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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제3호

<한 우주를 구하는 일, 자원활동가>

by bremendhk 2020. 10. 26.

글 / 김연아
인터뷰어 / 강민수, 김연아
인터뷰이 / 자원활동가 김아란
(민주평통자문위원)

- 성프란시스대학과의 인연은 언제부터였나요?

“다시서기센터에서 운영하는 ‘문화카페 길’이라는 북카페를 먼저 알게 되었어요. 평소에 서울역 노숙인을 지원하는 기관이 있다는 얘기를 듣고, ‘나이 들어서 저기서 활동해야겠다.’ 생각만 했었죠. 직장을 다니니까 할 기회가 없었어요. 그러다가 카페가 후암동에 생겼는데, 거기가 딱 저희 집 앞이었던 거예요. 카페 건물 3층이 성프란시스대학이고, 2층 카페는 성프란시스대학 재학생 선생님들(이하 선생님들)이 4시간씩 자활근로를 하는 공간이었어요. 거기가 북카페라 저는 책 빌리려고 많이 다니면서 선생님들하고도 친해졌었죠. 그런데 어느 날 카페에서 성프란시스대학 회의를 하고 있더라고요? 저녁에 심화 강좌를 하려고 하는데, 주민들도 함께 참여할 방법을 찾고 있었어요. 그때 카페 매니저 맡고 계시던 김순자 선생님이 저에게 의견을 물어보셨어요. 제가 자주 갔으니까요. 그렇게 해서 참여한 행사가 매우 많았어요.”

 
- 예를 들면요?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게 스케치북 토크였어요. 자원활동가들이 와서 진행한 일종의 토크쇼였는데, 선생님들과 주민들한테 스케치북 하나씩 나눠주고 질문을 하면 그걸 그림으로 그려도 되고 글로 써도 됐었죠. 골든벨처럼 스케치북에 써서 올리는 방식으로요. 한번은 ‘내 인생의 봄날은 언제인가’ 라는 질문이 있었는데, 항상 선생님들을 모시고 오던 활동가 한 분이 보리밭을 그린 거예요. 중학교 2학년 때 보리밭에서 첫사랑과 첫 키스를 했다는 얘기였어요. 그래서 보리밭이 인생의 봄날이라는 거였죠. (웃음) 그리고 선생님들이 대부분 다 무엇을 그렸는지 아세요? 집하고 가족을 그렸어요. 결혼하고 싶다, 가족을 만나고 싶다. ‘내 인생의 봄날’은 결혼했을 때, 가족이랑 같이 집에서 살았을 때였던 거죠. 이거 말고도 서울예대 기악 전공 학생들이 와서 음악회도 하고, 노숙 생활을 경험한 선생님들로 이루어진 봄날밴드도 공연을 했었어요. 낮에는 홈리스 잡지 ‘빅이슈’를 판매하시고, 저녁에는 밴드 활동을 하시는 거예요. 작사, 작곡도 직접 하시고, 되게 감동적이었어요. 아, 또 카페에서는 바리스타 교육도 하고 대학생들이 와서 선생님들이랑 독서 토론 모임도 했어요. 그 전○○ 선생님(15기 졸업생)도 여기서 바리스타 교육받아서 자격증 따셨잖아요.”

 
- 어떻게 자원봉사에 관심을 두게 되셨어요?

