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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살아 있는 ‘노숙자 예수’를 책으로 다시 만났다. 신간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에서다. 제목만 보면 서정성 짙은 시화집 같은데 내용은 그 대척점에 서 있다. 하루하루가 힘겨운 노숙인들이 직접 쓴 시와 산문 167편이 실렸다. 무엇 하나 허투루 읽을 수 없을 만큼 사연 사연이 곡진하다. 국내 최초 노숙인 문집이란 설명이 번거로울 정도다.
노숙인이란 단어에 선입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그들을 내려다보는 동정적 시선도 온당하지 않다. 고단한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이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출신·환경이 각기 다르고, 거리로 내몰린 연유도 제각각이지만 불우한 어제를 이겨내고 새로운 오늘을 준비하려는 다짐만큼은 하나같다.
물론 이들의 현실은 고달프기만 하다. ‘장대비 속에 긴 배식줄/빗물바아압 빗물구우욱 비잇무울 기이임치이.(중략) 오로지 먹는 것 쑤셔 넣는 것. 빗물 반 음식 반 그냥 부어 넣는 것이다.’(권일혁 ‘빗물 그 바아압’) ‘밥 한 술 해결을 위해 찬송가와 거래를 하는’(유창만 ‘밥 한 술’) 일상이다.
일자리가 변변할 리도 없다. 서울역 생활 25년, 고물을 수집하는 노기행씨의 ‘이놈의 세상’을 보자.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하지만 그리 할 만한 일이 많지는 않다.(중략) 내 일이 없으면 내일이 없다. 추신:헌옷이나 잡다한 물건은 나를 주시오.’ 각박한 삶에서 걷어 올린 유머가 반짝인다. 폐지 실은 리어카를 끌고 서울역에서 출발해 조치원·청주·대전을 거쳐 해운대까지 왕복한 박진홍씨도 있다. 바다가 그에게 물었다. “너 왜 왔냐?” 그가 대답했다. “고물일 하고 있는데 너무 힘들고 네가 너무 보고 싶어가지고.”
이 책의 고갱이는 투명인간·잉여인간으로 살아가던 노숙인들이 평범한 일상으로 복귀하는 모습이다. 특히 거울 관련 대목이 인상적이다. 자신의 벗은 모습을 볼 수 없어 거울을 주먹으로 내리쳤던 고(故) 고성원씨는 “난 요즘 거울을 보기 시작했다. 기지개를 켜듯 조금씩 조금씩 자아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 서○미씨도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지난 시간과는 다른 시간을 살아가리가 다짐해본다”고 썼다. 자신을 직시할 용기를 찾은 것이다.
[출처: 중앙일보] [박정호의 문화난장] 예술과 철학 배우는 ‘홈리스 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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