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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성프란시스대학 글쓰기에 대한 논문이 나왔습니다

by vie 2022. 1. 11.

한국현대문학회의 논문집 <한국현대문학연구>에 '노동시 확장의 한 사례로서의 홈리스 글쓰기: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의 시에 대하여'(허요한)라는 제목의 논문이 실렸습니다(http://www.literature.or.kr/mook.html). ^^

노동시의 연장선상에서 성프란시스대학의 글쓰기를 바라본 논문인데, <거리에 핀 시 한 송이 글 한 포기>에 실린 글들을 나름대로 해설한 부분이 특히 흥미롭습니다. 그 가운데 몇 부분을 소개합니다.


알바 갔다 오는 길 전철을 탔다
익숙한 냄새가 풍긴다
냄새는 점점 심해진다
안 씻고 안 갈아입은 사람이 타고 있다
내렸으면 하는데 안 내린다
아! 내렸다
그런데 냄새는 여전하다
왜 내 얼굴이 화끈거리지
아직 내리려면 멀었는데

- 전경국, 그림자 전문


인용한 글에서 한 노동자는 지하철 안에서 익숙한 냄새를 맡는다. 이 냄새는 명확히 계층을 구분하는 하나의 표식이 되는데, 냄새의 주인공이 지하철에서 내렸음에도 냄새는 여전히 남아있고, 화자는 그것이 자신에게서 풍기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공포와 부끄러움을 느낀다. “안 씻고 안 갈아입”는 것, 즉 사회의 질서에서 벗어난 불결함이 공포인 이유는 냄새가 알바 노동을 하고 있는 화자를 ‘노동자 이전의 삶’으로 끌고 가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언젠가 본인도 몸에 지니고 있었을 그 “익숙한 냄새”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의 것은 아닌 “익숙한” 것이 되었지만, 그림자처럼 언제나 따라다니는 몸의 감각으로 남아있다. 이 홈리스 노동자가 ‘알바’가 아니라 정규직 임금 노동을, 혹은 자영업을 할 수 있었다면 그 냄새에 화끈거리게 되었을까? 홈리 스가 할 수 있는 노동인 ‘알바’로는 인정받기 어려운 노동자성, 노동자 간의 위계를 이 글은 드러내고 있다. 심지어 같은 ‘알바’라도, 이 냄새에 ‘익숙한’ 알바와 그렇지 않은 알바가 존재할 만큼, 사회의 계층화는 세분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

1-분당에 있는 KT 본사 안내 로봇 음성 녹음(Time/2만)
2-미국 대사관 비자신청 대신 줄 서기(Night/10만
3-부천프린스관광호텔 빠찡꼬 가짜 손님(Time/8천원)
4-강원랜드 카지노 대신 예약해 주기(15만, 이백 번 안쪽 순번)
5-대치동 행복교회 신자 머릿수 채우기(3만, 일요일만)
6-부천시 상동 참야콘갈빗집 시식 손님(1만 5천, 갈비 실컷 먹고)
7-내비게이션 행사 ‘야매’ 고객(4만)
8-노량진 공인중개사 학원 가짜 수강생(3만 5천)
(중략)
17-부평역 동방뷔폐 예식장 하객 대리 참석(3만, 뷔페 배 터지게 먹고)
18-강남성모병원 영안실 상주 대행(All night/18만)
19-한강예술 엑스트라(A/4만 2천, N/7만, <바람의 나라>, <대왕세종>등등)

이외에도 많지만 저는 이것을 직업으로 생각하지 않고 시간 날 때마다 고정적인 일자리를 꾸준히 노크하고 있습니다. 몸은 아파도 오늘도 열심히 공부하면서 힘차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파이팅!!!