“제 인생자체가 자원봉사라, 하하(웃음). 현재 대학원에서 공공정책학을 공부하고 있는데, 거기서 아예 시민사회자원봉사를 전공으로 선택했어요. 한번은 성프란시스대학 문학 수업을 하셨던 안성찬 교수님이 중동의 민주화 운동에 대한 특강을 하신 적이 있는데,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 관해서 얘기하셨죠. 튀니지와 터키, 알제리 등 민주화 운동을 했지만 독재자가 없어졌을 뿐이지 제도는 그대로였던 곳도 많았대요. 시민사회가 얼마나 성숙하고 얼마나 탄탄한지에 따라 민주주의 혁명의 결과가 달라진다는 거죠. 사람들이 깨어있어야 한다는 건데, 저는 시민사회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정당이 바뀌어야 세상이 바뀔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고 나서 재스민 혁명을 주도했던 4자연대기구 인사분들을 직접 만나볼 기회가 있었는데, 그분들도 정당으로 들어가서 활동해야 한다는 얘기를 하셨죠. 저는 세상을 바꾸는데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정당에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가서 보니 깨끗하게 정치를 하려고 하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이 정말 많이 필요해요. 그래서 유럽 같은 경우엔 정치 자원봉사도 자원봉사로 인정되는데,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아요. 정치 자원봉사라고 하면 이권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 같아요. 정당에서 활동하는 대부분의 자원봉사자는 일반 시민이고, 대가 없이 하는 경우도 많은데 말이에요.

또 자원봉사를 학생들이 의무적으로 봉사시간 채우는 활동으로만 생각하죠. 그런 활동이 실제로도 많고요. 어떤 기관에서는 봉사자를 일꾼으로 생각해서 일을 너무 많이 시키기도 하고요. ‘저 사람들은 이유가 있으니까 하겠지.’라며 봉사자의 순수성을 인정해주지 않아요. 그렇게 사회적으로 인정을 못 받고 가치가 훼손당하는 과정을 겪다 보니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자존감이 떨어진 시기도 있었어요. 근데 사실 자원봉사 하는 분들 보면 전부 뛰어난 사람들이거든요. 자발적으로 봉사활동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시민성이 높다는 뜻이잖아요. 전 그런 의식 자체가 뛰어난 거고 능력이라고 생각해요. 돈으로 대가를 받지 않는다 뿐이지, 우리가 제공하는 노동력 자체가 돈이나 마찬가지인 거죠.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인식을 바꿀 수 있을까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에, 자원봉사를 전공할 수 있는 학교를 알게 된 거예요.

 
- 아, 자원봉사를 전공으로요?

네. <재난구호활동에 있어서 자원봉사가 미치는 영향에 대한 정책적 방향연구>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있어요. 예를 한 가지 들자면, 2005년 미국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 피해가 심각했잖아요. 재난 구호는 통신이나 기반 시설이 얼마나 빨리 복구되는가가 관건인데, 그 당시 통신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던 젊은이들이 자원해서 봉사를 간 거죠. 보통은 자원봉사자가 가면 재난구호물품을 나눠준다거나 명단 작성 같은 일을 하는데, 이 사람들은 통신에 대해 너무 잘 아니까, 단기간에 통신을 복구한 거예요. 그게 전체 재난 복구 속도를 엄청나게 높여줬어요. 그래서 재난구호현장의 복구가 잘된 사례로 항상 이 사례가 나와요. 국내의 경우엔 2007년에 발생한 태안 기름 유출 사고 때 자원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1200만 명이었다고 해요. 우리나라 인구가 5000만 명인데 말이죠. 해외에서도 주목하는 사롄데, 기름띠를 걷어낸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거든요. 근데 자원봉사자들의 힘이 모여서 기름띠를 싹 다 걷어냈어요. 회사나 자원봉사센터에서 움직인 것도 있지만, 자발적으로 혼자 간 사람들도 많았어요. 그러니까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공공기관에서 대책을 세울 때, 세세하게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는데, 그 빈틈을 자원봉사자들이 다 채워준다는 거죠. 이번 코로나도 마찬가지였어요. 자원봉사센터에서 2월 초부터 움직여서 상황 파악하고 매뉴얼을 만든 게 방역수칙이 된 거거든요. 이렇듯이 저는 자원봉사자들의 자발적인 참여의식이 얼마나 사회에 기여를 많이 하고 중요한지 알리고 싶어요.”

 
- 그 생각이 성프란시스대학까지 미치게 된 건가요?

