군가에게 양보하며 오래생각하고 느릿느릿 울어도 보고

시을 죽도록 미워하며 쓰고 또 눈물 지저예으며 존재하다 춤추다 노래하며

아리랑 3박자 놓치지 말고 상사화 잎사랑 그리며

아차산 바보 순철 평강공주 그리는 멍청이 애타는 밤 참이슬 내리는 밤

그리 세어 보렵니다

 

숙제귀신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크흥그래도 아직 잠들지 못할 것 같은 사람은 여기를 클릭해 마지막 숙제검사를 해보시라. Good Night!

https://youtu.be/jCCnFAGZE_k?fbclid=IwAR168Q1E7CQCVx9Z46AUCo0jtrJ_aaBFo4j8jquQSvjcl2eJxXK5si1JlL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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