- 故유창만, 저승이가 사는 법 부분


이 글은 노동에 관한 시이지만 마치 형식 실험 시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이 글이 현재적 관점에서 주는 신선함은 ‘고정적 일자리’에 가 닿지 못하는 화자가 경험한 단기 알바 노동의 목록들이 청자에게도 낯설지 않을 것이라는 점, 그리고 이 노동 목록을 통해 사회의 단면들을 익살스럽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화자인 ‘저승이’는 이승에 적을 두지 못하지만 이승에서 ‘알바 하는 시간만큼’은 머물 수 있는 존재이다. 그러나 이승에서도 이승의 존재로는 드러 날 수 없고 누군가의 “대신”, “가짜”, “대리”, “대행”, “야매”, “엑스트라”의 형상 으로, 이승의 사람을 (혹은 사람을 닮은 로봇을) 연기하는 한에서만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저승이’의 알바 목록은 이 사회의 소비자에 대한 허상을 드러 낸다. 소비자는 판매자의 상품을 구매하는 위치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자리지만 사실 소비자(됨)마저도 알바노동의 일부이며, 상품시장에 속 박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이런 알바 노동을 “파이팅”하며 씩씩하게 해내는 저승이에게 ‘고정적인 일자리’는 어떤 희망의 상징이 된다. 앞서 밝혔듯이, 구제 빈민은 상대적 과잉인구의 가장 바깥에 존재하는 계층이며 이들에게 ‘노동으로부터의 소외’는 바로 생존의 문제를 의미하기도 하기에 자본주의적 노동마저도 소중하다. 이 상황이 바로 맑스가 이야기한 산업예비군의 딜레마 이다. 64) 이들이 열심히 노동시장으로 편입되려 할수록 노동시장에 이미 편입되어 있는 노동자는 과중한 업무량에 착취를 당하고, 다시 상대적 과잉인구가 늘어나는 과정에서 과도한 노동이라도 붙잡고 있는 노동자는 구제 빈민으로 떨어질 위험에 처하게 된다. 따라서 저승이의 밝은 어투는 반대로 더 큰 절망을 상상하게 한다. “열심히 공부하면서 힘차게 살아가려” 하는 그의 태도는 다른 저임금 노동자에게는 위협으로 들릴 것이며, 이러한 노동과 상관없는 계층에게는 무관심하거나, 그저 반가운 일일 것이다.

(...)

똥꾸녕이 찢어질 만큼 한 푼 없는 서민들아
그대들은,
찢어진 똥꼬가 피리를 불 정도는 뛰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은 돈이 된다.

자본은 그렇게 살도록
지금 그대의 등을 떠밀고 있고
현실 또한 그리 살게끔
잘 짜여져 있다.

누구나 다 평등한 인격체라지만
그건 말짱 있는 놈들이 하는 헛소리.

공화국의 주인은 그 나라의 국민이래도
아직은 사실 껍데기만 그렇다.
알맹이는 겉과 달리 영글지를 않아서
역전의 비둘기도 밤이면 제 둥지로 가지만
주인이란 사람이 돈이 없어서
맨땅에다 배 깔고서 취한 잠을 청한다.

- 아큐(14기 졸업동문), 도보배달 알바가 뜬다 전문


‘아큐’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화자는 ‘아Q’와는 달리, 공화국의 주인이 국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그는 자본에 의해 서민들이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는 현실을 봄으로써, 공화국과 평등이라는 이념이 아직 허상일 뿐이라는 명확한 의식을 갖는다. 실제 시에 나와 있는 것처럼 도보배달 노동자는 플랫폼이 지정해주는 대로 배달을 해야 하며, 그날그날의 ‘운’에 따라 배달비가 결정되는 열악한 상황 속에서66) “똥꼬가 피리를 불 정도를 뛰어야” 시간당 4천원 남짓을 벌 수 있다. 그러나 이 시의 독특함은 플랫폼 배달 노동자의 노동의 낮과 저녁을 지나, 밤이 되자 돈이 없어 맨땅에서 자야 하는 또 한 명의 노동자의 시선에 있다. 노동의 시간 바깥에서 그러나 산업예비군 혹은 같은 프롤레타리아로서, 화자는 평등을 이야기하는 “있는 놈들”의 “헛소리”에 분노하는데, 바로 이 분노는 자신의 분노이자 동시에 도보배달 노동자가 처한 상황에 대한 공감을 내포한다. 역설적으로 “맨땅에 배 깔고서 취한 잠을 청”해야 하는 아큐의 외침은 취객의 넋두리로 들릴 수도 있다. 그래서 아큐는 시라는 ‘형식’을 굳이 사용해주어, 독자들로 하여금 ‘아Q’의 결말에 이르지 않도록 하고 있다.


10.허요한(341-382).pdf
0.79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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