“제가 용산구 자원봉사센터에서 캠프 상담가로도 활동하고 있어요. ‘캠프’는 동 단위로 활동하는 자원봉사 모임인데, 지역 특성에 따라서,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반찬을 만든다거나 미용 봉사를 해요. 저희 캠프는 거리 캠페인도 했었고요. 캠프 활동 중에 자원봉사자들이 받는 교육이 있어요. 그룹별로 모여서 어떤 정책을 바탕으로 자원봉사를 해야 할지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인데, 저는 항상 코드가 노숙인인 거죠. 근데 노숙인 관련 정책은 그 어디에서도 생각을 못 하거든요. 노숙인은 사회에서 가장 하층의 비주류이고 사회에서 인간적인 존재로 제대로 인정을 못 받는 그룹이잖아요? 저는 그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거예요. 자본주의의 어두운 부분이지만, 사회가 발전할수록 필연적으로 노숙인은 생겨날 수밖에 없거든요. 그러니 그 사람들이 노숙하는 기간을 최대한 줄이고, 어쩔 수 없이 그런 상황으로 간다고 하더라도, 의지를 일으켜 세워서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거죠. 제가 길 가다가 본 건데, 교보문고 앞에 ‘한 사람이 온다. 우주가 내게로 온다.’라는 문구가 걸려 있었어요. 한 사람이 한 우주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우주 하나인 그 한 사람이 노숙 생활에서 사회로만 복귀해도 하나의 우주를 만든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을 살리는 거라고요. 저는 생명을 살리는 것과 같은 일이라고 봅니다. 물에 빠진 사람 목숨을 구해주는 일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죠. 사회적으로 존재의 가치, 존재의 의미가 제일 바닥인 사람이 다시 사회구성원으로 복귀해서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역할을 하게 됐을 때의 그 사람의 마음을 생각해보면 그들의 목숨, 그러니까 사회적인 생명을 살리는 일인 거예요.”

 
- 성프란시스대학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요즘에는 지자체나 종교단체에서 무료급식소를 운영하고 노숙인 쉼터가 있으니까 밥 먹으려고 하면 먹을 수 있고, 어디 들어가서 자려고 하면 잘 곳도 있어요. 근데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죠. 우리도 의지가 사라지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지잖아요. 일상생활 하다가 우울증이 오면 공통적인 증세가 있어요. 아무것도 안 하는 거죠. 돈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자기가 어느 한계에 부딪히거나 힘들 때, 이 상황 자체가 견디기 힘들다고 생각하면 무기력해진다고요. 누구나요. 노숙 생활을 시작했어도 처음엔 의지가 있죠. 근데 벗어날 길이 없으니까 의지가 약해지는데, 이럴 때 옆에서 용기를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어떨까요? 가장 힘들 땐 친구 한 사람, 다 이해해주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친구 단 한 사람이 나를 끄집어내 줄 때가 있잖아요. 그런 것처럼 성프란시스대학은 선생님들 곁에서 지키고 서 있는 친구 한 사람이 되어줘야 한다고 생각해요.

작년 9월 EBS 다큐프라임 팀에서 방송 촬영을 하기 위해 한 학기동안 수업을 함께 들었어요. 이 촬영을 하고 간 후 하는 얘기가 이제 노숙인이 눈에 들어온대요. 그전에도 똑같이 곁에 있었겠죠? 근데 한 번도 쳐다본 적이 없다는 거죠. 보통 일반 사람들은 노숙인이 있어도 의식을 안 하고 살아요. 그런데 한 분이 이젠 서울역, 용산역을 지날 때 노숙인이 눈에 들어오고 ‘저 사람도 나와 같은 ’사람‘이구나.’라고 생각이 바뀌었다고 해요. 그럼 그분들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질 수 있잖아요. 이렇게 인식 자체를 바꾸는 일도 성프란시스대학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 왠지 자원봉사라고 하면 거창하게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하기에 자원봉사라고 하면 김치 담가 주기, 도배 장판 해주기 이런 걸 떠올리잖아요? 그런 활동들도 물론 중요하지만, 거기엔 보통 상호작용이 없어요. 그냥 내가 만들어서 전달만 하면 끝나요. 일회적이고 일방적인 만남이 되기 쉽죠. 그건 봉사에 가까워요. 근데 성프란시스대학에선 달라요. 같이 공부를 하는 학우로서 함께한다는 느낌이 들거든요. 어떤 수평적으로 연결된 끈이 있고 1년 동안 이어지는 지속적인 관계도 있고, 그래서 ‘자원봉사’라는 말 자체가 안 맞아요.”

