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경 장(성프란시스대학 글쓰기 교수, 문학평론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 셋’을 노트에 적어보라고 했다. 그러곤 교실을 돌아다니며 나는 책상 위에 펼쳐놓은 선생님들의 노트를 보았다. 그 중 화인처럼 내 가슴에 찍힌 불같은 단어 셋을 8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여자’ ‘엄마’ ‘새엄마’
노트에 적은 단어가 지시하는 구체적 대상(기의, 의미내용)이 아니라 단어 그 자체(기표, 형식기호)에게 왜 싫어하게 됐는지 그 까닭을 말해보고, 화도 내보고, 기타 하고 싶은 말이면 무엇이든 실컷 해보라고 했다. 말이라고 했지만 실은 말을 그대로 글로 옮겨 적는 글쓰기연습이었다. 하지만 그 불꽃같은 세 단어를 쓴 선생님은 수업 내내 창문 밖을 바라볼 뿐 단어와 화해하기를 거부했다. 그 수업뿐만 아니라 한 학기 글쓰기수업 내내 수업은 성실하게 참여하면서도 글 쓰는 건 무엇이든 거부했다. 물어봐도 “그냥 안 씁니다. 써 본 적이 없습니다”가 대답의 전부 일뿐, 이유 있는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다만 어느 수업시간엔가 노트에 무언가를 끄적이기에 다가가보니 만화를 그리고 있었다. “어! 그림을 잘 그리시네요.” “잘은요. 뭐.”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하시나 봐요.” “그림이라고까지 할 것도, 그냥 만화입니다.” “예, 그럼 선생님은 지금부터 수업시간에 글은 안 써도 좋으니 만화를 그려보세요.”
노숙인이라 하기엔 너무 젊은 20대 후반의 선생님. 외모와 차림새는 말끔한 편이나 벽돌 색 티 하나로 그해 여름을 나신 선생님. 끝내 선생님은 다른 동기 분들이나 나와도 눈 한번 맞추거나 말 한번 제대로 섞지 않은 채 그해 1년을 보냈다. 선생님은 어린 시절 남동생과 둘이서 친척집을 전전하다 십대 중반부터는 둘만 따로 나와 살았다는 사실을 학무국장을 통해 뒤늦게 알게 됐다.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아도 왜 그가 제일 싫어하는 단어가 ‘여자, 엄마, 새엄마’였는지 대충 그림이 그려졌다. 그런데 이듬 해 나는 선생님에게 여자 친구가 생겼다는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 세 단어 중 적어도 여자와는 화해했나보다.’ 나는 내심 기뻤다.
4년 전 ‘가족’으로 주제글쓰기를 한 어느 수업시간이었다. 한 선생님이 제출한 글을 본 순간 나는 다 타버려 까맣게 잊었다고 여겼던 그 세 단어가 잿더미 속 불씨로 다시 지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번엔 그 붉은 세 단어는 시 속에 불덩이처럼 박혀있었다.
마귀 찾아 스무고개
김0일
일곱 번째 고개 입구에서 한 여인을 만났다.
나의 어머니라 한다.
여덟 번째 고개 입구에서 그녀는 떠났다.
눈물은 나지 않았다.
여덟 번째 고개를 지나던 어느 밤
한 여인이 나의 이름을 목놓아 불러댔다.
‘마귀가 왔다~’
나는 담요에 말려져서 숨겨졌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왔다.
아홉 번째 고개 입구에서 다른 여인을 만났다.
나의 어머니라 한다.
난 달구지를 끄는 소처럼 살게 되었다.
열 번째 고개를 돌아가기도 전에 그녀는 떠났다.
눈물이 나진 않았다.
열두 번째 고개를 내려가다 또 다른 여인을 만났다.
나의 어머니라 한다.
그녀의 품에 안겨 젖을 물었지만 따뜻하진 않았다.
그녀가 온 이후로 네 시간 이상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신데렐라 콩쥐팥쥐가 동화 속 얘기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열다섯 번째 고개 중턱에서 그녀는 떠났다.
눈물 따윈 나오지 않았다.
스무 번째 고개를 내려올 무렵
알 수 없는 장소로 이유도 모른 채 끌려갔다.
남녀노소가 모여 있었고 몇 명의 여인이 나를 보며 울어댔다.
한 여인이 유난히 더 울어댔다.
이상하게 눈물이 계속 나왔다.
그때 그 마귀였다.
이 글을 쓴 선생님도 40살로 노숙인 선생님 중 젊은 축에 속한다. 우리 선생님들 대부분은 어릴 적 가족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잊고 지우고 싶지만 몸부림칠수록 올가미처럼 파고드는 가족에 대한 기억. ‘홈리스(homeless)'는 거리노숙이라는 노숙인의 현상보다 더욱 근본적으로 노숙인의 본질을 지칭한다. 거리 노숙인의 절반 이상이 이미 어렸을 때부터 가정(home)을 잃었거나, 결손(편부모, 계부모)가정에서 성장했다는 연구보고서를 보았다.
어떤 문제를 말이나 생각으로 하는 것과 그것을 글로 써보는 것은 매우 다르다. 글에는 말과 생각에는 없는 흔적이 남기에 글을 쓸 땐 자세부터 달라지기 마련이다. 맞춤법, 문법, 어법은 차치하고라도 대상이나 문제에 대한 깊고 넒은 성찰 없이는 한 문장도 쓰기 어려운 것이 글쓰기이다. 넘어진 자는 바닥을 짚고 일어서야 하는 법. 나는 ‘가장 싫어하는 단어’와의 화해를 통해 또는 ‘가족’에 대한 글쓰기를 통해 선생님들이 넘어진 그 기억의 바닥으로 내려가 다시 짚고 올라오기를 바랐다.
선생님이 이 글을 통해 마귀였던 ‘여자, 엄마’와 화해를 했는지 나는 모른다. 다만 그 아프고, 지워버리고, 잊고 싶은 기억의 바닥으로 내려간 것만은 분명하다. 문집에서 책으로 그 기억의 흔적은 더욱 또렷이 남을 터이니 선생님은 언젠가 또 그 단어들과 마주치게 될 것이다. 마주한다면, 피하지 않는다면, 이미 문제의 반은 해결된 것이다.
그해 초부터 선생님은 일반인 두 명과 함께 밴드활동을 시작했다. 선생님은 보컬을 맡았는데 호소력 짙은 허스키한 음색이 아주 매력 있었다. 그해 연말 <인문학 문예발표회> 때, 선생님과 나는 통기타 두 대로 안치환의 <인생은 나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와 김광석의 <내 사람이여>를 불렀다. 글 쓸 때도 보았지만 알콜릭인 선생님의 손은 기타 줄보다 더 심하게 떨렸다. “그럴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네 삶의 끝자리를 지키고 싶네. 내 사람이여 내 사람이여 너무 멀리 서 있는 내 사람이여.” 마지막 소절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는 손보다 더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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