 
- 저도 1년을 하고 나니 ‘자원봉사’가 이젠 이상하게 들려요. (웃음)

“그래서 우리는 자원활동가라고 하죠. 자원봉사라고 하면 상하 관계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고, 객체와 주체를 분리한 것 같기도 하거든요. 해보면 알겠지만, 자원봉사는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일방적으로 서포트하는 게 아니에요. 그냥 상호작용이에요. 왜냐면 활동을 하면서 자기도 변화되거든요. 성프란시스대학의 자원활동가와 선생님들 사이엔 정신적인 교감이 있어요. 내가 스스로 참여해서 선생님들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 그 자체에서 보람을 느껴요. 성프란시스대학 선생님들이 바뀌어 나가는 과정을 보면서 기쁨을 느끼고요. 선생님들의 자존감이 높아지면, 내 자존감도 높아져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느끼고요. 지금 사회학에서는 이런 참여의식, 인간관계에서 오는 신뢰도 다 사회적 자본으로 쳐요. 돈만 자본이 아니고, 시민성, 연대의식 이런 것 전부 다요. 자원활동가들과 선생님들이 맺는 지속적인 관계, 상호작용, 그거 자체가 저는 하나의 커다란 자원이라고 봐요. 이걸 가치 기준으로 본다고 하면 저는 성프란시스대학이 엄청난 역할을 한다고 보는 거예요.

이게 실효성이 있는 사업이냐를 어떤 시선으로 볼 수 있을까요? 선생님들이 실질적으로 사회에 복귀하는 건 관련 전문기관과 연계가 되어야 하겠죠.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다시 일어서고 싶은 마음이 생겨나야 한다는 거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성프란시스대학 과정은 1년인데, 1년 사이에 변하는 정도는 사람마다 다르겠죠. 눈에 확 띄는 성과가 없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마음의 변화가 있다는 건 선생님들이 쓰신 글을 읽거나 대화를 나눠보면 알 수 있어요. 그거 하나하나가 다 결실이죠. 이번에 출간한 문집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도 그 일환이겠죠.”

 
- 김아란 선생님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꿈이 있으신가요?

“제 꿈은 노숙인 일자리 협동조합을 만드는 거예요. 그리고 자원봉사와 관련해서 자원봉사가 얼마나 세상을 바꿔나가고 있는지 학문적으로 연구하고 지속적으로 알리고 싶어요. 사람들이 노숙인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뭐냐고 물어보면, 저는 일자리라고 대답해요. 고맙게도 지금 서울시에서 일자리를 제공하지만, 인원이 한정되어 있고, 기간도 1년이 채 안 돼요. 그건 지속 가능하지 않잖아요. 근로 시간이 짧더라도 거리 노숙인을 위해 지속 가능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단 일자리가 생기면 노숙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요.

제가 풀뿌리조직 지원하는 일을 계속해 왔어요. 풀뿌리조직들은 보통 큰 단체들이 아니어서 다 자발적인 참여로 돌아가는데, 결국엔 그게 다 자원봉사인 거죠. 그들의 시간과 노동이 투자되어 만들어지는 건데, 그런 단체들이 사라진다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성프란시스대학도 올해 그런 위기를 겪었잖아요. 기업 후원이 끊겨서 당장 강의실을 빼야 했는데, 강의실이 없어서 노숙인 무료진료소 공간 일부를 저녁에 임시로 사용하고 있죠. 현재로선 기업 후원금이 끊어졌다는 게 가장 걱정돼요. 15년 동안 이어져 왔고, 수많은 선생님들, 수많은 자원활동가들의 추억과 경험이 다 녹아 있는 곳인데 그게 없어진다는 건 너무 불행한 일인 거죠. 그래서 이걸 어떻게 해서든지 살리고 싶고, 지속 가능하게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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